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에 도착해 배낭을 침대 위에 내려놓으니 긴장한 마음이 일순간 내려앉았다. 이곳 조드푸르 숙소의 침대에 몸을 누이기까지 꼬박 하루가 걸렸다. 침대 하나 놓인 방이 전부인 이 곳 숙소에 대한 평가는 배부른 사치였다. 그저 방안에 있는 것 만으로 집주인에게 감사하다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한국말 잘하는 주인이 피로에 지친 내 모습을 보고 짜이를 권했다. 짜이를 담은 잔을 들고서 배앓이에 대한 경계심으로 머뭇거리다 한 모금을 입에 대었다 떼었다. 첫날부터 인도의 천 가지 얼굴에 얼이 빠졌다. 릭샤, 사람, 개에 쫄았고 이제는 짜이에도 쫄아 있었다. 폼은 진작에 망가졌고 이제는 체면도 없었다. 여유 있는 목소리는 진작에 사라져 잊었고 누구에게라도 "프리즈~"를 입에 달고 있었다. 인도에 온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인도에 완전히 무릎을 꿇었다. "사람 참 폼 안 나오게 하는구나" 혼자 속으로 뇌까렸다.
짐을 대충 방에 던져두고 옥탑(여기서는 '루프탑'이라고 한다)으로 가 보았다. 내가 찾는 건 한국인이었다. 이곳에 방을 잡은 것도 한국인이 이곳에 가장 많이 모인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코리언에게 인도 여행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했다. 호기 있게 혼자 여행 와서 하루 아니 한 시간도 안 되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옥탑에 올라가 보니 세월의 흔적이 만들어낸 거뭇거뭇한 성벽이 바로 눈 앞에 있는 것처럼 올려다 보였다. 메헤랑가르 요새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인간의 질기고 질긴 생명력이 메헤랑가르 성벽에 덕지덕지 붙어 끈적끈적한 진액을 흘러내리고 있는 것 만 같았다. 인도는 도대체 어떤 나라인지 점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옥탑에서 넋을 잃고 메헤랑가르 요새를 보고 있었다. 누군가 옥탑으로 올라왔다. 내가 찾던 한국인이었다. 그의 얼굴에 후광이 보였고 참하게 생긴 미소로 나를 맞아 주었다. 나는 갓 부화한 오리 마냥 주저 없이 다가가 너와 나는 이렇게 만날 운명이었다는 듯 반갑게 인사했다. 그렇게 상훈이를 만났다. 상훈이가 OO대학교 졸업반이라는 걸 알고서는 우리의 만남을 운명적인 만남으로 비약시켜 가고 있었다. “인도에서 나의 첫 만남이 학교 후배일 확률이 얼마나 되겠냐” 라며 상훈이가 그렇게 생각하든지 말든지 관계없이 운명을 꽤 설득력 있게 주입시켰다. 그리고, 곧 착한 상훈이의 손을 잡고 조드푸르의 골목길을 나섰다.
우선 핸드폰의 유심칩과 데이터를 이용하려고 통신 가게에 들리기로 했다. 통신 가게로 가는 길은 엉키고 설킨 차와 사람들로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인도와의 만남은 엉키고 설킨 실타래 같았다. 모두 일제히 눌러대는 경적소리로 고막이 아파올 지경이었다. 내가 맞닥뜨린 모든 현실을 밀어내고 있었다. 이 더러움이 싫고 무질서하고 혼란스럽고 침흘리고 피부병 걸린 개도 싫었다. 인도가 내뿜는 에너지가 내 몸속으로 들어와 피와 뒤섞이는 듯 했다. 몸이 아파왔다.
듬직한 후배 상훈이에게 저녁을 사주고 싶었다. 조드푸르의 사다르 바자르 근처에 있는 ‘인디 큐’라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날 먹은 음식값이 인도 여행 중 가장 비쌌다. 인디 큐에서 바라본 메헤랑가르 요새는 골목길의 소음과 혼란으로 굳어 버린 듯 석양에 숨어 있었다. 이 미칠 것 같은 혼돈이 인디 큐에서 바라보니 믿지 못할 정도로 차분해 보였다.
선샤인 게스트하우스 루프탑에서의 두 번째 만남은 OO대 다니는 친군이와 하연이였다. 한국말 쓰는 사람은 무조건 형제자매처럼 반가운 내 지나친 감격이 그냥 지나칠 인연을 만들었다. 루프탑에 올라온 그들을 붙잡고 맥주를 사주며 올망졸망 예쁜 입으로 쏟아놓는 여행담을 호기심 가득히 들었다. 혹시 내가 알아야 할 만한 게 있는지 귀를 쫑긋 세웠다. 여전히 인도에서 홀로 여행은 자신이 없었다. 무언가 쓸 만한 정보가 있는지 찾아 애쓰는 허약한 중년이 애처롭게 맥주를 미끼로 인도에서의 첫날을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