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지난해 유럽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서울은 장마가 끝나가고 있었다. 한차례 내린 비로 아스팔트가 젖는가 싶더니 내리쬐는 햇살에 흔적도 없이 말라버렸다. 세상의 모든 존재가 소멸할 것처럼 이마가 지근거리게 햇볕이 내리쬐었다. 거리에 나오면 아스팔트가 토해내는 열기와 허공을 가득 메운 매미 소리로 정신이 몽롱해질 지경이었다. 매미가 쉼 없이 울어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매미소리가 뚝 끊기고 사라졌다. 여름의 더위와 매미의 소란이 물 빠지듯 사라지자 콘크리트 도시 속에서 생기 없이 살아가는 내가 드러났다. 광야는 40일간의 기도로 끝을 맺던데 회사 밖에서의 생활이 이렇게 길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새 보도블록 위로 낙엽이 구르다 바스러져 거리 위로 흩어졌다. 일 년이 다 가고 그렇게 해가 바뀌어 갔다. 지루한 오후들이 지나가고 반갑지 않은 밤이 찾아오면 무위로 보낸 시간들이 창을 들고 몰려와 나를 에워쌌다.
어느 날 인도와 네팔에 가겠다는 마음이 정확한 이유도 없이 마음 한구석에 또아리를 틀었다. 왜 하필 인도와 네팔에 가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마음속에 한 번 뿌려진 욕망의 씨앗은 물 한번 준 적도 없는데 스스로 넝쿨 자라 듯 자라나서 더 이상 내 안에 두기가 어려워졌다. 어떻게 해서라도 그곳에 가면 뭔가 안갯속에서 길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한 치 앞도 생각하지 않고 인도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고 한남동 인도비자센터를 방문했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며 준비해 간 비자서류를 만지작거렸다. ’도대체 나는 무슨 생각을 가지고 인도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예매한 거지?‘ 물었다. 마음이 결정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나를 잡아 끄는 듯했다. 마치 주문에 걸린 사람 같았다. 인도로 혼자서 떠나는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네팔을 거쳐 돌아왔다.
인도와 네팔 여행으로 내 삶은 여행 전과 후로 나뉘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실체 없는 생각의 두려움에 갇히고 표피를 둘러싼 물질의 실상에 눈이 먼채로 살아왔다. 인도여행은 삶의 본연의 실체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이 순간의 감각에 집중되는 체험으로 나를 이끌었다. 마침내 나의 헛된 욕망이 산산히 부서지고 생각이 빗장을 풀고 걸어 나왔다.
’ 오지 않는 기차를 기약없이 기다려 본 적이 있는가?‘ 정해진 시간에 오는 기차를 타는 사람은 10분의 도착지연에도 화를 참지 못한다. 기약 없이 지연되는 기차를 기다리는 플랫폼에 앉아 시간이라는 숫자의 허망함을 깨닫는다. 삶은 그저 지금을 숨 쉬고 느끼고 살아갈 뿐이다. 기차를 기다리지 않는다. 언제쯤 도착할지 가늠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저기가 아니고 여기에 있음을 알아차린다. 이 알아차림이 절실히 그리워진다. 다시 인도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