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시로 가는 길 (2017년 2월 15일)
바라나시로 가는 길 (2017년 2월 15일)
아그라에서 새벽에 출발한 기차가 해가 뜨고 중천을 지나도록 쉼 없이 대지를 가로질러 갔다. 금세라도 탈선할듯한 기차의 쇳소리가 대지의 노란 이삭을 할퀴었다. 기차가 바라나시에 거의 도착할 즈음 사람들의 흔적들이 기차길 옆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온갖 쓰레기를 펼쳐 놓은 기찻길이 계속 되었다. 탑을 쌓아놓은 소똥이 이따금 지나쳐갔다. 인도에서는 말린 소똥을 땔감으로 이용한다. 인간이 버린 비닐쓰레기와 인간이 주워놓은 소똥의 극적인 대비가 바라나시로 들어서는 마음을 긴장시켰다. 기차가 바라나시 정선역에 멈추어 섰다. 시간은 오후 5시를 훌쩍 넘겼다.
바라나시 역을 나오니 기차에서 내린 손님들을 잡기 위해 릭샤왈라의 호객이 거의 필사적이었다. 배낭을 멘 여행객은 너나없이 불나방처럼 몰려든 릭샤왈라에게 둘러싸였다. “코리아? 안녕하세요? 어디 가요? 고돌리아?” 바라나시에 온 배낭여행자들은 거의 고돌리아로 향했다. 고돌리아는 바라나시를 가로 흐르는 갠지스강의 가트로 가는 길목이었다. 릭샤왈라의 호객을 못 본 체하고 기차역을 벗어나 나이가 조금 지긋한 릭샤왈라와 흥정을 해 고돌리아로 향했다.
고돌리아에 도착해서 가트까지는 걸어서 갈 수 밖에는 없었다. 사이클 릭샤를 타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앞으로 가기에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었다. 가트 옆에 '기타페잉 게스트하우스'를 아그라에서 예약해 두었다. 기타페잉 게스트하우스는 고돌리아 거리를 지나 가트옆에 있었다. 한국 여행자들에게 꽤나 인기있는 이 숙소는아그라에서 주인장 띵구에게 사정해서 간신히 빈방을 구했다. 고돌리아 거리가 끝날때 까지 걸어서 가야 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소음과 혼돈이 이제는 익숙했다. 이것저것 눈길이 잡아끄는대로 잠시 마을을 빼앗기기도 했다. 지나치다 부딪히는 사람들에게 ‘나마스테’하고 자연스럽게 인사하는 여유마저 생겼다. 이 지랄 맞은 소음과 소란 속에서 낯설지도 불편하지도 않았다. 이제는 인도의 속살을 볼 준비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고돌리아 거리가 끝날 즈음 골목길로 들어가니 ‘BABA Lassi’가 보였다. 라씨 가게를 보니 무척 반가웠다. 이제는 시금털털하고 어디서 어떻게 숙성한 지도 알 수 없는 라씨가 거의 내 주식이었다. 아이스크림 먹듯이 라씨 하나를 해치우고 기타페잉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인도 여행자라면 누구나 왔다 간다는 바라나시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