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五後)에 대하여....

by 정원철

오후(五後)에 대하여....


오후(午後)는 ’ 정오부터 해가 질 때까지의 동안‘이다. 해는 서쪽으로 점점 기울어져 가고 그림자가 소리 없이 길어지는 시간이다. 한동안 매섭던 추위가 잠시 물러가고 햇빛이 무릎 위에 따스하게 내려왔다. 경의선 숲길에 오랜만에 찾아온 햇살을 느끼며 나른한 오후를 보내고 있을 때였다. 마른나무의 그림자가 길게 누운 시각에 오후(午後)라는 단어가 난데없이 오십이후(五十以後)를 끌고 왔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 오후는 어떻게 보내고 있나요?‘라는 말을 ’오십 이후는 어떻게 살고 있나요?‘로 바꿔 불렀다.

시계를 보니 오후 5시를 넘어섰다. 해가 짧은 겨울이기에 곧 오후도 끝이 난다. 그림자가 길게 드리우는 오후(午後)가 인생의 오십이후(五十以後)로 연상되는 지금은 한 해를 보내기 이틀 전이다. 은행에서 어제 가져온 새해 캘린더에 새로운 숫자가 새겨져 있다. 새해 달력에는 인심 쓰듯 올해 마지막 12월 달력 한 장이 덤으로 붙어있다. 곧 찢겨 나가고 사라질 12월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처럼 보인다. 새해가 되면 캘린더의 숫자뿐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보는 세상의 숫자도 바뀐다. 세상은 나를 숫자로 인식한다. 나에게 부여된 주민등록번호는 나에게 붙여진 바코드와 같다. 이 코드를 가지고 세상은 나라는 사람의 모든 정보를 공유한다. 이 코드가 은행 업무나 여권발급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다. 나이를 따지고 드는 내 친구들과의 옥신각신은 결국 ‘민증을 까자’는 말로 끝을 맺는다. 산부인과 병동에서 태어나 발목에 태그를 붙이는 순간부터 내 몸에는 지울 수 없는 숫자가 새겨지는 것이다.


사람의 나이를 꼬리표 같은 숫자 대신 하루 중 어느 때에 머물러 있는지 생각해 본다. 오십 대 후반은 오후 5시를 넘어서서 그림자가 길어지는 시간이다. 아침에 떠오른 해가 밤새 잠든 그림자를 일으켜 세운다면 늦은 오후는 그림자가 편안히 드러눕는 시간이다. 사람마다 나이를 바라보는 차이가 있겠지만 오십 대 후반은 고요하고 차분한 기운이 숲 전체에 퍼지는 오후(午後)를 닮아야 한다. 오후(午後)가 오십이후(五十以後)로 연상되는 이유이다. ‘오후에는 뭐 하세요?’라고 살짝 나에게 물어본다. 오후(午後)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산책하고 싶다. 편한 바지에 후드재킷을 걸치고 모자를 쓰고 사랑하는 사람 옆에서 걷고 싶다.


올봄부터 일을 마치고 경의선 숲길을 걷기 시작했다. 어느 때부터인지 하루 만보 걷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걷기가 건강에 좋다는 말이 돌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국민운동으로 번져 공원 어디를 가도 사람들이 걷고있다. 일단 걷기 시작하면 30분 정도는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고 사라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몸이 일정한 리듬으로 걸음을 반복하면 무념의 시간으로 들어간다. 걷기 명상을 제대로 배운 적은 없지만 걷기를 통한 명상은 이와 비슷한 경험이지 않을까 싶다. 하루가 저물어가는 오후(午後)는 지는 해를 나란히 하며 걷기에 좋은 시간이다. 좋으면 혼자 즐기면 되지 만나는 사람마다 전도사처럼 구는 어른과는 10분도 같이 있기 싫었다. 아니 귀찮았다. 그런데 요즘 아이에게 맛있는 음식 떠먹이는 심정으로 걷기를 권한다. 오십 이후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데 걷기만큼 좋은 약도 없다. 걷다 보면 입이 닫히고 마음이 열린다.


나에게 오십 이후는 무엇일까? 오십 이후는 정돈의 시간이다. 오후가 되면 부모님은 한낮에 방안을 어질고 놀았던 흔적들을 치우도록 잔소리를 하셨다. 오십이후(五後)는 오후에 어질러진 방 안을 정리 정돈하듯 지나온 시간에 남은 흔적들을 치워야 한다. 치우지 않고 살던 대로 살면 굳어지고 딱딱해져 어떠한 말도 글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이 시기부터 더욱 굳어지고 갈라선다. 오십이 넘은 사람이 바뀌길 바라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다. 그런 통념을 뒤집고 나는 바꿔보기로 했다. 이 삼십 대에는 서로의 취향이 달라도 같이 모여 있기만 해도 좋은 시절이었다. 어느 정신과의사는 그런 이유를 젊은 시절의 불안으로 설명한다. 혼자 있는 것보다 같이 모여 있기만 해도 안정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말에 공감이 됐다. 나 또한 친구들과 만나 불안한 미래를 이야기하며 그 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그동안 고민을 속없이 털어놓아도 싫은 내색 없이 들어주던 친구나 가족에게 고마움을 간직한다. 세상의 모든 불행이 자기에게만 닥친 듯 한숨 섞어 풀어놓더라도 푸념 없이 들어주던 이들을 기억한다. 돌이켜보니 한동안 나도 개인사로 푸념 많이 하고 오후(五後)로 접어들었다. 이제 나의 불안을 위해 만들어 놓은 관계를 정리하기로 했다. 너무 멀리 있는 친구나 억지로 나갔던 모임에 쏟을 에너지가 부족하다. 오후(午後)에 잘 걷고 있는 나를 오해 없이 손 흔들고 보내주기를 바란다.


오후가 되어 집에 오면 갈등에 빠진다. 그래도 낯이라고 할 시간이 길어야 두 시간 정도 남았을 때 고민에 빠진다.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꼬다리처럼 남은 시간을 두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 결국 가벼운 복장으로 산책길을 걷는다. 이 자투리 시간에 드럼을 치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해가 지고 하늘이 짙은 푸른빛으로 물드는 시간이 되어서야 집으로 들어온다. 그렇게 하루가 간다. 나는 누군가와 대화하기에 부족한 사람이다. 대화는 듣기가 중요하다. 솔직히 내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를 괴롭히는 일보다 자유롭게 글 쓰는 일이 더 낫다. 내 이야기를 글로 실컷 쏟아내고 나면 누군가와 이야기할 기운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 살아가면서 하고픈 이야기가 있으면 글로 쓰기로 했다. 무엇인가를 남기기 위해 쓰지 않는다. 누군가를 만나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이 없어서이다. 재미도 없는 이야기 듣다 보면 자꾸 시계만 본다. 이제 별다른 갈등 없이 하고픈 이야기를 글로 옮긴다. 글로 적으니 실수를 주어 담을 수 있어 좋다. 나도 모르게 실수로 말을 내뱉고 후회하는 일이 잦았다. 그럴 때마다 며칠씩 우울한 기분으로 지냈다. 오후에 나를 만난다. 오후는 일을 마치고 온전히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오십 이후에는 나를 만나며 산다. 그 시간을 설명하고 평가하지 않고 온전히 나와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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