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그러니까 2017년 여름 어느 날 고창에 있는 구시포 해변에서 멋진 일몰을 보았다. 보는 순간 너무 감탄스러워 사진에 담았다. 이 사진을 보고 있자면 그때의 바닷바람까지도 생생하게 다시 불어온다. 그날 지는 해를 등에 지고 날아가는 갈매기의 날갯짓은 유난히 외롭게 보였다. 갈매기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그러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을 보고 이렇게 적고 나면 이 사진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사진을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잘 찍어보겠다고 열정을 불태운 일은 더욱 없었다. 어쩌다 내 손에 들어온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면서 내 삶의 일상을 기록하는 버튼이 되었다. 무언가를 남긴다는 일이 때로는 쓸데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마당의 나뭇가지 사이로 빠져나간 바람처럼 살다 가면 좋겠다 싶었다. ‘나만 그런가?’ 마음이 바람 따라가다가도 다시 내가 흔들어 놓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었다. 무언가 열심히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고 싶은 마음이 어느 순간에는 온 산을 덮었다. 카메라의 액정화면을 집중하며 피사체에 몰입하는 그 순간 깨달았다. 라스코 동굴벽화를 그린 이들의 열망이 무엇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인도를 거쳐 네팔을 다녀온 이후 삶의 자그마한 의미라도 남아 있지 않을까 돌아오는 길에 내심 기대에 찼다. 강남에 빌딩을 세우지도 못했고 비서가 타주는 모닝커피도 마시지 못할 바에야 전혀 다른 삶이라도 살아야 성이 풀릴 것 같았다. 포장해서 말하면 자기실현이고 솔직하게 까발리면 자아도취에 빠진 것이다. 속을 열어놓으니 이제야 좀 후련하다. 사진을 찍고 기록하는 일의 시작을 아들에게 돌렸었다. 아들이 먼 훗날 삶의 의미를 찾아보는 여행을 떠나보길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가족 두고 혼자 떠난 가장의 그럴싸한 이유였다.
실은 온 세상이 매미 소리로 하늘을 찌르는데 어느 한구석 귀뚜라미처럼 나도 여기 살아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안치환의 ‘귀뚜라미’라는 노래를 들으면 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도와 네팔의 여행은 애당초 귀뚜라미 소리처럼 허무하게 지나온 듯한 삶에 무늬 한 조각 새겨 넣고 싶은 기대로 시작한 일이었다. 어쩌다 보니 이 여행은 내 생각과 삶을 움직였다.
여행이 가져다준 씨앗을 마당에 심었다. 잘 키워서 정원에서 두 발 벗고 놀고 싶었다. 소박하다고 여겼으나 실은 평생을 일궈도 이루기 어려운 일이었다. 고독한 마당에 억센 풀이 올라오듯 삶은 온갖 잡념과 번뇌가 하루를 뒤덮기 십상이었다. 평정심을 유지하고 하루하루 살아내기가 고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세상에 휘둘리며 사는 편이 더 수월했다. 내 정원의 잡초는 늘 화초보다 빨리 자라났다. 조금만 방치해도 남아날 화초가 없었다. 삶의 자유라는 정원은 말로만 떠들어 댄다고 그냥 주어지지 않았다.
두 팔을 걷어 부치고 잡초를 걷어낼 힘은 여행에서 생겨났다. 여행을 다녀온 이후 내 마당에 잡초가 눈에 더 잘 들어왔다. 이번 여행은 김매기 여행이었나 보다. 다음 여행은 거름주기 여행을 계획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