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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철 May 11. 2021

네팔 - 오스트레일리안 캠프 #2

오스트레일리안 캠프의 하루 (2017년 3월 1일)

오스트레일리안 캠프의 하루 (2017년 3월 1일)


 오캠의 앤젤스 게스트하우스는 천사와 거리가 멀었다. 허름한 방안은 찌든 땀과 발 냄새로 고약했다. 방안에 머물러 있기 힘들 정도였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운영하는 식당에는 난로가 있었다. 난로의 온기가 다 사라질 때까지 식당에 있는 편이 나았다. 저녁 9시 난로도 식고 식당도 문을 닫을 모양이었다. 방 안으로 들어와 침낭을 폈다. 밤이 되면 혼자 누운 방안에 가족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럴 때마다 눈을 감고 침낭 속으로 얼굴을 파묻으면 어두운 눈앞에 가족들이 하나씩 왔다가 사라졌다. 잠이 들었다. 한기가 올라와 눈을 떴다. 시계가 자정을 가리켰다. 아까 모여들던 가족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잡념들이 몰려와 다시 잠들기를 방해했다. 이 어둠의 시간이 지나고 날이 밝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언제인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밖에 사람들 기척이 들렸다. 마당에 나온 사람 몇몇이 웅성거렸다. 일출을 보러 나온 것이다. 해에 비추인 마차푸레의 설산을 기대하며 마당으로 나왔다. 하지만, 일출이 지났는데도 안나푸르나와 마차푸레는 안개에 갇혀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 이 아침 일출에 비추인 히말라야를 기대하고 달려온 이들에게 안긴 것은 실망이었다. 하지만, 신은 언제나 문을 닫으면 한쪽 문을 열어 주신다. 히말라야가 안갯속에 있으니 고요함 속에 일기를 정리했다. 실루엣에 가려진 설산의 윤곽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따뜻한 차와 내 발아래 이슬 먹은 잔디와 부지런을 떠는 새소리였다. 설산에 도취했더라면 몰랐을 것들이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안개에 가려진 히말라야도 다시 보니 선명하게 보일 때 보다 더욱 운치 있어 보였다. 고역스러웠던 지난밤을 잊기 위해서는 이렇게 억지 감흥이라도 만들어야 했다.   

  아침 10시 앤젤스 게스트하우스를 체크아웃했다. 이제 포타나를 거쳐 담푸스를 지나고 페디에서 버스를 타고 포카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무언가 잘 알고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냥 산길에 나있는 표지판만 보고 혼자 산행을 시작했다. 산 길을 혼자서 걸으니 조금 불안한 마음에 긴장했지만 조용한 아침 산책을 망치고 싶지 않아 여유를 찾으려 애썼다. 인적이 없는 산 길에 새소리가 귀에 가득 울렸다. 갈림길에 이정표가 보였다. 포타나를 지나고 담푸스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반가웠다.      

  담푸스에 도착했다. 아주 조용하고 조그만 산골 마을이었다. 마을로 접어드니 어느 집인가에 잔치가 있는 듯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결혼식이었다. 앳된 신랑 신부가 부끄러운 듯 표정이 없다. 아마도 이 산골 마을에서 부모가 그랬듯이 산을 신으로 모시고 땅을 어머니로 의지하며 살아갈 것이다. 여행하다 보면 인간의 운명이 선명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지금이 그 순간이었다.     

  결혼식장을 관심 있게 보던 네덜란드 할머니와 페디까지 같이 내려오게 되었다. 71세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정정해 보였다. 나의 짧은 영어에 놀라운 표정으로 그 할머니 아니 그녀의 자신감을 부추겼다. 동양 서양 노소를 불문하고 칭찬과 관심은 여자를 수다스럽게 하는가 보다. 그녀의 계속된 질문에 짧은 영어로 답하기 바빴다. 그녀 또한 70이라는 세월을 어디선가 건너왔을 것이다. 나이는 관계없이 그녀의 가슴엔 팅커벨이 뛰놀고 있었다.  

 페디로 가는 길은 조용한 산골 마을을 가로질렀다. 다랭이 논에 청보리가 바람에 흔들거리고 할아버지가 망태기 비슷한 것을 대나무로 엮고 있었다. 한국의 봄 들녘과 산골마을을 지나는 착각에 빠졌다. 그렇게 바지에 쓸리는 청보리 소리를 듣다 보니 어느새인가 페디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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