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2일 오후 3시 30분 배낭을 메고 현관문을 열었다. 그 순간 앞으로 한 달 동안 펼쳐질 이 여행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발길이 마치 영장 받고 군대 가는 꼴 같았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아직도 늦지 않았으니 포기하라고 붙잡았으나 내 발길은 내 의지와 정반대로 정류장으로 향했다. 어느새 인가 몸은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있었다. 지금부터는 누군가의 글처럼 시간에 나를 맡기고 삶이 알아서 할 것이다.
방콕 현지시간으로 2017년 2월 3일 새벽 01시 20분 수완나폼 공항에 도착했다. 아침 7시에 출발하는 뉴델리행 비행기로 갈아타기 위해 6시간 가까이 이곳 수완나폼 공항에서 기다려야 했다. 내 나이가 30대만 되었어도 인도 배낭여행은 나를 충분히 흥분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오십이 목전인 지금은 흥분이 아닌 걱정과 불안으로 기가 질려있었다. 뉴델리행 비행기로 환승할 탑승구에는 온통 인도 사람들뿐이었다. 인도로 가는 배낭여행자들이 많을 거라는 내 확신에 찬 예상이 벗어나자 불안해졌다. 그냥 가방을 가슴에 안고 한숨 쉬며 비행기를 기다렸다.
뉴델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조드푸르행 국내선으로 환승해야 했다. 뉴델리 공항에서 조드푸르행 국내선으로 갈아타는 게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뉴델리 공항 국제선에서 짐을 찾고 다시 국내선으로 이동해 티켓팅을 하고 조드푸르행 비행기를 타는 데까지 3시간이 주어졌다. 인도에 도착한 감흥을 느낄 여유도 없이 짐을 찾기 위해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섰다. ‘인천에서 방콕을 경유해 수화물이 제대로 왔을까? 왜 이렇게 나오지 않는 거지...’ 조바심에 자꾸 시계를 쳐다보았다. 내 짐이 보이자 안도하고 조드푸르행 비행기표를 찾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일단 인도로 가는 비행기를 타면 어디엔가 한국 여행자들이 있을 것이고 그들에게서 여행의 첫 단추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드푸르에 도착할 때 까지 한국 여행자를 만나지 못했다. 예상이 빗나갔다. 혼자 떠난 인도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2010년도 장유정 감독의 ‘김종욱찾기’라는 영화로 조드푸르는 이미 다녀온 듯이 마음에 가까이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 어디에서 자고 먹을 것인지 이미 정해놓았기에 자신있게 혼자서 떠날 수 있었다. 조드푸르 공항에 내리니 인도는 영화 속의 한 장면을 지나듯 너무도 편안했다. 공항을 나와 미리 예약해둔 숙소로 가기위해 오토릭샤를 탔다. ‘선샤인게스트하우스’를 한국여행자들은 여행후기에 인도여행의 모임장소처럼 적어 놓았다. 이곳에서 인도여행의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숙소를 미리 예약했었다.
오토릭샤는 선샤인 게하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나를 메헤랑가르성 입구에 내려 놓았다. 선샤인까지는 메헤랑가르 성에서 골목길로 걸어서 찾아가야 했다. 메헤랑가르 성 앞에는 하늘을 선회하는 독수리와 뭐가 뭔지도 모르고 들뜬 마음과 놀란 눈으로 세상과 조우한 겁 많은 중년 한 사람이 황량한 들판에 서있었다. 그게 바로 나라는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막막했다. ‘누구에게 길을 물어서 저 골목길안의 숙소를 찾아가야 하나?‘ 골목길로 발길을 들였다. 골목길에서의 첫 만남은 사람이 아니라 개들이었다. 인도에서는 광견병에 걸린 개에 물려 매년 2만여 명이 사망한다는 기사를 읽었었다. 인도에 오기 전에 파상풍과 장티푸스 예방주사를 맞았다. 인도에 가지 전 충분히 준비했는데 개를 대하는 법은 챙기지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개를 무서워하는데 개에 물려서 여행을 망칠까 두려웠다. 아무도 없는 골목에서 이 무시무시하게 생긴 개들을 지나치고 가기가 오싹했는데 금새라도 물것처럼 짖어대니 등에서 땀이 흘렀다. 개와 맞추칠 때마다 지나가지 못하고 돌아서서 도움을 청할 사람의 흔적을 찾아야 했다. 골목길의 개들은 공포 그 자체였다. 부끄럽지만 정말 개가 무서웠다. 몇 번의 식은 땀과 인도 아이들의 도움으로 골목길 안의 ’선샤인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