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 만의 스피닝 속에서 살아남기

by 정원철

여자들 만의 스피닝 속에서 살아남기


“요즘은 뭐 하고 지내세요?”라고 물어오는 사람에게 “그냥 놉니다.” 정도의 답 이외에 달리 할 말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복직하기까지 상당한 기간을 무직으로 보냈었다. 어쩌다 보니 이른 나이에 은퇴 이후의 삶을 비자발적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직장에 나가지 않게 되면 한동안은 낮에 죄인처럼 바깥을 나가지 않는다. 무직이 길어지고 집돌이 생활이 지겨워지면 놀만 한 일이 없는지 주변을 기웃거리며 동네에 관심을 가지기에 이른다. 나도 은퇴자에게 정해진 길을 걷듯 집 근처에 있는 구립문화센터를 가보았다.


평일의 오전 시간에 구립문화센터는 온전히 여자들의 시간이다. 가족들이 아침에 출근과 등교로 썰물 빠지듯 현관문을 통해 빠져나간 후 집안은 고요해지고 마지막으로 안주인이 운동을 나가면 집은 정적에 갇힌다. 집이 깊은 적막이 잠길 때 구립문화센터에는 야시장이 펼쳐지듯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내가 본 평일 오전 시간의 문화센터는 주부들의 놀이공원이고 해방광장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침 10시 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강습프로그램은 온통 주부들을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들로 짜여 있었다. 수영은 아쿠아로빅, GX(Group Exercise)는 요가, 줌바, 라인댄스, 스피닝으로 모두 여자회원들이 독점하다시피 했다. 오전 10시의 문화센터에 음악이 켜지면 그녀들만의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GX 프로그램 강사의 열정적인 몸짓을 따라 온몸을 흔드는 여자들이 유리 칸막이 너머로 보였다. 문화센터의 강습프로그램에는 오전뿐만 아니라 오후와 저녁에도 별반 다를 게 없이 여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남자들은 저녁 강습프로그램 중의 요가반에 한 두 명이 가끔 보일 정도였다. 지금은 그래도 남자들을 요가반에서 심심찮게 얼굴을 볼 수 있다. 10여 년 전에는 여자들만의 공간에 남자 특히 중년 남자는 입장불가라고 써붙인 것도 없는데 남자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정확히 말하면 거절이 아니라 남자들 스스로 들어갈 마음을 사양한 것이다.

강습프로그램 중에 오전 스피닝 수업도 예외가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온몸을 흔들며 가끔 소리까지 지르는 사람들은 모두 여자들뿐이었다. 그 공간에 중년 남자 하나가 어느 날 겁도 없이 들어갈 경우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 상상할 수 있을까? 일단 여성 전용이라고는 하지 않았으니 쫓아낼 도리는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불편을 참고 내버려 둘 생각도 없어 보인다. 일단 그녀들은 말이 없어지고 바로 옆에 있는 여자들부터 표시 나지 않게 눈치를 준다. 스스로 그만두도록 투명인간 취급도 한다. 그래도 수업에 몇 번 얼굴을 비추면 좀 두고 보자는 생각인지 잠시 관심을 두지 않고 지켜만 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여자들이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스피닝 룸에 내가 처음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이 둘을 모두 겪었다. 그리고, 종국에는 ‘뭐 하시는 분이세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 말은 평일 아침에 남자라는 작자들을 밖으로 몰아내고 겨우 사람처럼 살려고 왔는데 내가 또 남자를 보고 있으니 불편하다는 말로 들렸다. 불편함으로 따지자면 내가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수업에 들어가면 자전거에 이름표 붙여 놓은 것도 아닌데 맨 뒷자리 구석이 내 자전거였다. 앞자리 중앙에 자리를 만들어 준다 해도 태연히 앞으로 나갈 생각은 추호도 생기지 않는다. 신나게 흔들어 대는 여자들의 몸짓 곁에 아저씨가 반 박자 엇박자로 비틀어대는 몸을 차마 보여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꾸 한 박자 늦게 따라 하는 몸짓으로 나는 좀 모자란 아저씨가 되어있었다. 스피닝을 계속할 수 있을지 엄두가 나지 않아 다음 달 재등록을 고민했다.


삼 개월 정도가 지났다. 맨 뒷줄 구석에서 여자들의 시선을 회피하며 자전거에 올라 숨이 넘어가도록 자전거를 타고 온몸을 과감히 흔들었다. 나의 처절한 몸짓에 스피닝 쌤이 용기를 주며 더욱 나의 웃기는 몸짓을 부추겼다. 스피닝 쌤은 내가 그만둘 줄 알았는데 대단하다며 가끔 칭찬도 해주고 용기도 주었다. 소리도 같이 질러 보라고 해서 목청을 높였는데 내가 들어도 고라니 울음소리 같았다. 여자들만의 가느다란 목소리 속에 쇳소리가 스피닝룸 안을 거칠게 할퀴는 듯했다. 스피닝 반의 분위기는 점점 이상한 기운이 흘렀다. 잠시 경계심을 놓고 있었던 나의 존재가 거칠게 질러대는 쇳소리로 다시금 그녀들의 신경을 건드렸을 것이다.

