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1450M의 힐레에서 시작해 울레리 고레파니를 거쳐 3200M의 푼힐 전망대를 다녀오는 코스이다. 포카라가 해발 900M이니 힐레까지 550M의 고도는 짚차로 오른다. 그 짚차를 오전 10시부터 산촌다람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짚차는 네팔 셀파 2명을 태우고 11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네팔의 산길을 짚차로 오르는 일이 무엇인지 경험해 보지 않았으니 알 도리가 없었다. 그저 짚차는 도착했고 계획대로 나는 차에 올랐고 짚차는 출발했다. 포카라의 포장도로는 여기저기 포장이 뜯겨 나가 거의 비포장에 가까웠다. 몸이 흔들리다가 이따금씩 크게 흔들렸다. 길이 왜 이러냐고 불평을 했다.
짚차가 포카라 시내를 빠져나와 본격적으로 비포장길과 산길로 접어들었다. 좀 전에 했던 불평이 사라졌다. 몸이 출렁출렁 춤을 추고 엉덩이가 자리에 붙어있지 않았다. 몸을 가누기도 어려워 불평할 틈이 없었다. 벼랑길을 내달리는 짚차가 코너를 돌 때는 나도 모르게 머리가 곤두섰다. 이렇게 짚차는 두 시간을 넘게 요동치며 산길을 올랐다. 트레킹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몸은 녹초가 되어 버렸다.
다리가 보이는 곳에서 입산자 체크를 위해 짚차가 멈추었다. 모르고 지나칠 뻔했는데 드라마 ‘나인’에 나온 곳이라고 동행이 사진을 찍었다. '나인'이라는 드라마 자체를 알지 못하는 나에게 그냥 철교였다. 철교에 반가운 마음으로 신이 난 동행의 기분을 맞추어 주었다. 잠시 짚차에서 내려 두발로 서 있기만 해도 살 것 같았다. 짚차는 다시 산길을 올랐다. 짚차는 오후2시가 다 되어서 힐레로 오르는 산길에 도착했다.
흙먼지 펄펄 날리는 산길에 다섯 명을 남겨두고 짚차는 되돌아 갔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트레킹을 시작해 2,120M의 울레리의 롯지에서 1박 할 예정이었다. 짚차를 타는 일이 너무 힘이 들었는지 낮은 계단으로 오르는 산길이 너무도 반가웠다.
발을 디딜 때마다 산들바람이 봄기운을 실어왔다. 햇살은 더없이 따스했고 천천히 오르는 길옆에 살랑대는 꽃과 풀들도 기분 좋아 보였다. 급히 오를 일도 없고 올라서도 안 되는 고산 트레킹이 마음에 쏙 들었다.
내 짐을 들어준 셀파는 20대이고 이름은 사르키였다. 고산에서 야생화를 따다 차를 만들어 파는 일을 주로 하고 간혹 일이 생기면 셀파를 한다고 했다. 사르키와 조용히 산을 오르는 일이 좋았다. 사르키의 배려 깊은 말없음이 조용한 산길을 오르는 내내 편안했다.
산을 오르는 중에 짐을 실은 당나귀들이 줄지어 올라와 길에서 잠시 비켜섰다. 등에 얹은 짐이 위태하게 보였다. 목에 메 단 방울소리가 지나면 다시 산길을 걸었다. 트레킹의 길은 당나귀가 우선이었다.
산길을 중간중간에 쉼터와 롯지가 이어졌다. 네팔 사람들의 산골생활이 우리네 산골마을과 많이 닮아 있었다. 산골 아이들의 맑은 웃음을 카메라에 담았다. 볼 때마다 마음은 아이들의 웃음으로 행복했다.
봄이 땅 밑에서부터 시작된 듯했다. 농부가 소에 쟁기를 걸어 다랭이논을 쟁기질을 했다. 농부의 쟁기질에 땅의 속살이 올라와 봄기운을 맞았다. 산에 오른 지 두 시간 반 정도가 지나 오늘 하루 묵어갈 울레리에 도착했다.
롯지는 생각보다 아늑하고 좋았다. 방안에 들어오니 창문 너머로 하늘이 보였다. 오늘 밤 밤하늘의 별이 잘 보일 것 같았다. 저녁은 야채 계란 볶음밥, 스파게티, 치킨 모모를 시켜 먹어보았다.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맛이 너무 심심했다. 입에 맞지 않았지만 억지로라도 먹어 두었다. 먹는 즐거움을 느껴본 지가 오래되었다. 광주에 계신 선생님이 인도에서 네팔 트레킹의 필수품이라고 라면수프를 주셨는데 포카라 숙소에 놓고 왔다. 왜 필요하다 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해발 2,120M의 산장의 밤은 8시가 되니 적막 그 자체였다. 어둠이 특히나 두터운 이곳은 이른 잠을 재촉했다. 시간을 조금이라도 메우려고 같이 온 트레커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9시가 조금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여기저기 들쑤시고 한기가 있어 일어나 보니 새벽 두시쯤이었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누군가 짙은 어둠 속에 별을 한 소쿠리 부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