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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철 May 08. 2021

네팔 - 오스트레일리안 캠프 #1

칸데에서 오캠으로 (2017년 2월 28일)

오스트레일리안 캠프 1일 (2017년 2월 28일)

 지난 토요일 푼힐에서 포카라로 돌아온 이후 꼬박 이틀을 먹고 자기를 반복했다. 먹고 자는 게 지겨우면 자고 먹었다. 가끔 낮에 어슬렁 거리며 카페에 가서 커피 마시며 놀았다. 네팔 최고의 휴양도시인 포카라는 페와 호수를 주위로 호텔, 식당 등이 몰려있다. 밥 먹고 페와 호수 주위를 어슬렁 거리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와 지나는 길에 주어온 스노볼을 가지고 빈둥거렸다. 지난 이틀은 오랜만에 해야 할 무언가를 만들지 않고 애써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 사진도 찍지 않았고 일기도 쓰지 않았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었다. 

 몸이 쉬면 마음은 나도 모르게 바빠진다. 한가함이 길어지면 자극을 쫒아 슬슬 몸이 꼼지락 거린다. 손가락은 이미 핸드폰을 검색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눈이 자극을 따라 채 움직이기도 전에 손가락은 너무나 빨랐다. 그러다 손가락이 잠시 멈추었다. 노르베르트 볼츠의 ‘놀이하는 인간’이란 책의 소개였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놀이에 초점을 두고 인간을 ‘호모루덴스’라고 정의했다. 볼츠는 인간이 노는 것을 자책하도록 규범 지어진 관념에 대해 비판하고 놀이를 통해 위대한 감정을 회복하라고 권하고 있었다. 그의 말이 이리 놀아도 되는지 먼 산 보고 있던 차에 환한 불이 켜지듯 마음이 밝아졌다. ‘논다’라는 말에 대한 여러 사람의 해석과 정의는 다르겠지만 오늘 나는 그냥 잘 놀았다고 말하기로 했다. 무엇이 더 가치 있는 놀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규범이고 강박임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사춘기인 아들에게 보인 나의 행실이 살짝 걱정이기도 했다.    

  


  잘 놀다 가자는 마음으로 고산증 때문에 중도에 가지 못했던 오스트레일리안 캠프(오캠)로 가기 위해 가방을 다시 꾸렸다. 오캠으로 가기 위해서 칸데 까지 택시를 타야 했다. 택시기사와 가격을 흥정하고 꽤 나이가 있고 착해 보이는 아저씨의 택시를 골랐다. 택시기사는 비교적 정확한 영어로 오캠에 가면 물값이 비싸니 물 2 통과 간식거리를 사가라고 말했다. 택시를 잠시 세워 물품을 사는 시간을 주었다. 맥주도 사가면 유용할 거라며 웃었다. 그의 소탈한 웃음이 좋았다. 다시 택시가 출발했다. 좀 전과 달리 택시 안은 유창한 잉글리시와 엉터리 콩글리쉬에 웃음소리가 섞여 분위기가 수다스러웠다. 누군가가 보았다면 외계인들의 대화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 택시기사는 아이가 셋이고 아들 하나에 딸이 둘인데 큰 애가 18살이란다. 내게 나이를 물어 대답하니 덥석 형님이라고 했다. 당황스러웠다. 나보다 열 살은 더 먹어 보였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그 택시기사에게서 친절하고 책임감 있고 성실함이 느껴져 칸데까지 가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칸데에 도착해 포카라에서 흥정하며 깎았던 돈을 다시 주었다.     

 

 배낭을 메고 오캠으로 오르는 길 입구에 섰다. 1770M의 칸데에서 150M의 등산이면  1920M의 오캠에 다다른다. 겨우 1시간의 등산이면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런데 짐을 짊어지고 오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천지 차이였다. 계속된 오르막이 가다 쉬다를 반복하게 했다. 푼힐을 오를 때 사르키는 무표정했다. 타고난 산사람이었다. 

  오르면서 만나는 마을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나마스테”하고 인사하면 그들도 “나마스테”하고 인사를 받아 주었다. 순박한 마을 청년이 있어서 인사를 건넸다. 웃으면서 자기 집에 염소가 오늘 새끼를 낳았다고 와서 보고 가라고 했다. 새끼 염소가 어미 염소의 젖을 찾고 있었다. 이 새끼 염소가 너무너무 예쁘다고 좋아하는 이 청년이 순박한 웃음을 지었다. 

  어찌 된 일인지 몸이 느끼기에 엄청난 산행을 하는 듯했다. 숨이 차서 오르막 계단에서 허리를 폈다. 오캠으로 가는 평지가 눈에 보였다. 네팔은 산에 다랭이 밭과 논을 만들어 농사를 짓고 있었다. 봄에 밭일을 하는 엄마 옆에 아이가 봄을 옮겨 심고 있었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 끝에 봄이 매달려 오고 있었다. 하지만, 오후가 되니 바람 끝에 매달려 오던 봄이 산 아래로 떨어졌다.

 오캠의 엔젤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게스트하우스의 방에 들어가 담요까지 뒤집어써야 할 정도로 오캠은 갑자기 추워졌다. 저녁으로 라면을 주문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에게 라면을 직접 끓여 먹을 수 있냐고 물으니 선뜻 부엌을 쓰라고 내주었다. 얼떨결에 앤젤스 게스트하우스 주인에게 라면 끓이는 법을 전수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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