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충칭 : 지평을 넓혀서 세계의 흐름 위에 2

비즈니스 여행자의 세계출장 견문록 42

by chill십구년생guy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술잔을 부딪혀도 닿지 않는 마음의 거리



충칭에서의 둘째 날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하는 ‘한중 콘텐츠 상생협력 포럼’이 열리는 날이었다. 호텔에서 조식을 든든히 챙겨 먹은 뒤 행사장으로 향하니, 이미 이른 시간부터 제법 많은 사람들이 도착해 있었다.


일반적인 ‘전시회’와 달리, ‘포럼’은 사전 참가 신청이나 초청을 통해서만 입장할 수 있다. 그래서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컨텐츠 업계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관계자들이었다. 나는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며 분위기를 살폈다. 그리고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기만 하면 곧장 다가가 명함을 건네며 인사를 나누고, 자연스럽게 스몰토크를 이어갔다. 혹시라도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는, 몸에 밴 습관 같은 자세였다.



나를 비롯해 포럼에 참가한 모든 기업들이 돌아가며 자기 소개를 했다



포럼이 시작되자 한중 양국의 컨텐츠 시장에 대한 견해 발표와 함께 초청 기업들의 소개가 이어졌다. 각자의 시각에서 시장의 흐름과 협력 가능성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발표가 모두 끝난 뒤에는 준비된 부스로 이동해 현지 업체들과 미팅을 진행했다.



글로벌 경쟁의 현실



우리에게 미팅을 요청해온 기업들은 대부분 젊은 개발사나 그래픽 디자인 회사들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주력으로 하고 있는 VR 분야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아직은 생소하지만 앞으로 반드시 성장할 분야라며, 함께 협력해보자는 제안을 건네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의 말투와 태도에는 진심이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보니 문득 지난 상하이 출장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만난 업체들은 겉으로는 전문가를 자처했지만, 실제로는 허울뿐인 경우가 많았다. 노골적으로 계산적인 기운이 느껴졌고, 우리를 이용하려는 속내가 드러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 충칭은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내륙 깊숙한 도시라서 그런지, 사람들의 태도에서 묘하게 순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협력 시 제시되는 비용 수준이었다. 디지털 컨텐츠 산업은 기본적으로 PC만 있으면 가능하기 때문에, 비용의 대부분이 인건비로 구성된다. 중국의 인건비가 한국보다 낮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구체적인 견적을 받아보니 그 차이는 상상 이상이었다. 특히 프로그램 외주나 그래픽 작업의 경우, 한국 단가의 약 40% 수준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완성도나 기술력에서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이들이 제시한 단가에도 이미 어느 정도의 마진이 포함되어 있을 텐데, 그 모든 걸 감안해도 여전히 놀라운 수준이었다. 그 순간, 나는 단순히 인건비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경쟁의 현실을 실감하며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해방의 드럼 아니고 기념비



일정을 모두 마친 뒤, 오후에 잠시 난 시간을 활용해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나가 보기로 했다. 사람들의 발길이 가장 붐비는 곳을 찾아보니 ‘해방비(解放碑)’ 광장이 제격일 것 같았다.


충칭의 중심부라 불리는 이곳은 고층 빌딩 숲으로 둘러싸인 화려한 상업 지구로, 그 한가운데에는 1945년 제2차 중일전쟁 승리를 기념해 세워진 ‘충칭인민해방기념비(重庆人民解放纪念碑)’가 우뚝 서 있었다. 원래는 목조로 지어졌으나, 1950년 공산당이 충칭을 점령한 이후 콘크리트 재질의 시계탑 형태로 재건축되었다고 한다. 도시의 번화함 속에서도 과거의 흔적이 단단히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멀리서도 한 눈에 들어올만큼 우뚝 서 있다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혹시 VR 관련 시설이 있지 않을까 싶어 눈을 부릅떴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역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황된 ‘중국몽’을 좇지 않고, 과감히 오프라인 사업을 접은 결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시내까지 나온 김에 충칭에서 훠궈와 함께 유명하다는 ‘샤오미엔(小面)’, 즉 충칭식 소면을 먹고 돌아가기로 했다.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小面’이라는 간판을 찾아보다가 적당한 가게를 발견해 들어갔다. 이름은 소면이지만, 실제로는 한국의 소면보다 훨씬 굵고, 제주 고기국수에 들어가는 중면 정도의 두께였다.



맵찔이에겐 목숨을 건 도전



충칭 소면의 특징은 다층적인 맛의 조화였다. 마라(麻辣)의 얼얼한 매운맛을 기본으로, 고추·마늘·생강·산초 등 10여 가지 이상의 재료가 어우러져 깊고 풍성한 맛을 낸다. 요즘 마라탕을 즐겨 먹는 MZ세대에게는 익숙한 맛이겠지만, 나 같은 ‘맵찔이 아저씨’에게는 꽤나 고된 도전이었다. 결국 콜라를 시켜 연신 입안을 식혀가며 겨우 한 그릇을 다 비웠다.


매운맛에 진이 빠졌지만, 이상하게도 그 강렬한 향신료의 여운이 오래 남았다. 도시의 복잡한 공기 속에서도, 충칭의 ‘맛’은 확실히 뚜렷했다.



행사는 회식이 국룰



밤이 되자 포럼 참가사들의 회식이 열렸다. 테이블 위에는 중국식 꼬치 요리와 충칭 맥주가 나란히 놓였다. 불판 위에서 꼬치가 노릇하게 익어가며 매콤한 향을 퍼뜨리는 사이, 술잔이 오가고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우리는 포럼에 대한 소감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한중 컨텐츠 산업의 협력 가능성과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예상보다 많은 업체들이 이미 중국과 협업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직접 중국 시장에 사무실을 내고 ‘대륙 공략’을 시도해보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문제를 지적했다. 중국 업체들의 경우 계약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거나, 선금만 받고 잠적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는 점이었다. 또한 분쟁이 생겼을 때 중국 법원이 대부분 자국 기업의 손을 들어주는 구조적 한계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직접 진출을 고민하는 이유는, 그만큼 낮은 비용으로도 양질의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매력이 크기 때문이었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꼬치와 갬성 넘치는 패키지



맥주잔이 몇 번이나 비워질 즈음, 누군가가 술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자연스럽게 다음 순서는 ‘강소백(江小白)’이었다. 중국의 젊은 세대에게 인기가 높은 백주 브랜드로, 전통적인 백주의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SNS 이벤트를 열고, 소비자들이 직접 응모한 문구를 병 라벨에 새겨주는 독특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었다.


호기심이 생겨 포장지 하나를 집어 들고, 중국어에 능통한 일행에게 물었다.
“이건 무슨 뜻이에요?”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술잔을 부딪혀도 닿지 않는 마음의 거리.”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도 가슴 한켠이 먹먹해졌다. 최근 본사를 대구로 옮기고 새로운 직원을 채용했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기존 직원들은 여전히 서울에 머물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두 사무실을 관리하고 있었는데, 정작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대구 직원들이 더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모습을 보이곤 했다. 그들의 태도를 볼 때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거리의 물리적 차이가 아니라 마음의 거리라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던 터였다.


취기가 은근히 올라오던 그 밤, 나는 ‘마음의 거리’라는 말을 곱씹으며 잔을 천천히 비웠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충칭의 밤이었다.




다음편, '중국 충칭 : 지평을 넓혀서 세계의 흐름 위에 3' 으로 이어집니다
'비즈니스 여행자의 세계출장 견문록'은 브런치스토리에서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이전 11화중국 충칭 : 지평을 넓혀서 세계의 흐름 위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