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기차는 12시간을 넘게 달려 오전 11시 20분 아그라캔트 역에 도착했다. 아그라는 타지마할이 있는 곳이다. 인도하면 떠올리게 되는 시그니쳐가 타지마할이다. 타지마할은 무굴제국의 황제였던 ‘샤 자한’이 왕비 ‘뭄타즈 마할’을 추모하여 22년간에 걸쳐 건축한 아내 사랑의 결과물이다. ‘샤 자한’은 세상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주려고 이런 아름다운 건축물을 남겼을까? 혹시 황제의 사랑은 평범하지 않고 유일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내 눈에 담긴 저 아름다움은 사랑이라기보다 인간의 오만과 광기처럼 보였다. 자신의 아내 사랑의 결과로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지고 나라의 재정도 파탄이 났다. 결국 그의 말년도 골육상쟁의 비극으로 끝이 났는데 타지마할 탓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기차역에 나와 수많은 릭샤왈라의 귀 따가운 호객소리 중에 한 사람의 릭샤에 올라탔다. 아그라에 오기 전 예약해둔 타지마할 옆 시드하타 호텔에 갔다. 오늘 밤에 바라나시로 떠날 예정이었으나 밤늦게까지 머무를 공간이 필요했다. 호텔 주인은 한국어로 반말을 지껄였다. 그냥 서툰 한국어려니 넘어갔는데 자꾸 들으니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그와의 농을 그만두고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타지마할로 갔다.
타지마할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의 줄이 끝이 없었다. 인도인들에게도 타지마할은 특별한 곳이었다. 인도에서는 외국인들에 대한 특별대우가 있었다. 외국인 입장 전용 게이트를 통해 기다리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다. 타지마할은 사진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였다. 아름다운 인간의 인공물이 정갈하고 깨끗한 모습으로 서있었다. 흰색 대리석의 균형 잡힌 자태에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러나 마음까지 끌어당기지는 않았다. 아름다움에 대한 개인차가 존재하는 법이다. 나에게는 그다지 신선하지 않았다. 무엇 때문인지 심사가 잔뜩 뒤틀려 타지마할을 시큰둥하게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아그라로 들어오는 길에서 보았던 광경이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은 탓이었다.
아그라로 들어오는 기찻길 옆은 온갖 쓰레기 더미 투성이었다. 쓰레기만 있었어도 괜찮았다. 사람들이 쓰레기 더미에 파묻혀 살고 있었다. 어른들은 할 일 없이 앉아 있었고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무언가를 뒤지고 있었다. 이들은 명목상 폐지된 카스트제도 속에서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대로 살다가 죽을 것이다. 더럽고 악취 나는 인간의 삶과 너무도 대비되는 백색의 대리석 타지마할에서 역겨움마저 느꼈다.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벗어나고자 열망하고 도전하는 사람이 있다. 인도에는 이런 불가촉천민 중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 때로는 그들을 내세워 카스트제도가 더 이상 인도에 존재하지 않다는 홍보로 쓰이기도 한다.
바라나시로 출발하는 기차 시간이 10시 50분이지만 기차는 언제 도착할지 모른다. 그래도 ‘cleartrip’이라는 어플을 이용하면 기차가 얼마나 늦는지 가늠할 수는 있으나 이도 정확하지는 않다. 아그라에 도착했을 때 머무를 호텔을 정하고 머무른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저녁은 아그라 시내의 식당에서 해결했다. 식당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은데 한국 손님들이 제법 드나들었다. 한국에서 은퇴하고 여행하는 듯해 보이는 남자 네 분이 여행에 대해 옥신각신했다. 아무래도 의견 일치가 쉬어 보이지 않았다.
호텔 방에서 어플로 연착을 확인하며 역으로 가야 할 시간을 살폈다. 어플로는 2시간 연착이라는데 이마저도 믿을 게 안 되었다. 너무 늦으면 호텔에서 역으로 가는 릭샤가 끊길 판이었다. 호텔에서 더 지체할 수 없어 역으로 일단 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아그라의 밤 12시는 적막 그 자체였다. 불 꺼진 길에 어슬렁거리는 물체는 개들 뿐이었다. 릭샤는 거의 운행을 마쳐 거리에 릭샤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릭샤가 없으면 기차역에 갈 도리가 없었다. 집으로 들어가는 릭샤 하나를 잡아 세우고 사정했다. 그야말로 따따블을 외치고 강남역 한복판에서 술에 취해 택시를 잡는 생각이 났다. 지금은 릭샤가 갑이었다. 낮에 그토록 내 뒤를 30여 미터나 뒤쫓으며 애걸하던 릭샤는 없었다. 지금은 릭샤왈라 뒤를 쫓으며 사정하고 있는 처지로 바뀌었다. 한나절 만에 처지가 이렇게 바뀔 수 있다. 웃음만 나왔다.
기차가 아그라캔트 역에 도착한 것은 3시간을 연착한 다음날 새벽 1시 50분이었다. 3시간 연착은 예상하고 있었으니 많이 연착한 것은 아니었다. 바라나시로 갈 기차의 '슬리퍼(기차 객실의 등급)' 칸을 확인하고 기차에 올랐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기차 안은 지린내와 악취가 진동하고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사람들로 가득했다. 내 자리를 간신히 찾아 깊은 잠에 빠진 인도인을 흔들어 깨웠다. 가까스로 자리를 잡고 침낭을 펴고 누웠다. 15시간 이상은 이러고 가야 했다. 기차 안은 깊은 동굴 속 같았다. 침낭 안으로 들어가니 애벌레가 나비를 꿈꾸며 고치실을 칭칭 두르는 듯 했다. 침낭 안에서 변태를 위한 뒤척임도 잠시 언제인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난날 중 가장 불편한 곳에서 가장 깊은 단잠에 빠졌다.
일어나 보니 날이 밝은지 꽤 되어 보였다. 시계는 8시를 넘어 가리켰다. 기차는 바라나시를 향해 밤새 달리고 있었다. 몸을 반쯤 일으켜 세워 달리는 기차의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차창 밖 풍경은 생각할 겨를 도 주지 않고 지나쳐 갔다. 무언가에 빠져들 듯 풍경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내가 사라지고 풍경의 한 부분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