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버스는 12시간을 달렸다. 버스가 우다이푸르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5시 30분이었다. 같이 동행한 선생님 부부는 힘든 여정이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다이푸르는 새벽안개에 찬 공기가 더해져 새벽 도시가 그렇듯 거리는 을씨년스러웠다. 가장 급한 일은 앞으로 묵을 숙소를 정하는 일이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숙소는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었다. 인적도 없는 새벽길을 숙소를 찾아 배낭을 메고 무작정 걸었다. 우여곡절 끝에 피촐라 호수 근처에 위치한 강가 우르 팰리스 호텔에 겨우 짐을 풀 수 있었다. 대강 짐을 정리하고 숙소 옆에 있는 에델바이스 카페로 갔다. 이 카페에서 인도에 온 이후로 커피다운 커피를 처음 마셨다. 우다이푸르에서는 모닝커피에 빵으로 아침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른 아침인데 커피 마시러 온 유럽 여행자들이 제법 많았다.
커피를 마시고 강가우르 가트에 가보았다. ’가트(Ghat)‘는 우리말로 ’터‘라고 부르면 대충 뜻이 통할 듯하다. 하지만, 갠지스강을 따라 만들어진 가트는 단순한 터 이상의 의미를 지닌 종교의 공간이었다. 이들에게 가트는 교회이고 성당이었다. 가트에서 아침에 목욕하며 마음의 때를 씻고 하루를 시작하는 힌두인을 만났다.
#2 시티 팰리스
우다이푸르는 조드푸르나 자이살메르와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이곳은 인도인들의 신혼여행지와 휴양지로 유명할 정도로 인도인에게도 관광도시였다. 피촐라 호수를 끼고 있는 우다이푸르의 백미인 ’ 시티 팰리스‘에 갔다. 입구에서부터 이곳이 왜 세밀화로 유명한 곳인지 알 수 있었다. 벽에 빈 곳이 없이 가는 붓으로 그려진 세밀화가 입구에서부터 감탄을 자아냈다. 인공호수인 피촐라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산등성이에 웅장하게 서 있는 이 아름답고 새하얀 우다이푸르의 도시 궁전인 ’ 시티 팰리스‘는 16세기 중엽 ’마하라자 우다이 싱‘에 의해 지어졌다.
피촐라 호수 한가운데 고요히 떠 있는 타지 호수 궁전이 발코니를 통해 바라다 보였다. 이 궁전은 수백 년 동안 왕족들의 여름 별장이었다. 이 곳에서 007 영화 시리즈 ’옥토퍼스‘가 촬영되어 유명해졌다. 지금은 호텔로 쓰이는데 하룻밤의 방값이 수천만 원 하는 방도 있다.
#3 바고르 키 하벨리의 민속공연
’바고르 키 하벨리‘는 18세기 말 당대의 세도가이자, 메와르 왕조에서 수상을 역임했던 ’아미르 찬드 바드와‘가 지은 대저택이다. 저택 이라기보다 궁전에 가까운 규모로 무려 138개의 방과 부속 정원이 딸려있었다. 지금은 주간에는 박물관, 야간에는 민속공연장으로 쓰이고 있었다. 저녁 7시에 시작하는 민속공연을 보기 위해 저녁밥도 반납하고 입장해 부속정원의 좋은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2017년 2월 12일
#1 강가우르팰리스 호텔을 체크아웃했다. 어제는 이른 아침인 탓에 문이 열린 곳을 무작정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우다이푸르에 온 대학생 친구들의 여행경비가 빠듯했기에 숙소를 옮기기로 했다. 어제 사전답사를 해 본 결과 루프탑의 전망이 좋았던 반자라호스텔의 도미토리로 방을 옮겼다. 4인이 이층 침대 두 개로 같이 쓰는 기숙사 같은 방이었다. 우리 일행 3명에 중국인 학생이 한 방을 쓰게 되었다.
#2 도미토리로 짐을 옮겨놓고 ’리틀 프린스‘라는 식당으로 아점을 하러 길을 나섰다. 피촐라호수 옆에 한국 음식을 흉내 내는 조그만 식당이었다. 식당 이름은 우리말로 어린 왕자 식당인데 나이가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은데 폭삭 삭은 점원이 느그적 거렸다. 주는 대로 먹으라는 식이었다. 장난을 좀 치니 의외로 순진하게 웃는 모습이 좀 귀엽기도 했다. 닭 수제비를 주문했다. 인도는 닭 요리는 제법 하는 것 같았다. 청양고추를 넣었는지 얼큰한 맛이 났다.
#3 ’ 나라얀 샵‘이라는 여행사에 들렸다. 다음 행선지인 아그라와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표를 예약하기 위해서였다. 내일 저녁 10시 20분에 우다이푸르 역에서 출발해 모레 아침 10시 55분에 아그라에 도착한다. 인도에서는 이런 기차 시간이 별 의미가 없었다. 여행사 직원은 기차가 언제 올진 오직 신만이 안다고 농담을 했다. 많게는 20시간도 연착하는 일이 허다하다고 했다. 아무튼 여행사에게 웃돈을 주고 ’따깔‘이라는 취소된 표를 구해 아그라로 가는 기차표를 구했다.
#4 조드푸르에서부터 우다이푸르까지 같이 온 친군이와 하연이는 남인도 디우로 가는 교통편을 알아보고 있었다. 디우로 가는 길은 기차 편이 없었다. 디우로 가기 위해서는 슬리핑 버스로 무려 30시간을 가야 한다는 말에 나의 인도 여행 선배님들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우다이푸르로 오는 12시간의 슬리핑 버스가 너무 힘들었던 탓이다. 결국 아그라와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표를 예약했고 나와 일정을 계속 같이 하게 되었다. 내심 나의 선배님들이 디우로 가지 못하게 된 일이 반가웠다. 루프탑에서 보는 우다이푸르의 밤은 아름다웠다.
2017년 2월 13일
우다이푸르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어젯밤 늦게까지 루프탑에서 야경 속에 빠져 있었던 탓인지 감기 기운에 몸이 묵적 지근 했다. 감기약을 먹고 도미토리의 낮은 침대의 침낭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둥지에 깃든 것처럼 침낭 안이 포근하고 좋았다. 점심때가 되어서야 몸에 생기가 돌았다. 오후에 루프탑에 올라갔다. 밀린 빨래를 루프탑에 널고 망고 라씨를 마시며 피촐라 호수를 보며 내 생의 어느 오후가 지나고 있었다. 따스한 햇살에 데워질 틈도 없이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기분 좋은 나른함에 난간에 다리를 뻗어 올렸다. 눈을 감고 지난 며칠간의 일들을 다시 떠올렸다. 내 인생에 이처럼 극적인 경험이 또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50이 목전인데 대학생 친구들과 만나면 서스름 없이 ’ 프렌즈‘라고 인사했다. 평생 메마른 가지로 푸른 나뭇잎 하나 곁에 없는 인생이 너무나 많다. 그들이 나를 친구로 받아 준 마음 넓음에 감동했다. 언젠가 보았던 정호승 시인의 ’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라는 시를 뒤적였다.
“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
너와 함께 걸었던 들길을 걸으면
들길에 앉아 저녁놀을 바라보면
상처 많은 풀잎들이 손을 흔든다.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
저녁 10시 50분에 우다이푸르시티 역에서 아그라로 가는 기차를 탔다. 이곳이 최초 출발역인 탓에 기대했던 연착은 없었다. 기차의 연착도 여행의 스탬프처럼 기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