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인도 - 바라나시 #3

바라나시의 일상

by 정원철

#5 소가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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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 동굴의 암각화에서 방금 튀어나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인도에 와서 본 수많은 소 중에 가장 눈길을 끌었다. 가트로 가는 좁은 골목길 구석에는 그냥 검다가 아니고 아주 시커먼 소가 있었다. 깜깜한 저녁에 옆을 지나면 소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인도의 곳곳에는 소들이 많았다. 어제의 참극이 있기 전까지 소들은 그냥 길가를 배회하는 몸집이 큰 동물이었다. 골목길 구석에 배 깔고 눈만 껌벅거릴 때는 그러했다. 골목길을 지나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과 몇 미터 앞에서 소가 좁은 골목길을 거침없이 달려오고 있었다. 인도 사람들은 너나없이 가게 안으로 황급하게 몸을 숨겼다. 뛰어오는 소가 내 눈에는 슬로비디오가 돌아가듯이 느껴졌다. 나는 같이 동행한 친구들을 돌아볼 생각도 잊고 뛰는 소를 보자마자 그곳에 없었다. 친구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만 멀쩡한 두 다리로 줄행랑을 쳤다. 소가 지나가고 상황이 수습되어 돌아왔을 때 비난이 쏟아졌다. 혼자서 도망친 나를 두고 위급한 순간에 인간성이 드러난다고 몰아세웠다. 너희들이 안전한 것을 확인하고 뛰었다고 변명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골목길을 지나며 소를 볼 때마다 도망자 이야기로 나의 체면은 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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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철수네 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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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의 제일 유명인은 철수였다. 철수는 갠지스강의 보트대회에서 우승한 배꾼이었다. 관광객에게서 배운 그의 한국어 실력은 관광가이드를 할 정도로 유창했다. 자신이 한국어를 할 줄 아는 배꾼이기에 경쟁력이 있지 대학 나와서 엘리트 직종에 있었으면 지금 만큼의 경쟁력이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철수의 보트를 타고 해지는 갠지스강의 건너편으로 갔다. 철수는 장사 수완이 있었다. 보트 외에도 한식 장사를 했다. 철수의 가족들 대부분이 철수의 일을 도와 돈을 벌었다. 듬직한 철수가 마음에 끌렸다. 철수는 가트를 따라 갠지스강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갠지스강의 신비함 보다 철수의 인생 이야기가 더욱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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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영훈아 마약은 안돼

서울대 간호학과에 다니는 경석이, 이번에 해양대학교에 입학해서 혼자 여행 왔다는 영훈이와 보트여행을 마치고 같이 저녁을 먹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인 레바 게스트하우스에서 한국음식을 시켜먹었다. 영훈이는 밥을 채 다 먹지 않은 내 앞에서 둘둘 말린 이상하게 의심스러운 담배를 피워댔다. 우리가 서로 프렌드라고 하지만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영훈이가 하필 내가 밥 먹는데 밥상머리 앞에서 담배연기를 내뿜는 탓에 싫었다. 아마 인도에 오지 않았다면 내 에고는 이 상황을 두 눈 뜨고 넘어가지 않았을게 분명했다. 영훈이는 보통 골초가 아니었다. ‘그래 많이 피워라 나는 밥을 먹으련다. 인간이 다 제 할 일에만 몰두하고 살면 그만이지’하며 숟가락은 밥그릇을 들락거렸다.

가트를 다니다 보면 어디선가 낮고 길게 끄는 목소리가 들린다. “마~약 마약” 아마 대마를 파는 것으로 생각했다. 밥을 먹다가 영훈이에게 심각하게 물었다. “영훈아. 그래도 마약은 안돼~” 영훈이는 담배 연기가 목에 걸려 캑캑댔다. 영훈이는 어렸을 때부터 바둑영재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아버지 뻘하고 맞담배 하면서 바둑을 두었다. 한국에 먼저 돌아간 영훈이가 사진을 보내왔다. 해양대 학생의 제복을 입고 담배를 꼬나물었다. 오늘 갑자기 영훈이의 황당한 담배연기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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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늦은 밤의 바라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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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 게스트하우스에서 저녁을 먹고 서울대 간호학과에 다니는 경석이가 내가 머물고 있는 숙소에 놀러 왔다. 기타페잉 게스트하우스의 옥상에 자리를 펴고 술자리가 만들어졌다. 혼자 옥상에 올라오면 해코지하는 원숭이 녀석도 여럿이 같이 있으니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만 했다. 여행 이야기로 시간이 어느새 밤 11시가 되어 버렸다. 너무 늦은 탓에 내 방에서 재우려 했는데 기타페잉의 주인장인 띵구가 허락하지 않았다. 사연을 듣고 보니 이해가 갔다. 밤이 너무 깊어 밤길이 위험할 것 같아 같이 묶고 있는 친구들과 경석이가 묶고 있는 게하까지 마중을 가기로 했다. 밤 깊은 갠지스강의 강변을 걸었다. 어둠이 바지 아래를 스치고 무릎 사이로 빠져나갔다. 갠지스강의 어둠에서 고요함과 신비로움이 느껴졌다. 오늘 갠지스강을 따라 떠내려간 영혼이 잠시 보고 가는 이승의 뒷모습처럼 보였다. 경석이가 묶고 있는 숙소는 화장터를 지나 골목길 안에 있었다. 늦은 밤인데도 화장터의 불길은 계속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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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시원라씨의 그릇은 가져가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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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에는 라씨 맛집이 많다. 그중 블루라씨와 시원라씨의 유명세가 한국에까지 알려져 있었다. 시원라씨에 가서 바나나 라씨를 주문했다. 라씨 가게 안에는 작은 황토 라씨 그릇이 높게 쌓여 있었다. 바나나 라씨를 주문해 가게 안에서 얌전히 그 깊은 맛의 세계에 빠졌다. 마지막 한 숟가락이 사라졌다. 시원라씨 주인에게 황토 그릇을 건넸다. 주인은 시큰둥하게 손을 저으면서 어서 가라고 했다. 그 황토 라씨 그릇은 일회용이었다. 인도는 흙으로 빚은 황토 그릇이 플라스틱 일회용 컵 보다 쌌다. 인도는 사소한 것 마저도 사람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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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바라나시와의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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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강은 인연의 강이다. 강물이 흐르듯 인연이 오고 또 지나간다. 머무는 것은 추억으로 변질될 조각난 기억뿐이다. 오늘 바라나시를 떠난다. 화장터의 불은 꺼지지 않고 인연을 떠나보내는 사람들 속에서 바라나시의 아침을 맞이했다. 갠지스강을 따라 노를 젓는 배꾼의 노 젓는 소리가 붙잡는 인연을 뿌리치는 듯했다. 배꾼에게 배를 케다르가트쪽에 세워 달라고 부탁했다. 케다르가트에서 매일 아침 짜이를 만들어 팔던 할아버지에게 가서 바라나시에서의 마지막 아침 짜이를 마셨다. 이 할아버지와의 인연도 늘 그렇듯 떠나간다. 인연은 서로 맞닿아 있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바라나시와 맞닿아 있는 지금 이 시간이 참 좋은 시절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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