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호치민 : 새로운 파트너는 언제나 환영이야 1

비즈니스 여행자의 세계출장 견문록 44

by chill십구년생guy


처음 만나는 베트남
처음 경험하는 맨정신



2019년 초, 우리는 첫 번째 TIPS 도전에 실패했다. (37화 참고)


실패 원인을 분석해보니, 기술 기반 비즈니스에 대한 설명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점이 명확했다. '기술'이라는 단어는 입에 올렸지만, 정작 그 기술이 어떤 구조로 작동하고 문제를 해결하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실패 원인을 명확히 짚은 뒤, 투자사와 함께 재도전을 결의했다. 이번에는 부족했던 부분을 철저히 보완하는 것이 목표였다.


본래 컨텐츠 개발자였던 우리는, 직접 다루던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기술의 언어'로 풀어내는 능력이 부족했다. 표현 중심의 말만 반복하다 보니, 연구자나 엔지니어의 시선으로 기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데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때 투자사에서 공대 교수님 한 분을 고문으로 소개해 주셨고, 그분을 통해 기술적 용어를 정확히 사용하고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이 경험은 우리에게 '기술을 다루는 능력'만큼이나 '기술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일깨워주었다.


또한, 기술 기반 비즈니스는 단순히 기술을 보유하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았다. 연구·개발한 기술을 실제로 활용할 협력 파트너와 유통 채널이 많아야 비로소 가치가 생긴다. 결국 협력사와 파트너가 많을수록 사업의 신뢰도와 확장 가능성이 높아지는 구조였다.


이를 위해 우리는 국내에서는 본사를 옮긴 대구시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으며 지역 기반을 다졌다. 동시에 해외 네트워크 확장이라는 새로운 과제도 안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해외 파트너 확보를 위해 각종 국제 행사 참가 공고를 보자마자 닥치는 대로 신청서를 넣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2주 동안 세 나라를 오가야 하는 살인적인 투어 일정이 잡혀 있었다.


일정표를 보는 순간 막막했지만, 이번에는 절대 물러설 수 없었다. 가는 곳마다 반드시 파트너를 만들어야 한다는 숙제를 가슴에 품은 채, 나는 2019년 6월, 첫 번째 출장지인 베트남 호치민으로 향했다.



약 5개의 행사가 동시에 열리고 있어서 생각보다 규모가 상당했다



호치민에서 내가 참가할 행사는 사이공 전시 컨벤션 센터(SECC)에서 열리는 ‘텔레필름(Telefilm) 2019’였다. 이 전시회는 동남아시아 지역의 방송·영상 및 기술 산업을 중심으로, 관련 전시와 콘퍼런스, 다양한 네트워킹 프로그램이 함께 열리는 대규모 행사였다. 나는 한국 공동관을 통해 부스를 운영하며, 행사 기간 동안 여러 현지 업체들과 미팅을 진행해야 했다.


호치민 떤선녓 국제공항에 도착하자, 주최 측인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파견된 가이드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다행히 행사는 다음 날부터 시작이었기에 일정에 여유가 있었다. 준비된 차량을 타고 사이공 전시 컨벤션 센터(SECC)로 이동해, 미리 설치된 부스의 상태를 간단히 점검했다. 전반적인 세팅은 깔끔했고, 필요한 장비들도 잘 갖춰져 있었다. 확인을 마친 뒤에는 숙소로 이동해 짐을 풀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어서와, 베트남은 처음이지?



베트남은 처음이었다. 낯선 도시의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싶어, 그랩(Grab)을 불러 시내로 나섰다. 차창 밖으로 처음 마주한 호치민의 거리 풍경은 예상과 달랐다. 생각보다 낙후된 인상이 강했다.


이전에 인도네시아나 태국의 수도를 방문했을 때 느꼈던 ‘동남아시아의 빠른 발전상’을 떠올리고 있었기에, 호치민의 낮고 오래된 건물들이 주는 첫인상은 다소 의외였다. 나름 제휴할 만한 파트너를 찾아보겠다는 마음으로 왔지만, 순간 ‘이 시장이 과연 우리가 생각한 만큼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스치기도 했다.


