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여행자의 세계출장 견문록 41
우리는 좁은 땅에
갇힌 민족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국 곳곳을 옮겨 다니며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군의 침공은 중국 전역으로 번져갔고, 임시정부는 피난하듯 남쪽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1940년 9월, 중국 서남부의 산악 도시 충칭(重慶, Chongqing)에 이르러 마침내 자리를 잡게 된다.
충칭은 임시정부의 마지막 거점이자, 가장 오랜 시간 머문 활동지였다. 한국광복군의 창설, 임시헌장의 개정, 독립운동 세력의 통합 등 굵직한 변화들이 모두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1945년 8월, 광복의 순간에도 김구와 이시영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은 여전히 충칭에 머물러 있었다.
당시 여러 구술 기록에 따르면, 김구 선생은 회의 자리에서 종종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좁은 땅에 갇힌 민족이 아니다. 마음의 지평을 넓혀 세계의 흐름 위에 조선을 세워야 한다.”
그에게 충칭은 단순한 피난처나 ‘임시의 수도’가 아니었다. 세계와 맞닿은 전선이자, 새로운 조선을 준비하는 거점이었다.
그로부터 80여 년이 지난 2019년 4월, 나는 업무차 충칭을 찾았다. 낯선 도시의 풍경 속에서 이상하게도 오래된 역사와 나의 현재가 맞닿아 있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그곳에서 받은 영감은 이후 R&D 중심으로 재정비한 ‘맘모식스’를 글로벌 스타트업으로 한번 더 도약시키는 계기가 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충칭에서 ‘한중 콘텐츠 상생협력 포럼’을 개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참가사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자마자, 나는 주저 없이 신청했다.
그 무렵 나는 이미 난창과 상하이를 오가며 ‘중국몽(中國夢)’이라는 구호가 얼마나 공허한지 충분히 느낀 뒤였다. 본사도 대구로 옮긴 상태였고, 오프라인 VR 비즈니스에 대한 미련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칭’이라는 장소가 묘하게 마음을 끌었다. 중국 내륙 깊숙한 산악지대에 자리한 도시, 4대 직할시 중 하나이자 신(新) 1선 도시로 불리며 그 어느 지역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래, 이번만큼은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 그런 일말의 기대를 안은 채, 나는 충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침 일찍 아시아나항공을 타고 충칭 장베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참가사들은 초청 형식으로 초대된 터라, 행사 기간 동안 머물 호텔이 무료로 제공되었고 공항에서 호텔까지는 전용 버스로 이동할 수 있었다. 덕분에 첫 방문임에도 비교적 여유로운 마음으로 창밖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버스가 시내로 들어서자, 역시 이름난 대도시답게 도시의 스케일이 압도적이었다. 대로를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아파트 단지, 화려한 조명을 두른 상업지구, 그리고 강가를 따라 늘어선 고층 빌딩들. 특히 양쯔강을 건너며 바라본 도심의 전경은 장관이었다.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들이 구름을 찌를 듯 솟아 있었고, 그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현수교와 강 위를 오가는 유람선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중국 대도시 특유의 화려함과 위용이 그대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나서 함께 온 참가사 일행들과 식사를 하러 나섰다. 포럼은 다음날 일정이라 오늘은 업무적인 긴장감이 덜했고,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마련한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 주요 프로그램이었다. 덕분에 ‘비즈니스 모드’를 잠시 내려놓고, 마음 편히 식사에 집중할 수 있었다.
충칭의 대표 음식은 훠궈(火锅)다. 마라탕과 비슷하지만 훨씬 많은 기름이 들어가, 국물을 떠먹기보다는 재료를 찍어 먹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첫 젓가락을 집어 넣자마자 매운 향이 코끝을 찌르고, 혀끝이 빠르게 얼얼해졌다. 대만에서 어느 정도 매운맛에 단련됐다고 생각했지만, 충칭의 매움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그 매운맛은 단순한 자극이 아니라, 향과 질감이 어우러진 ‘입안 전체의 감각’처럼 다가왔다. 혀의 가장 예민한 부분을 정교하게 건드리며 서서히 열을 퍼뜨리는 느낌이었다.
다행히 맑은 버섯탕이 있어, 나는 마치 샤브샤브를 먹듯 고기와 야채를 번갈아 담갔다. 그 순간만큼은 ‘매움과의 전쟁’에서 잠시 휴전을 선언한 기분이랄까. 덕분에 살았다.
충칭 훠궈에는 ‘충피(重啤)’라고 불리는 ‘충칭 맥주(Chongqing Beer)’가 빠질 수 없다. 갓 따라낸 차가운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면 입안을 뒤덮은 매운맛이 말끔히 가라앉고, 혀가 다시 제자리를 찾는 듯했다. 탄산의 청량감과 은은한 쓴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얼얼함을 부드럽게 달래주었다. 개인적으로는 칭따오보다 훨씬 깔끔하고 입맛에 맞아, 충칭에 머무는 동안 내내 이 맥주만 마시게 되었다.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공연장으로 이동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런 행사에 곁들여지는 공연은 대체로 형식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저 포럼의 분위기를 맞추기 위한 ‘의전용 프로그램’쯤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막이 오르자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귀빈들의 축사 이후 이어진 판소리, 전통 무용, 현대식 ‘난타(Nanta)’ 공연은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이어서 공중을 날며 격파를 선보이는 태권도 시범단의 퍼포먼스는 관객을 단숨에 압도했다. 객석에서는 커다란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고, 땀에 젖은 공연자들의 표정 속에는 단순한 퍼포먼스를 넘어선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가 묻어 있었다.
행사의 구색을 맞춘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모든 공연이 진심을 담아 준비된 느낌이었다. ‘회상’이라는 주제에 맞춰 독립운동가들을 기리는 메시지도 곳곳에 녹아 있었다. 예상 밖의 감동에 나도 모르게 집중해서 관람했고, 공연이 끝날 때쯤에는 묘하게 뿌듯한 기분이 밀려왔다.
오늘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빗줄기가 추적추적 흩날렸다. 차창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도시의 불빛을 번지게 만들며 몽환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혹시 VR 관련 시설이 보일까 싶어 유심히 둘러보았지만, 빗물에 가려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비가 그치면 시내를 걸어보며 좀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숙소로 돌아가 내일을 기약했다.
다음편, '중국 충칭 : 지평을 넓혀서 세계의 흐름 위에 2' 로 이어집니다
'비즈니스 여행자의 세계출장 견문록'은 브런치스토리에서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