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인도 - 우다이푸르 #1

자이살메르에서 우다이푸르로 가는 길 (2017년 2월 10일)

by 정원철

자이살메르에서 우다이푸르로 가는 길 (2017년 2월 10일)


날이 참 좋았다. 마치 한국의 가을날 같았다. 오후 5시 30분 버스를 타고 자이살메르를 떠나 우다이푸르로 간다. 우다이푸르까지는 버스로 12시간 거리였다. 가지네 호텔에서 슬리핑 버스를 예약했다. 버스를 타기 전까지 루프탑에서 바람을 즐기고 책을 읽으며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거렸다. 몸이 불편해지면 자세를 조금씩 바꿔가며 어디서 인가 배운 힌디어를 중얼거렸다.

“디레 디레 잘 레 만느” 우리말로 바꾸면 “천천히 천천히 부디 서두르지 말고”라는 뜻이다.


오후 5시 가지네 호텔을 출발해 우다이푸르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우다이푸르로 가는 길에 동행은 내년에 정년퇴임을 앞둔 선생님 부부와 자이살메르까지 같이 온 친군이와 하연이었다. 광주 동신고 선생님은 조드푸르에서도 뵈었는데 골목길에서 선생님이 지나갈 때는 개들도 눈을 피했다. 개들도 사람에게서 뿜어 나오는 기운을 느끼는 게 분명했다. 그토록 나를 얕잡아 보고 겁주는데 재미를 붙인 녀석들이 선생님 앞에서는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은근 부아가 났다.

우다이푸르로 가는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했다. 우리 일행은 슬리핑 버스를 예약했기에 먼저 버스에 올라 좌석 머리 위에 만들어 놓은 슬리핑 부스로 들어갔다. 막상 슬리핑 부스로 들어오니 이러고 12시간을 갈 일이 막막했다. 신발은 선반에 올려놓고 사방이 빨간 커튼으로 되어있어 홍등가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바닥에 침낭을 깔고 누우니 그럭저럭 아늑했다. 버스가 출발하자 길이 그닥 좋지 않아서 인지 몸이 울렁거렸지만 아주 최악은 아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 년이 넘게 단칸 고시원에서 지내던 시절이 생각났다. 누워서 팔을 벌리는 것도 어려웠다. 방에 누우면 마치 관속에 드러누운 것 같았다. 달리는 버스에서 눈을 감으니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던 그 고시원 방의 희미한 불빛 아래로 순간 이동했다. 슬리핑 부스 밖에서 들리는 인도 사람들의 소리가 고시원 방 안으로 새어 들어온 반가운 인기척처럼 들렸다. 슬리핑 부스 아래로는 인도 사람들이 통로를 가득 메웠다. 밤새 쪼그리고 가는 사람들 위로 독립공간을 가지고 누워서 가는 나는 무언가 기분이 묘해졌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데 그냥 가슴이 착잡했다. 그 옛날 고시원 지하방에서는 좌절감이 들더니 이 인도의 푸줏간 같은 슬리핑 부스 안에서는 조금 미안한 마음에 착잡함마저 밀려왔다. ‘인간의 마음은 이처럼 무엇과의 비교를 통해 제멋대로 지어내는구나’ 달리는 차창 밖으로 달빛이 제법 밝았다.

인도는 익숙한 것은 거의 없고 낯설고 다른 것들 투성이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허물은 내 눈에 있다”라고 한 말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갔다. 인도를 지나 네팔까지 가는 길 위에서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버스가 몇 시간째 지평선과 나란히 달렸다. 흐린 오후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난히 달빛이 밝았다.

버스가 새벽 3시를 조금 넘겨 휴게소 같은 곳에 멈추었다. 사람들이 간식거리를 사는 동안 우리 일행들도 밖으로 나와 바짝 말라비틀어진 관절을 움직여 보았다. 말이 휴게소이지 화장실도 없었다. 인도에서는 대충 아무데서나 일을 보면 되었다. 문제는 여자 일행들이었다. 여자들은 일행이 있어 서로 의지해서 볼 일도 가능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혼자 인도 여행하는 여자는 기인이다. 다시 버스에 오르는데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아이고, 징해라 다시는 야간 버스는 안탈란다.” 선생님 뒤를 따라 버스를 오르면서 피식 웃음이 새었다.

버스에 올라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30분이었다. 버스가 다시 출발했다. 밝은 달빛과 단순하기 그지없는 평원으로 빨려 들어가듯 버스가 달렸다. ‘인도에는 왜 온 것일까?‘ 스스로에게 물었다. 큰 깨달음이라도 얻으려는 구도자의 길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작정 먹고 놀자고 떠나온 것도 아니었다. 나는 전혀 불행할 이유가 없는데 행복하지 않았다. 먹고사는 데에만 시간과 정열을 써버리고 나니 내가 나에게 조금 미안해졌다. 집 사고 차 사고 아들 학원비 잘 챙겨주고 부모님 매달 용돈 빠뜨리지 않으면 마음 편히 살 줄 알았다. 인생에 완생을 꿈꾸는 미생 가장들은 쉴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함정을 만들어 놓고 빠졌다.


그런 나에게 인도는 다른 세상을 보여주었다. 착실하게 일하고 매달 적금해서 아파트 평수를 늘릴까 고심하는 가장을 자유와 행복을 이야기하는 남자로 타락시켰다. 인도는 생을 잉태하는 자궁과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인도라는 자궁벽에 실핏줄을 잇고 인도의 양분으로 몸에 살을 붙이기 시작했다. 인도가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버스는 10시간을 넘게 달리고 있었다.

keyword
이전 09화북인도 - 자이살메르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