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충칭 : 지평을 넓혀서 세계의 흐름 위에 3

비즈니스 여행자의 세계출장 견문록 43

by chill십구년생guy


마음의 지평을 넓혀
세계의 흐름 위에 조선을 세워야 한다



삼일째 오전, ‘한중 콘텐츠 상생협력 포럼’을 성공적으로 마친 참가사 일행은 단체로 충칭에 남아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도 빼놓을 수 없는, 꼭 들러야 할 일정이었다.


이곳은 중국에 남아 있는 마지막 임시정부 청사 유적지이자, 독립운동의 정신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장소였다. 먼 이국땅에서도 조국의 미래를 꿈꾸던 선조들의 숨결이 곳곳에 서려 있었고, 그 발자취 앞에서 모두가 자연스레 숙연해졌다.



그 시절 모습을 엿볼 수 있게 잘 보존이 되어있다



독립 이후 이 청사는 여관과 학교, 주택 등으로 용도가 바뀌며 세월의 흐름 속에 잊혀져 갔다. 그러다 1990년대 초, 충칭의 도시 재개발 계획에 따라 철거 위기에 놓였지만, 다행히 한중 양국 정부가 협력하여 복원 협정을 체결했고, 두 차례의 개·보수를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문을 열게 되었다. 현재는 중국에 남아 있는 임시정부 청사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다섯 개 동으로 이루어진 건물이 아기자기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모든 건물을 자유롭게 둘러볼 수는 없었지만, 일부 공개된 공간만으로도 당시의 생활상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임시정부 요인들이 머물던 방과 회의실, 그리고 김구 선생의 흉상이 놓인 전시 공간이 이어졌다. 대만의 장제스 총통과 나눈 회담 자료, 독립신문, 한국 광복군 관련 문서 등도 함께 전시되어 있어,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역사 속 인물들의 숨결이 전해지는 듯했다.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방명록을 남겼다



특히 빛바랜 태극기 앞에 회의와 담소를 나누던 장면을 재현해둔 공간에서는 묘한 감동이 밀려왔다.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긴장감과 단호한 의지가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듯했다. 한중 양국의 국기가 나란히 놓인 테이블 위에는 방문객들이 의견을 남길 수 있는 방명록이 비치되어 있었다. 나 역시 이 역사적인 장소가 오래도록 보존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조심스레 한 줄의 글을 남겼다.



충칭의 명소



임시정부 청사 탐방을 끝으로 공식 일정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일행들과 인사를 나눈 뒤, 나는 혼자 충칭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어제 들렀던 해방비 광장을 지나, 충칭을 상징하는 명소인 ‘홍야동(洪崖洞)’으로 향했다.



홍야동의 화려한 야경은 왠지 몽환적이다




낮에 도착한 홍야동은 언뜻 보기엔 단순히 상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복잡한 관광지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곳의 진짜 매력은 밤이 찾아올 때 드러났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자, 건물 곳곳에 불빛이 하나둘 켜지며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거대한 나무 위에 층층이 세워진 듯한 건물들은 금세 화려한 조명으로 물들었고, 그 장면은 마치 지브리 애니메이션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환상적인 공간이 현실로 구현된 듯한 느낌이었다.


홍야동 중간쯤에 자리한 작은 바에 들어가 칵테일 한 잔을 주문했다. 잔을 기울이며 창밖을 내다보니, 충칭을 가로지르는 가릉강(嘉陵江)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화려한 고층 빌딩의 조명과 강 위를 오가는 유람선의 불빛이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유화처럼 눈부신 야경을 만들어냈다.



너무 강렬해서 눈이 부실 지경



그 풍경에 마음이 사로잡혀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았다. 그렇게 충칭의 밤을 천천히 음미한 뒤,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 휴식을 취했다. 다음날 아침, 이 도시의 여운을 안은 채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후일담



충칭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단순한 출장이 아니었다. 현지 업체들의 뛰어난 퀄리티와 놀라운 가격 경쟁력을 직접 확인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제한된 시야 속에서 사업을 해왔는지를 실감했다.


그동안 나름 스타트업이랍시고 ‘앞서 있다’고 믿었던 자만이 사실상 얼마나 따라잡히기 쉬운 취약한 기반 위에 놓여 있었는지도 깨달았다. 정보가 빠르게 공유되고 기술이 순식간에 확산되는 시대에, 한 번의 우위는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 충칭에서 느낀 그 현실감은 뼈아팠지만 동시에 강렬한 자극이 되었다.


한편,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에서 받은 감동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았다. 김구 선생이 꿈꿨던 나라는 단지 독립된 조선이 아니라, 세계의 흐름 속에서 당당히 목소리를 내는 나라였다. 충칭이라는 낯선 도시에서 그 바람을 되새기다 보니, 그 뜻이 단지 과거의 구호가 아니라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라.’ — 그 울림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강소백(江小白)’의 패키지 문구처럼 “중요한 건 마음의 거리“다. 사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세상은 물리적 거리로 구분되지 않는다. 전 세계 어디에 있든, 뜻이 맞고 비전을 공유한다면 언제든 온라인으로 함께 일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김구 선생이 그토록 바라던 ‘세계 속의 조선’은, 어쩌면 지금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새로운 형태의 글로벌 협업일지도 모른다.


그때의 깨달음은 몇 년 뒤 현실이 되었다. 약 4년 후, 나는 태국 방콕에 지사를 세우고 현지인들과 함께 우리의 브랜드 ‘갤럭시티 프로젝트’를 만들게 된다. 맘모식스는 보다 넓은 세계의 흐름 속에서 한 단계 더 멀리 내다보며 미래를 준비하는 기업으로 도약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 먼 훗날의 이야기. 충칭에서 돌아온 나는 잠시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불과 두 달 뒤 세 나라를 연달아 순회하는 새로운 여정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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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여행자의 세계출장 견문록'은 브런치스토리에서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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