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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철 Apr 10. 2021

북인도 - 뉴델리

인도를 떠나며 (2017년 2월 21일)

인도를 떠나며...

  바라나시 정선역에서 기차를 타고 17시간을 달려 2월 21일 오후 1시에 뉴델리 역에 도착했다. 바라나시에서 육로를 통해 네팔 포카라로 가기 위해서는 국경도시인 소나울리까지 가야 했다. 혼자서 육로를 통해 인도의 국경을 넘는 일이 망설여졌다. 소나울리에서 포카라까지의 버스길에 대한 두려움이 싹트더니 어느새인가 위험보다는 안전한 여행에도 가치가 있다고 자위하고 있었다.  

뉴델리에는 인도를 여행하는 한국 여행자들의 집합소가 있다. 빠하르간지의 ‘인도방랑기’라는 숙소였다.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네팔 카트만두를 거쳐 포카라까지 비행기를 이용하기로 했다. 

  인도에 온 이유는 모두 제각기이지만 인도를 다녀가고 나면 두 가지 마음 중 하나이다. 다시는 오지 않겠다는 사람과 꼭 다시 한번 오겠다는 사람이 있다. 어느 여행지에나 통용되는 말이지만 인도처럼 무 자르듯 양분되기도 어렵다. 치를 떨고 두 번 다시 오지 않겠다는 혐오와 병에 걸린 듯 다시 가고 싶은 갈망 어느 한쪽에서 인도앓이를 한다. 인도는 태연하게 불편함과 기다림을 펼쳐 놓았을 뿐인데 인도를 떠나는 날부터 갈망의 늪에 빠지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인도는 기다리고 기다림이 일상이었다. 무언가를 무작정 묵묵히 기다리는 일이 그리 쉽지 않았다. 밑도 끝도 없이 기다리는 일은 해보지 않으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지 못한다. 그 어려운 일이 여기 인도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언제 올지 모르는 기차를 기다리고 언제 도착할지도 모른 체 기차를 타고 가야 했다. 소가 지나가길 기다리고 때로는 기다리는 것 조차 감사한 일이었다. 릭샤의 고막 터질듯한 경적소리로 아수라장 같은 길 위에 먼지와 매연이 가득했다. 눈도 발도 어디 둘 곳이 없었다. 벗어나고 피하고 싶어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인도에 다시는 오지 않겠다는 독설을 거리에 쏟아 냈다. 쏟아낸 빈 속을 어이없게도 독한 매연이 내 속을 채웠다. 세상과의 불편한 줄다리기는 멈추지 않았다. 


  수많은 말들이 가르쳐 봐야 소용이 없었다.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려 애쓸수록 생각이 가득 채웠다. 벗어나려 몸부림 칠수록 늪에 빠진 사람처럼 더욱 내 몸에 인도가 질척하게 들러 붙어 있었다. 온 몸에 힘을 주고 놓지 않는 긴장은 더 나은 현실을 붙잡는 욕심이었다. 이제껏 나를 지탱한다고 믿어온 탐욕이 이곳 인도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달았다. 어느날 비워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니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이 찾아왔다. 잠시 눈을 감고 내맡겨 놓으면 릭샤의 경적소리, 기차 시간은 ‘소리와 시간’이라는 관념에 불과했다. 정작 부대끼고 아수라장인 것은 내 마음이었다. 인도에서는 허세와 허영이 부질없었다. 그래 봐야 지천에 널린 인간들이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보잘것없이 나약한 나는 그냥 나약해도 되었다. 누가 알까 두려워도 그냥 두려워하면 되었다. 나약하고 두려워한다고 비난하는 내 안의 내가 없었다. ‘나를 이처럼 봐주며 살았던 적이 있었을까?’ 기분 좋은 관대함이었다. 속살을 드러 내어도 부끄럽지 않았다. 짧은 기간이지만 내 안에 있던 순수한 나와 함께 산과 들을 마음껏 뛰어놀다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순수한 나를 인도에 두고 떠난다. 서울로 데려가 봐야 인도에서 마주한 내가 아닐 것을 알기에 인도에 남겨두고 간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와서 만날 날을 기약한다.

‘피르 멜렝게 (see you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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