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차가운 공기로 진이 베인 숲의 향기가 산자락에 가라앉아있었다. 날이 밝고 기온이 오르기 전 산의 냄새는 그래서 진하고 무겁다. 멀리 아득하던 안나푸르나가 산너머에서 흰옷을 입고 향기를 품으며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아침 9시가 조금 넘어 다시 트레킹을 나섰다.
울레리에서 시작해 반탄티를 거쳐 700M를 오르면 2,850M의 고레파니가 나온다. 셀파인 사르키가 4시간 정도의 산행을 말했다. 지리산에 자주 갔었다. 지리산이 좋아서 지리산만 다녔다. 종주도 제법 했다. 지리산의 무박종주를 술자리의 허세로 제법 써먹곤 했다. 아침 9시에 출발해서 고작 4시간의 산행으로 끝이라는 말에 히말라야 트레킹이 조금 심심해졌다. 성질만 급한 등산 애호가에게 안나푸르나 곁으로 가는 길은 더디고 만만했다. 무지한 인간은 수많은 가르침을 받아도 조건화된 반응처럼 오만함에 풍덩풍덩 빠진다. 앞일도 모른 체 고레파니로 가는 길을 나섰다.
아침에 잡은 듯한 닭을 손질하고 있는 남자를 만났다. 산골에서 먹고사는 일이 산골 생활의 거의 전부나 다름없어 보였다. 끊임없이 이어진 돌계단을 디디며 머리에 무거운 짐을 나르는 사람에게서 네팔인의 힘겨움을 잠시 생각했다. 그 힘겨운 어깨로 만들어진 돌계단을 밟고 유유히 걸었다. 내 짐은 사르키가 대신 짊어졌다. 나는 그저 히말라야에게 손많이 가는 성가신 손님이었다.
처마 밑에 걸린 씨 옥수수는 지난가을을 기억하며 봄의 속살로 들어가 여름 햇살에 흔들리다 수염 달고 다시 태어날 것이다. 봄의 꽃이 길 옆에 자리 잡고 피어났다. 이런 길은 걸을수록 힘이 난다. 길이 주는 행복에 빠져 길이 줄어드는 게 아까워 더욱 더디게 걸었다. 그러다 자리 잡고 모자로 하늘을 가리고 누웠다.
오후 1시가 넘어 고레파니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오늘 밤 자고 내일 새벽 히말라야의 일출을 맞으러 푼힐 전망대로 오를 예정이다. 고레파니에 도착해 롯지에서 잠시 쉬었다. 울레리에서 안나푸르나의 머리카락을 살짝 본듯한데 고레파니의 롯지의 문발 너머에 안나푸르나가 바로 곁에 있었다. 노안 안경을 쓰고 사물의 선명함에 감탄하던 순간만큼 세상이 밝아지는 기분이었다.
롯지에는 따뜻한 물이 나왔다. 어제부터 한 낮은 조금 덥다고 느껴질 정도로 날이 좋았다. 바람막이 안에 땀이 축축했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머리까지 감으니 온 몸이 노곤했다. 알지 못했다. 고산에서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는 일은 고산병을 빈속에 마시는 것과 같았다. 게다가 샤워를 마치고 마르지 않은 머리를 하고 롯지의 루프탑에 앉았다. 슬픔도 얼게 한다는 안나푸르나의 눈물이 파란 하늘에 퍼졌다. 그리고, 고산증의 신호가 온몸에 스르르 퍼졌다.
오후가 되면서 고산증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았다. 어지럽고 머리가 계속 아파왔다. 같이 온 동행이 준 약을 먹고 난로 옆에 웅크리고 앉아 꼼짝하지 않았다. 히말라야에서 무지와 오만은 곧 아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