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 대하여...
2022년 3월
시간 속에 피투 된 모든 생명은 동일한 운명을 타고났다. 과거는 이미 지나버렸고 내일은 알 수 없고 내일은 반드시 오고 만물은 변하고 또 사라진다. 이 운명을 알면서 인간의 불행은 시작되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내일에 대한 불안으로 인간은 생존에 유리한 여러 행태를 만들어냈다. 무리를 짓고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고 미래를 예측하려 경험을 동원하며 때로는 내일이 오기 전에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오늘 결정을 내린다. 인간은 잠시도 불안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이 빌어먹을 내 안의 내 목소리가 멈추지 않는 이상 불안을 내버려 두고 지켜보는 일은 불가능하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서두에 감당이 안 되는 거창한 말을 써놓았나 싶다. 정작 내가 하려는 말은 내일은 정말 모르겠고 지나고 보니 그 내일이 어느새 지나버렸더라고 조잘대고 싶을 뿐이다. 오늘을 살다 보면 알 수 없는 내일도 지나버리고 그러다 보면 생은 어느새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을 거라는 믿음은 수시로 상기시켜야 한다. 믿음은 휘발성이 강해 입만 벌려도 한숨 속에 섞여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인간은 당연한 선택보다 당연하지 않은 결정을 내릴 때 자유를 느낀다고 한다. 지금은 비록 강요된 선택에 내몰려 살더라도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맨발로 걸어가는 삶을 꿈꾼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이 내일에 대한 불안이 만들어 놓은 환상처럼 느껴진다. 혼자서 깨우치고 홀로 결정짓는 삶은 어쩌면 환상일지 모른다. 아침에 배드민턴을 배우기 위해 레슨에 참가했다. 배드민턴조차도 레슨을 받아보면 알게 된다. 그전에 나는 배드민턴을 한 게 아니라 파리채를 휘두르고 다녔다는 것을. 그래서 선생님을 잘 만나야 한다. 선생님을 잘 만나야 눈을 가리는 거짓 환상 같은 삶을 거둬내고 손에 만져지고 입에서 느껴지는 진짜 살아있는 삶을 만날 수 있다.
대충 눈치를 챘겠지만 나는 지금 불안하다. 코로나로 가족들이 감염되어 일주일을 집에 갇혀 지냈다. 상투를 잡은 주식의 운명은 알 수가 없다. 어머니의 병세는 호전과 악화를 거듭한다. 아들은 새 학기를 맞이하러 집을 나가 살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가 막을 내렸다. 불안과 손을 맞잡고 오는 녀석은 걱정이다. 걱정 중에서 요즘은 서로 미워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섞여 있다. 인간은 거짓말을 통해 무리를 짓고 서로의 안전을 담보한다. 결혼하면서 우리는 서로 정치와 종교에 대해 집에서는 중립지대로 선언하였다. 따라서, 집에서는 각자 믿는 바를 상대의 허락 없이 말하지도 않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지금 밖에 나가면 반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서로 같이 살아갈 수 있는 거짓말을 만들어냈으면 한다. 이 세상은 누구라도 살아갈 땅과 공기를 나눌 수 있다.
세상의 반이 여자이고 그 여자를 사랑한 존 레넌의 ‘woman’의 가사처럼 말이다.
Woman
Please let me explain
I never meant to cause you sorrow or pain
So let me tell you again
And again and again
I love you, yeah yeah
Now and forever
I love you, yeah yeah
Now and forever
2025년 1월
2022년 3월 브런치에 올린 그때의 불안을 읽어 내려간다. 그해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고 세상은 반으로 나뉘었다. 다음 날 밖에 나가 거리에 서서 나를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았다. 이 중 반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하니 갑자기 불안해졌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의 반이라는 이 상황을 잊으려 존 레넌의 노래를 반복해 들었다. 존 레넌은 나와 다른 성별인 여자가 반이고 그 여자를 사랑해야 한다고 노래한다. 그러니 나도 그들을 사랑할 수 있다는 거짓말이라도 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후 2년 9개월이 지나 그때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대통령이 계엄령을 발포했다. 불안이 오래되면 공포가 되는가? 계엄령이 발포된 이후 나와 같은 선택을 했었던 이 세상 사람의 반이 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광장으로 나왔고 나와 선택을 달리 했었던 사람들의 반이 광장으로 돌아왔다. 이제 다시 거리에 나가면 나를 지나치는 사람의 거의 대부분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호모사피엔스가 거대한 집단을 이루고 최고 포식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유발 하라리가 말한 대로 거짓말을 만들어내 서로 신뢰를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서로를 얼마만큼 신뢰하는가? 지금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신뢰도 사랑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다른 불안에 휩싸인다. 이 추운 겨울을 지새는 응원봉을 가진 키세스단을 보며 그때처럼 존 레넌의 ‘woman’를 듣지 않는다. 대신 광장에 나가 지디드래건의 ‘삐딱하게’를 따라 부른다.
‘영원한 건 절대 없어
결국에 넌 변했지
이유도 없어 진심도 없어
사랑 같은 소리 따윈 집어 쳐
오늘밤은 삐딱하게’
그래 오늘밤은 삐딱하게 굴어도 된다. 딱 오늘밤만은 삐딱해져야 한다. 그리고 다시 노래를 불러야 한다.
‘영원한 건 절대 없어
결국에 넌 변하지
이유가 있어 진심이 있어
증오 같은 소리 따윈 집어 쳐
오늘밤은 뭉클하게’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가지는 증오심에 더욱 불안을 느낀다. 다시 우리들이 손잡고 아리랑을 같이 부르는 날이 오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