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떠나는 여행’을 출간하며...
2025년 4월은 엘리어트의 ‘황무지’라는 시처럼 여지없이 잔인한 달이 되었다. 봄꽃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꽃망울을 열어젖혔다. 온 세상이 돋아난 흰 꽃잎으로 뒤덮이는데 사람들은 탄핵을 외치며 꽃이 피는 시간을 미움과 증오로 채우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나는 한가하게 여행에 관한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헌재의 탄핵 결정으로 이런 시기에 여행집을 발간하는 일이 맞나 싶었던 마음 한구석 켕김은 다행히 해결되었다.
어깨위망원경이라는 출판사와 만남의 시간은 작년 가을에 이루어졌다. 아버지가 세상에 나오신 지 100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해서 여행일기를 편집해 책으로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위해서였다. 그 자리에서 출판사는 단순히 책을 만드는 일부터 출간을 돕고 대행하는 일까지 다양한 옵션을 나에게 제시했다. 출간에 필요한 비용을 서로 부담하고 인세에 대한 비율을 조정하는 조건으로 그날 출판사와 계약을 했다. 그리고, 6개월 동안의 교정과 수정을 거듭해 세상에 책이 발간되었다.
책이 발간되기 직전까지 나의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 앞에 발가벗고 무대 위에 오르는 기분으로 잠이 깨면 다시 잠들기 어려웠다. 이 책을 세상에 내놓는 이유를 나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고 딱히 그 이유가 나를 설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혼자서 떠난 여행을 통해 자신과 만나는 경험을 세상에 전달하는 전도사가 되겠다는 마음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다만 나의 여행을 정리하고 그 책을 아버지 추도식에 올려놓겠다는 시도가 일을 키운 것이다.
작가 놀이나 하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나에게 출판사 편집자는 정작 책이 나오면 생각이 달라지실 거라며 용기를 주었지만 읽을 때마다 보이는 엉성한 글의 구조 탓에 이 일의 시작의 무모함을 탓하곤 했다. 나는 예민하고 소심한 사람이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지만 그들이 보는 나와 내 안의 나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 조금 다른 부분을 보고 “네가 그런 사람이었어”하는 반응을 상상하면 난감하다. 걱정이 점점 태산을 이루는데 일은 벌어졌다. 이미 책이 세상에 나와 버렸고 인터넷 서점에서 발매가 시작되었다.
책을 구매하는 사람은 내가 아는 지인들이 거의 대부분일 테고 그 지인의 소수 지인이 구매하고 나면 족할 정도의 책만을 인쇄하였다. 그리고, 25년 봄날의 작은 축제를 열었다. 그 축제가 열리고 나니 편집자님의 말처럼 나는 대단한 용기와 결심을 얻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 관심을 끊기로 했다. 내가 신경 쓸 만큼 그들이 나에게 가지는 관심이 크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노래를 조금 못 부르면 어떠랴 글이 조금 서투르면 어떠랴 나는 작가가 아니라 작가 놀이를 하며 살겠다. 이제야 비로소 재미있는 놀이를 찾았다. 찰스 부코스키의 비문에는 “Don’t try 애쓰지 마라 “라고 쓰여 있다. 작가 놀이하다가 죽겠다는 그의 말처럼 작가가 되려고 애쓰지 않고 작가 놀이를 하련다. 출간하는 일은 일정 부분 자비를 부담한다면 언제든지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잘 팔리는 책이 아니라 나와 세상을 연결하는 책을 만드는 놀이를 한다. 이 놀이는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작가를 직으로 하는 사람들만 책을 만드는 세상이 아니다. 작가 놀이를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용기가 되었으면 한다.
프롤로그
삶은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다
‘어쩌다 여기까지 와 있는 것일까?’ 체크 아웃을 마치고 다음 도시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앞으로 맨 가방을 매만질 때 심심찮게 찾아드는 생각이다. 밤새 달리는 슬리핑 버스에 올라 창밖을 보면 생각은 더욱 복잡하다. 낯선 여행지에서 펼쳐질 앞일에 대한 기대와 약간의 두려움이 뒤섞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새삼 삶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음을 느낀다.
