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시의 일상
인도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이곳 바라나시로 모여들었다. 가장 인도다운 인도를 느낄 수 있다는 말로 여행자들은 바라나시를 지나칠 수 없었다. 바라나시에서 인도를 마음에 담고자 갠지스 강변에 몰려들었다. 그러나, 바라나시에 대한 수많은 정보로 갠지스강의 신비로움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갠지스강에 관광객을 태운 보트가 길게 늘어섰다. 바라나시에 오는 이유는 이미 알고 있는 인도를 확인해 보는 정도였다. 갠지스강이 삶과 죽음의 성찰에 대해 펼쳐 놓아도 머리에 심어진 앎이 갠지스강을 샅샅이 해석해 버린 이상 바라나시는 앎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화장터 옆의 숙소에서 지내는 며칠로 죽음을 마주하는 인간의 영적 체험을 기대하는 여행자는 없었다. 다만 갠지스강의 가트에 천의 얼굴을 한 인도 사람들이 몰려들고 이를 구경하기 위해 여행자들이 찾아오고 다시 이 여행자들이 갠지스강의 보트꾼들을 불러 모았다. 해가 지고 이 보트를 따라 갠지스강의 새들이 모여들었다. 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아 가는 순간이 바라나시의 일상이었다.
#1 케다르가트의 아침
이른 아침 숙소를 나와 갠지스강의 가트를 따라 걸었다. 가트를 따라 걷다가 적당한 곳에 앉아 갠지스강의 일출과 강변의 일상을 바라보는 일이 하루의 시작이었다. 목욕하며 기도하는 사람, 명상에 잠긴 사두, 제사를 지내는 브라만, 빨래하는 도비왈라, 면도하는 사람, 뱃놀이하는 사람이 갠지스 강변의 가트를 나누어 갖고 있었다. 여기에는 소와 개들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가트의 계단에서 짜이를 파는 할아버지에게 짜이를 부탁했다. 아침의 짜이 한 잔은 맛보다 마음의 양식이었다. 달콤하고 진한 맛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갠지스강에 대한 이들의 신비한 믿음을 이해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들의 강은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옅은 안개가 낮게 드리워진 갠지스강의 건너편이 아득하게 보였다.
#2 화장터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바라나시의 화장터는 불이 꺼지지 않는다. 바라나시에서 화장하고 재를 갠지스강에 뿌려지기를 소원하는 망자들이 일 년 내내 줄지어 기다리기 때문이다. 인도인들에게 갠지스강에서의 화장은 무슨 의미일까? 바라나시에 머물며 께름칙하던 화장터가 조금 익숙해진 후에야 알게 되었다. 인도인들은 이 곳 바라나시의 갠지스강에서 화장을 하면 길고도 질긴 윤회를 끊을 수 있다고 믿었다. 죽어서 다시 태어나면 브라만으로 태어나게 해 달라는 기도를 예상했던 나는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도인들은 그 어느 것으로도 이승에서의 삶을 다시 살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내가 잘못 이해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다시 의심해 물었다. 인도인의 설명은 단호했다. 다시 태어나지 않고 윤회를 끊기를 소원한다고 했다. 삶이 무상하고 그로 인해 고통인 것이 이승의 삶이다. 다시 산다는 것이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니라는 힌두인의 믿음이 이해가 갔다.
#3 아프가니스탄 탄두리 치킨
바라나시에 오래 머물러 있는 사진작가의 안내로 정통 아프가니스탄 탄두리 치킨을 맛보러 숙소를 나섰다. 한밤중 골목골목을 지나고 건넜다. 길을 잃지 않으려고 사진작가의 뒤를 바싹 붙었다. '대관절 탄두리 치킨이 무엇인데 이 골목골목을 줄지어 걷는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도착해 보니 가게는 아프가니스탄 토굴처럼 허름했다. 이 가게 주인은 아프가니스탄의 무슬림이었다. 그는 자신의 탄두리 치킨에 자부심이 가득했다. 탄두리 치킨의 맛은 그가 자부심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려는데 무슬림이 친구가 왔다고 비질리안 볶음밥을 해주겠다며 기다리라고 했다. 그는 더럽기 짝이 없는 헝겊으로 쟁반을 쓱쓱 닦더니 한 주걱을 담아 주었다. 배는 이미 터질 듯 부른데 맨손으로 싹싹 먹어 치웠다. 이제는 거의 인도 사람처럼 먹고 마셨다. 돌아오는 길을 타박타박 걸으니 어느새 소화가 다 되었다.
#4 아뜨리 뿌자
매일 저녁 6시가 되면 영혼을 거두는 강가의 제사가 시작되었다. 뿌자 의식은 갠지스강의 ‘강가’ 여신에게 올리는 기도이다. 수많은 신을 섬기는 인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신으로 세명의 신이 있다. 창조의 신 ‘브라마’, 유지의 신 ‘비슈누’, 현세와 파괴의 신 ‘시바’이다. 바라나시는 이 세 신중 시바신이 살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창조의 신이었던 브라마 신이 가지고 있던 물병의 물이 바루나 가트와 아시 가트를 거쳐 바다로 흘러갔다. 바라나시는 바루나와 아시가 합쳐진 말이다. 이 푸자의식을 보기 위해 강의 수많은 배와 관광객이 모여들었다. 징과 북소리에 맞춰 순례자들이 기도를 올렸다.
뿌자 의식을 하는 동안 디아(Dia)라는 작은 꽃 접시에 촛불을 얹어 갠지스강에 흘러 보내며 소원을 비는 사람들이 많았다. 디아가 갠지스강에 가득했다. 나도 디아를 갠지스강에 띄워 보냈다. 수많은 소원들로 강물이 반짝였다. 나의 소원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떠내려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