이탈리아 로마 : 좋던 나쁘던 백문이 불여일견 2

비즈니스 여행자의 세계출장 견문록 39

by chill십구년생guy


자유의 이면엔
위험이 숨어있지



이튿날 아침, 드디어 본격적인 로마 투어가 시작되었다. 전날에는 무리하지 않고 숙소 주변만 가볍게 둘러본 덕분에 컨디션도 최상이었다. 낯선 도시에서 맞는 첫 아침이라 그런지 마음이 괜히 두근거렸다.


첫 목적지는 당연히 ‘콜로세움’이었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로마에 왔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가보는 곳, 로마 관광의 출발점과도 같은 장소다. 숙소에서 크게 멀지는 않았지만 체력을 아끼기 위해 테르미니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고, 콜로세오(Colosseo) 역 입구를 나오자마자 눈앞에 바로 거대한 콜로세움이 나타났다.



로마가 처음인 관광객이라면 콜로세움부터 찍는게 국룰



하지만 막상 마주했을 때의 첫인상은 조금 의외였다. 수많은 여행 다큐멘터리와 유튜브 영상 속에서 워낙 많이 봐온 탓인지, 압도적인 감동보다는 ‘이걸 실제로 보는구나’ 라는 느낌 외에 별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대신 전 세계에서 모여든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풍경이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 오래된 건축물이 군데군데 부서진 흔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원형을 유지하며 그 위용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콜로세움을 둘러본 뒤에는 걸어서 ‘진실의 입(La Bocca della Verità)’으로 향했다. 진실의 입은 강의 신 홀르비오의 얼굴을 새겨 넣은 조각상으로, 전설에 따르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손을 입에 넣으면 그대로 삼켜버린다고 한다. 짧지 않은 대기 줄을 따라 차례를 기다린 뒤, 나도 손을 조심스레 넣어 보았다. 마음속으로 ‘우리 사업은 대박이 날거야’라고 생각하고 손을 넣었는데 다행히도 무사했다.


역시 잘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커피 한 잔의 여유



진실의 입을 뒤로하고 이번에는 ‘조국의 제단(Altare della Patria)’과 ‘포로 로마노(Foro Romano)’를 보러 이동했다. 로마의 명소들은 대체로 가까운 거리에 모여 있어 걸어서 다니기에 수월했다. 하지만 구글맵에서는 알려주지 않은 변수 하나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그 경사가 '오르막'이라는 점이었다.


언덕길을 오르다 보니 금세 지쳤다. 마침 중간쯤에서 자그마한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야외 테이블에는 우리처럼 오르막에 지친(것으로 추정되는) 현지인들이 여유롭게 식사와 커피를 즐기고 있었다. 서두를 일도 없으니 잠시 쉬어가기로 하고 자리를 잡았다.



지친 여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휴식 시간



이탈리아에서 커피를 마신다는 건 특별한 경험이다. 커피에 관한 자부심이 강한 나라답게 메뉴판 어디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건 없었다. 평소라면 ‘얼죽아’라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고집했겠지만, 오늘만큼은 한국인의 자존심을 굽히고 에스프레소를 시켰다.


짧은 휴식이었지만 그 순간의 감각은 오래 남았다.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볕, 살짝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고소하게 퍼지는 커피 향기가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주위를 감싸고 있는 고대 로마의 잔재들까지 더해지니 현실감마저 흐려졌다. 마치 꿈을 꾸는 듯한, 평온하고 나른한 기분. 지금도 누군가 로마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을 꼽으라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때를 이야기할 것이다.



관광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후 며칠 동안은 부지런히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관광에 나섰다. 표면적으로는 '현지 답사 및 체험 워크샵’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사실상 제대로 여행이었다.


바티칸 시티에 가서는 미켈란젤로의 걸작, 그 유명한 ‘천지창조’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트레비 분수 앞에서는 관광객답게 동전도 던져 보았고, 영화 ‘로마의 휴일’ 로 유명한 스페인 광장 앞에서는 250년이 넘은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즐겼다.



어깨 너머로 동전 1개를 던져놨으니 언젠간 다시 한번 더



또 판테온 근처의 레스토랑에서는 값비싼 랍스터 파스타를 시켜보았는데, 사장님이 뜻밖에도 태권도를 배운 적이 있다며 한국인인 우리에게 유난히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마지막에는 서비스로 크렘 브륄레까지 내어 주었는데, 괜한 국뽕이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곳곳을 누비며 로마 여행을 이어가던 4일째 밤, 사건이 터졌다.



테르미니의 악명



여행이 며칠째 이어지다 보니 마음이 한결 풀려 있었다. 그날 밤, 우리는 일과를 마치고 테르미니 역 근처의 작은 펍을 찾았다. 바텐더와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로컬 맥주를 마셨고, 분위기가 오르자 추가로 기네스와 제임슨 위스키를 섞은 폭탄주 ‘아이리시 카밤(Irish Car Bomb)’까지 시켜가며 만취할 때까지 연거푸 들이켰다.



바텐더가 너무 많이 마신다고 말릴때 멈췄어야 했어



잔뜩 취한 채로 비틀거리며 숙소로 돌아오던 길, 마침 늦게까지 불이 켜진 한 대형 슈퍼마켓이 눈에 띄었다. 출출하기도 해서 간단히 먹을거리라도 살겸 들어갔는데, 친구는 잠시 통화를 한다며 뒤에 남았다. 나는 홀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뒤, 얼굴이 시뻘개진 친구가 숨을 헐떡이며 슈퍼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눈빛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야… 나 방금… 들어온 녀석들한테 소매치기 당한 것 같아!”


순간, 술기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방금 전까지 이어지던 유쾌한 밤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뒤집혔다. 로마에서의 여정은 그렇게, 전혀 예상치 못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다음편, '이탈리아 로마 : 좋던 나쁘던 백문이 불여일견 3' 으로 이어집니다
'비즈니스 여행자의 세계출장 견문록'은 브런치스토리에서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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