하지만 시내 중심지인 1군(Quận 1)으로 들어서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고층 빌딩들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했고, 거리의 정돈된 풍경과 세련된 상점들이 도시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완벽히 현대적인 도심이라 부르긴 어려웠지만, 분명 활력 있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도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도로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들이었다. ‘많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였다. 사방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오토바이들 사이로 길을 건너려면 마치 그 옛날 오락실 아케이드 게임인 ‘개구리’를 직접 맨몸으로 플레이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타이밍을 조금만 잘못 잡아도 멈춰 설 수밖에 없었고, 한 걸음 한 걸음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길을 건널때마다 매번 심장이 두근두근



나름 관광객 모드로 1군 주변을 천천히 걸으며 주요 명소들을 둘러봤다. '핑크 성당'으로 불리는 떤딘 성당을 시작으로 노트르담 성당, 전쟁 박물관, 그리고 통일궁까지 이어지는 동선이었다. 각 장소가 멀지 않아 굳이 차량을 이용할 필요 없이 도보로 충분히 돌아볼 수 있었다. 이국적인 건축물과 분주한 거리의 소음이 뒤섞인 풍경은, 호치민이라는 도시가 가진 복잡하면서도 매력적인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반미 그리고 텅빈



걷다보니 한 가게 입구에서 고소한 향이 풍겨왔다. 베트남의 대표 길거리 음식인 ‘반미(bánh mì)’를 팔고 있는 곳이었다. 반미는 바게트 빵 사이에 각종 야채와 햄, 고기, 소스가 듬뿍 들어간 샌드위치다. 가격은 한화로 2천 원에서 3천 원 남짓. 예상보다 훨씬 저렴했는데, 그 가격에 이 정도의 푸짐한 내용물이라니, 먹는 내내 절로 미소가 흘러 나왔다. 바삭한 바게트와 풍성한 채소, 짭조름한 햄이 어우러지며 누구라도 좋아할 맛이었다.



우리집 앞에서도 매일 팔아줬으면



통일궁 근처를 둘러보다가 대형 쇼핑몰인 ‘빈컴 센터(Vincom Center)’에도 들렀다. 이곳에 한국의 VR 업체가 입점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현지 시장 반응을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매장은 금세 찾을 수 있었는데, 외관은 깔끔했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가니 분위기가 썰렁했다. 손님은 거의 없었고, 직원조차 보이지 않았다. 몇몇 기기는 전원이 꺼져 있거나 작동 중 에러 창이 그대로 뜬 채 방치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역시 오프라인 VR은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아뿔사 혈당 스파이크



저녁 식사는 벤탄시장 맞은편 골목에 숨어 있는 반쎄오 맛집에서 해결했다. 현지인과 관광객이 뒤섞여 북적이는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반쎄오와 코코넛 볶음밥을 주문했다. 바삭한 반쎄오의 식감과 달콤한 코코넛 향이 어우러진 볶음밥은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양이 많아 혼자서는 다 먹지 못했지만, 긴 이동 끝에 제대로 된 식사를 마친 덕분에 기분 좋은 포만감이 밀려왔다.



배가 터질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남기고 온게 두고두고 한



식당을 나와 한동안 유명 관광지인 벤탄시장 주변을 구경했다. 하지만 배가 터질 듯 불렀던 탓일까, 걷다가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결국 숙소로 서둘러 돌아가 침대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나는 평생 처음으로 해외 출장 첫날에 술 한 잔 없이 맨정신으로 잠들었다. 낯선 도시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조용했지만, 묘하게 기록적인 방식으로 마무리되었다.




다음편, '베트남 호치민 : 새로운 파트너는 언제나 환영이야 2' 로 이어집니다
'비즈니스 여행자의 세계출장 견문록'은 브런치스토리에서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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