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카라 공항에서 카트만두로 가는 첫 비행기가 8시 45분에 있었다. 포카라에서 이륙하면 히말라야 설산의 전경을 하늘에서 볼 수 있는데 비행기의 왼쪽 창가에 앉아야 했다. 비행기에서 히말라야의 전경을 보려는 욕심에 아침 일찍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해 티켓팅을 하면서 왼쪽 창가 좌석을 부탁하니 승무원이 웃으면서 “마운트 시트?”하고 되물었다. 비행기의 좌석 이름에 마운트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였다. 무엇인가를 설명하는데 간결한 말 한마디가 더욱 잘 이해되는 상황이 있다. 지금이 그러했다. 아무튼 내 예상대로 조금만 늦었어도 마운트 시트를 얻지 못했다.
포카라 공항에는 나 외에 한국인이 두 명 더 있었다. 60대 아버지와 30대 딸이 같이 네팔을 여행 중이었다. 은평에서 오셨다는 그분은 얼마 전 암 수술을 받았는데 푼힐 전망대까지 다녀 올 정도로 지금은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가족들만 생각하고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암에 걸리고 나니 삶이 허무하고 인생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며 내가 혼자 여행하고 있는 것을 부러워했다. 모녀가 같이 여행하는 모습은 여행하는 중에 간간히 보았으나 딸이 아버지를 모시고 여행 다니는 광경을 본 적이 있는지 떠올려 보았다.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얼굴이 무척 행복해 보이고 딸이 기특하다는 말을 거듭했다. 딸과 같이 네팔에 와 있는 자체로 기쁨이 가득해 보였다.
비행기가 이륙을 했다. 실랑이 끝에 아버지는 딸에게 마운트 시트를 기어이 양보했다. 아버지는 히말라야 설산보다 경이로운 경험에 기뻐하는 딸의 얼굴을 더 보고 싶어 하는 듯했다. 히말라야가 구름과 연무로 그리 선명하지 않았으나 하늘에서 바라보는 히말라야와의 헤어짐은 마음 한구석에 다시 그리워질 사람과의 작별이었다. 언젠가는 다시 만날 인연과의 손 놓음이었다.
먼지 가득한 카트만두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Thamel(타멜)’이라는 여행자 거리로 갔다. 거리와 건물에 흙먼지가 내려앉았다가 다시 공중을 휩쓸고 다녔다. 오래된 목조건물에 먼지가 내려앉아 세상 어디에도 볼 수 없는 도시가 펼쳐졌다. 타멜에서 더르바르 광장까지는 사이클 릭샤를 이용했다. 그러고 보니 사이클 릭샤를 처음 타 보는 것이었다. 인도에서 타 볼 기회가 있었지만 너무 혼잡해 차라리 걸어가는 편이 나았다. 사이클 릭샤를 타고 수 천년의 흔적이 있는 더르바르 광장으로 자전거가 힘겹게 움직였다.
‘더르바르’는 왕궁이라는 뜻이다. 카트만두의 더르바르 광장은 2015년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더르바르 광장에 도착해보니 지진의 후유증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수 천년의 유적이 지진으로 허리춤에 버팀목을 대고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금세라도 무너질 듯 위태해 보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먼지가 날렸다. 마치 수천 년의 흔적이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듯했다. 네팔 고원에서 살아온 정 많은 사람들과 연결이 끊어지는 아쉬움에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사원인 스와얌부나트 사원을 찾아갔다. 사원 일대는 야생 원숭이의 집단 서식지이다. 그래서 일명 ‘몽키 템플’이라고 불렸다. 생각보다 계단이 가팔랐다. 계단을 오르는 중에는 머리를 들어 하늘 보기가 어려웠다. 마지막 계단을 딛고 올라서니 거대한 스투파와 맞닥뜨렸다. 마치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과 사크레쾨르 성당과 비슷했다. 카트만두의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사원이 있었고 카트만두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었다. 다른 것은 성당 대신 불교사원이었다. 스투파는 불교에서 불타의 사리를 봉안한 반구형 돔 형태의 탑을 지칭한다. 수투파에는 눈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는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부처님의 눈이었다.
더르바르 광장이 파탄에도 있었다. 카트만두, 박타푸르와 함께 카트만두 계곡에서 번성한 3대 왕국 중 하나였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 나온 곳이기도 했다. 그래도 보존 상태가 좀 더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파탄으로 갔다. 택시를 타고 40분 정도 거리였다. 더르바르 광장의 건축물의 대부분은 이곳 파탄의 장인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건물들이 기품이 있고 아름다웠다.
카트만두의 여행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채비가 남았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배낭을 챙기면서 떠나올 때의 그날이 떠올랐다. 그 날의 두려움과 걱정이 짐을 하나씩 가방에 넣을 때마다 다시 따라 들어가려 했다. 여행을 마치면 무언가 뿌듯함에 돌아갈 짐이 가벼우리라 기대했다. 내가 지나온 길에 다 버렸다고 생각했던 무거운 짐들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씨앗으로 남아 싹으로 올라왔다. 싸던 짐을 내려놓고 창문 곁으로 갔다. 인도에서 네팔까지 지나온 여정이 필름처럼 되감겼다. 여행의 끝이 오고 있었다.
여행의 일기장에 몇 글자 적어넣었다.
‘나는 여전히 세상 속에 살고 있고 또다시 또 하나의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한국은 이제 겨울이 다 지났을 것이다. 3월이 되었으니 봄을 기대해 볼 만하다. 봄날에 심을 마음의 좋은 씨앗 몇 개 얻어간다. 서울로 돌아가면 잘 심어서 키우고 바람 좋은 날에 내어놓고 즐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