여행의 의미는 여행을 떠나는 사람 숫자만큼이나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일상에서 벗어나 새롭게 자기 자신을 바라보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여행이라는 낯섦을 통해 영감을 얻는다. 나에게 여행이란 무엇인가? 여행은 세상일이란 한 치 앞도 제대로 알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닫게 해 준다. 누구나 여행을 떠날 때는 잘 짜인 각본을 준비한다. 어디로 갈지 어디서 잘지 무엇을 할지 대강을 정한다. 그렇게 하루의 일정을 계획하고 숙소를 나서지만 예기치 못한 일들이 닥친다. 변덕스러운 날씨가 5분 전에 떠난 버스가 애써 준비한 일정을 허물어뜨린다. 하루하루가 예상대로 지나가지 않는다. 다시 돌아갈 길이 막막할 만큼 아주 먼 곳까지 가는 동안 수많은 이야기들이 쌓인다. 이처럼 여행은 각본대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떠나고 나서 나만의 이야기를 써가는 것이다. 한편 앞으로 펼쳐질 여행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그때 삶은 정말 알 수 없지만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일의 시작은 너무도 하찮고 별거 아닌 경우가 많다. 나에게 여행이 그러하다. 해외여행이라고는 지금은 너무도 흔해서 강변역 동서울터미널에서 서울 외곽으로 가는 여행쯤이 되어버린 동남아여행을 다녀온 게 전부였다. 여행집을 만들 정도로 여행에 심취하지도 않았고, 여행에 대해 깊은 성찰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한 내가 여행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여행에 관한 글을 적고 있다. 그 시작은 너무도 미미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머리를 식힌다는 핑계로 가방을 메고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혼자서 어디론가 떠났고 다시 돌아서 왔다. 혼자서 여행을 다니니 별로 할 일이 없어 낮에는 사진을 찍었고 그날 있었던 일들을 밤에는 글로 적었다. 하루 이틀로 그칠 줄 알았던 일들이 계속 반복되었다. 우연이 반복되면 필연이 되는가? 우연히 모으게 된 여행의 사진과 글을 책으로 만들어 다락의 광주리에 담아 두어야겠다는 결심은 필연이었다. 어도비Adobe에서 ‘인디자인’ 크리에이티브 앱을 구입하고 서체로는 ‘제주서체’를 이용해 종이책으로 만들었다. 유럽, 북인도 그리고 네팔여행에 대한 기록을 직접 종이책에 담아 내 손으로 펼친 날을 기억한다. 여행이 책에 담기면 단순한 사건의 기록이 고치를 두르고 변태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사진과 조각난 문장들이 모여 글이 만들어지고 종이책에 담기는 순간 인도의 골목길을 헤매며 당황하던 내 기억과 느낌이 되살아난다.
유럽과 북인도, 네팔의 여행을 종이책으로 만들고 다음 해에는 남인도와 스리랑카를 다녀왔다. 매년 혼자 어디론가 가서 사진과 글을 가져오겠다는 다짐은 남인도와 스리랑카를 마지막으로 더 이어지지 않았다. 이후로 6년이 지났다. 그동안 회사에 다시 복직했고 코로나를 겪으며 여행은 중단되었다. 여행 일기를 들추며 내 인생에 이런 여행을 다시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 회사와 집을 오고 가는 일상이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이제는 가족이나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리조트나 맛집을 찾아다니는 여행이 편안하다. 하지만 편안하고 즐겁다고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편안함은 필연코 권태를 부른다.
어느 때는 편안함과 권태를 번갈아 가는 이 변덕스러운 마음이 싫다. 고생인 줄 알면서도 고생을 찾아가려는 모순, 이 모순으로 나는 흔들린다.
내가 어떻게 혼자서 여행을 떠날 용기를 가졌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떠나고 보니 혼자 여행하고 있음을 알았다는 말이 사실에 더 가깝다. 여행을 떠나는 순간에는 그곳에 가면 누군가와 만남이 약속된 것처럼 혼자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실제로 하루의 여행을 마무리하는 일에 몰입하면 혼자 여행하는 나를 알아차릴 겨를이 없다.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쓸쓸한 오후가 내려앉은 낯선 도시의 골목을 걸을 때 문득 혼자 여행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기차역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에도 혼자 여행하는 나를 만난다. 여행을 다녀온 후 나와 만나는 시간이 망각의 그늘에 가려 점점 희미해져 간다. 시간이 더 흘러 혼자서 여행하던 내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질 거 같은 아쉬움에 3년 동안 3번의 여행을 책으로 만들기로 했다. 시간의 부식 속에서 먼지처럼 사라져 가는 지난 여행의 자취들을 한데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남기기로 했다. 여행이 치료제는 아니지만 치유하는 효과는 있다. 책에 담아 놓고 가끔 꺼내 먹으면 삶이 무료하고 나른할 때 제법 효과가 있다. 여행기를 남기는 일이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삶은 정말 알 수가 없다.
이 책이 세상 밖으로 나오도록 응원해 준 아버지와 아내 그리고 가족들에게 감사한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100주년을 기념하는 책을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정리했다. 이 모든 일은 평소에 책을 좋아하셨던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는 비늘 같은 살거죽이 종잇장처럼 얇은 팔에 주사바늘이 너무 아프다고 병원은 절대 안 가시던 분이셨다. 그런 분이 90을 넘기시고 책을 읽기 위해 노안 수술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이 책을 드린다. 그리고, 울퉁불퉁하고 두서없는 글을 다리미로 반듯하게 펴고 주름을 잡은 이원석편집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