어느 날 누군가 공손한 말로 물어왔다.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뭐 하시는 분이세요?” 나는 대답했다. “그냥 놉니다.” 실제로 하는 일 없이 놀고 있을 때였다. 그녀들은 아마도 내가 변호사, 의사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전문직 프리랜서 정도를 예상했던 것 같다. 그만두지 않고 계속 나와서 신경 쓰이게 불편한 중년 남자의 신분이라도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기대했던 대답 대신에 하는 일이 없다는 중년 남자는 위험한 건달에 가깝다. 여자들만 모여 운동하는 스피닝 교실에 들어가 운동하겠다고 마음먹은 나는 그녀들에게 사심 가득하고 위험한 건달로 보일 수도 있다. 아마 그렇게 보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건 스피닝 운동을 시작하고 한 참이 지난 뒤였다. 스피닝 반에 들어간 처음 몇 달은 선생님의 현란한 동작을 따라 하느라 잠시 잠깐 딴생각할 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운동도 많은데 굳이 자기들끼리 재미있게 운동하는데 어느 날 불쑥 나타나서 일부러 불편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눈치가 보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어 그만둘까 했지만 정작 스피닝을 하다 보니 재미가 생겼고 다른 사람들 눈치 보여 그만두자니 약간의 오기도 발동했던 것 같다.


여자들만의 스피닝에 끼여 운동을 시작한 일을 가지고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들먹이는 게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좀 억지를 부려보자면 여자들만이 운동하고 있는 GX에 여성 전용이라고 써 붙인 것도 아닌데 남자들은 왜 이곳에서 운동하지 않는 것일까? 내가 요가반에 들어가려 하는데 어느 남자분이 나에게 말했다. “그곳은 여자들만 있지 않나요?” 여자들만 있는 곳에 남자가 운동을 이유로 들어가는 것은 암묵적 금기인 것이다. 내가 대답했다. “사람들이 있어요.”요즘은 요가나 스피닝에 남자들의 얼굴이 많이 보인다. 그런데 내가 요즘에 새롭게 시작한 스텝박스 프로그램에는 아직 남자는 나 혼자뿐이다. 라인댄스반에 남자 한 분이 들어가는 것을 목격했다. 마음속으로 라인댄스까지 들어가해 볼 용기는 생기지 않는 나를 보며 그분이 대단해 보였다. 여자들만의 GX 룸에서 남자가 살아남는 방법은 단순하지만 녹녹지 않다. 내가 아는 그 단순한 방법은 이것이다. 무조건 삼 개월은 바보 취급을 받더라도 GX수업에 참여해 열정을 다해 운동하면 자연스럽게 벽은 무너진다. 스피닝 교실에 들어가 삼 개월 동안은 뒷줄 구석에서 묵묵히 자전거에만 집중했다. 삼 개월 정도가 지나니 내가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스피닝 교실에 전염되어 퍼지는 걸 느꼈다. 육 개월 정도가 지나니 인사를 나누고 서로 반겨 주는 정도의 거리를 확보했다. 그리고, 일 년 정도가 되었을 때 같이 점심 약속을 잡고 정기 모임에 초대를 받았다. 그 여자들은 자신들의 일상 속으로 위험한 동물을 들이는 경계를 넘어선 것이다. 세상의 편견을 깨고 평일 오전 시간 스피닝 교실에서 여자들과 소통은 단순했다. 스피닝 수업에서 내 열정을 쏟아 내면 여자라는 사람들은 나의 열정에 화답하고 스피닝 수업은 한 시간 동안 뜨거웠다. 급기야 스피닝 선생은 둘이서 사설로 수업을 같이 진행해 보자며 농담처럼 제안했다.


코로나와 이사로 스피닝을 중단했다가 새로 이사 온 동네에서 다시 GX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요가와 스피닝반에는 이미 다른 남자들이 고인 물처럼 열심히 운동하고 있었다. 여자들이 대부분인 GX 프로그램에 남자들이 심심찮게 얼굴이 보인다. 소통은 서로의 관심에 몰입으로 연결되는 일이다. 서로의 마음을 알기 위해 대화하는 대신 서로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열리고 연결이 이루어진다. 요즘은 스텝박스 프로그램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리키라는 이름을 쓰는 스텝박스 선생은 남자이다. GX 프로그램 중에 스텝박스 반에서 운동하는 여자들의 수가 가장 적다. 물론 남자는 없다. 이유는 이 운동이 생각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스텝박스는 너무도 단순한 운동인데 리키라는 선생의 매주 바뀌는 안무를 따라 하기에 너무 어렵다. 새로 이 수업에 들어온 사람은 어설프게도 따라 할 수가 없어 그냥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수업에 들어가 구석에서 삼 개월째 하다 그만두다를 반복하고 있다. 새로운 몸짓을 배우며 내 몸 쓰임에 집중하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리키가 어디선가 들었었던 말을 했다. “많이 늘으셨어요. 계속해서 나오세요.” 리키도 수업에 들어왔다 어려워서 그만두고 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겪었을 것이다. 그도 알고 있는 것이다. 누가 자신의 한계라는 벽을 무너뜨리고 이 수업을 계속해 갈지 감으로 아는 것이다. 이번에는 여자들만의 스텝박스에서 살아남기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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