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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철 May 03. 2021

네팔 - 푼힐 전망대 #3

  푼힐 (2017년 2월 25일)

  푼힐에서의 일출 (2017년 2월 25일)  

  고산증은 시간이 지날수록 내 몸을 더욱 괴롭혔다. 밤새 한 시간 간격으로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이 몸으로 푼힐을 오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적어도 5시 30분에는 롯지를 출발해야 했다. 거의 뜬 눈으로 지새운 몸을 침상에 걸터앉히고 옷을 입었다. 옷을 입고 올라야 할지 말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 장터목에서 새벽 산을 오르던 때가 생각났다. 한 시간 정도만 오르면 되니 힘을 내어 보자 하고 등산화의 끈을 묶었다. 아직 어둠이 짙은 길을 스틱으로 짚고 나갔다. 랜턴을 켜고 길을 찾다 보니 지난밤 어디에서 머물렀는지 많은 사람들이 새벽 등산길에 모여들었다. 어두운 밤길에 랜턴의 불들이 움직였다. 산으로 오르는 긴 행렬이 시작되었다. 1시간 정도 오르면 되는 길이지만 고도 3,000미터를 넘는 경사 가파른 길 위에 발걸음이 모두 힘겨워 보였다. 몇 번을 쉬다 가기를 반복했다. 뒤에서 올라오는 트레커들에게 먼저 올라가라고 양보하기를 거듭했다. 이러다 일출시간에 맞추지 못할 수도 있을 불안이 점점 오그라드는 몸을 더욱 무겁게 했다.    

  푼힐이라고 쓰인 푯말이 보이고 고개를 들어보니 망루가 서있었다. 망루를 주위로 푼힐에 이미 도착한 많은 사람들이 모두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히말라야의 준봉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해뜨기 전의 여명이 히말라야를 짙은 흑색에서 옅은 회색빛으로 묽게 만들었다. 다울라기리, 안나푸르나 남봉, 힘 출리, 마차푸차레가 막힘없이 나란히 서있었다.

  말로 표현이 어리석다고 느껴졌다. 히말라야를 보았다고 입 밖에 내놓을 만큼 담아갈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저 허락된 시간만큼 보여주는 만큼 떠오르는 햇볕에 노랗게 물들어가는 설산의 빛을 보았다. 히말라야는 멀리서 인간의 나약함을 일깨우고 발길을 되돌려 놓았다. 롯지로 다시 내려오는 길에 푼힐에서의 잠깐의 시간이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을 예감했다.     

  롯지로 내려와 셀파인 사르키가 내 몸 상태를 보고 더 이상의 산행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사르키의 말대로 그만 산에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인도 여행으로 약해진 몸에 충분한 준비 없이 트레킹을 강행한 것도 한 가지 이유였다. 내 짐을 들어준 사르키는 내가 내려가는 속도에 맞추어 뒤따라 내려왔다. 내 몸 상태를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나를 호위하는 듯한 그의 말 없는 듬직함에 마음이 놓였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인 적이 있었을까? 말없이 누군가를 지키는 사람 말이다. 타고난 그릇은 노력하는 사람이 도저히 넘을 수 없는 크기가 있다. 사르키는 타고난 듯 보였다. 고통스럽게 갈고닦아도 타고난 그릇을 넘볼 수가 없을 것 같은 좌절감이 있었다. 말없이 서서 내가 내려가기를 기다려 주는 사르키에게서 산의 냄새가 풍겼다.     

  오후가 되어서 처음 트레킹을 시작한 힐레로 내려왔다. 네팔에 다시 오게 된다면 만반의 준비를 해서 ABC(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까지 갔다 오겠다 다짐했다. 그리고,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말을 번복했다. 짚차를 타고 산길을 내려왔다. 이 산길은 정말이지 말도 못 하게 힘들었다. 출렁거리는 짚차에 질려서 산촌 다람쥐에 도착했을 때쯤 두 번 다시 짚차는 타고 싶지 않았다. 출산의 고통은 아이를 보자마자 순간 다 잊어버린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니 짚차의 고통은 다 잊고 히말라야의 기운만 생생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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