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인도 - 자이살메르 #3

자이살메르 요새 (2017년 2월 8일)

by 정원철

자이살메르 포트 (2017년 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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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사막에서의 비박은 상상보다 훨씬 춥고 힘들었다. 거의 밤을 지새우다시피 하고 이른 아침을 맞았다. 사파리를 끝내고 가지네 호텔로 돌아와 따뜻한 물로 온 몸에 달라붙은 고운 모래를 씻어냈다. 온 몸을 감싼 듯 달라붙은 모래가 씻겨 나가니 사막 사파리에 밤새 남겨 두었던 잠이 몰려왔다. 눈을 감자마자 죽은 듯이 깊은 잠에 빠졌다. 점심을 지나고 한참이 되어서야 정신이 들었다.

오후 늦게 자이살메르 요새를 둘러보기 위해 릭샤를 수배했다. 릭샤왈라와의 흥정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이제 제법 능수능란하게 가격을 후려치고 내가 먼저 그들의 손을 잡아 흥정을 마쳤다. 인도인과의 흥정은 마치 리듬을 타고 춤을 추듯이 서로 밀고 당기며 삶을 오르내렸다. 릭샤를 타고 자이살메르 요새 입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릭샤왈라에게 흥정한 돈에 웃돈을 얹어 주었다. 다른 뜻이 아니라 집안 식구를 책임지러 나와 일하는 이들에 대한 나의 보잘것없는 존경의 부끄러운 건넴이었다.

중세에 자이살메르는 인도에서 이집트, 아라비아, 페르시아, 아프리카, 유럽으로 이어진 무역로를 오가던 낙타 행렬의 중심지였다. 자이살메르 요새는 1156년에 자이살메르의 트리쿠타 언덕에 지어졌다. 이 요새를 지을 때 여러 개의 우물을 파서 물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었던 탓에 많은 사람들이 이 요새에 머무를 수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까지도 이 중세 시대의 요새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자이살메르 요새 입구를 지나 오르막길을 오르면 조그만 광장이 나온다. 이 광장 주변에 화려하고 정교하게 조각된 건물이 보였다.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이 살았던 ‘하벨리’라는 집이었다. 이 하벨리는 자이살메르의 3대 하벨리중의 하나인 ‘살림 싱 키 하벨리’였다. 우리말로 옮기면 '살림 싱 의 대저택'이란 뜻이었다. 사암을 조각한 솜씨에 반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주위를 한참 맴돌았다.

입구를 지나면 좁은 골목길 양 옆으로 가게들이 즐비했다. 양탄자, 가족 제품, 옷 등 갖가지 흥미로운 물건들을 구경하느라 성 안으로 들어가는 발길이 더뎠다. 가게들이 어느 정도 끝나가는 안 쪽에는 커다란 나무 밑에서 아낙네들이 둘러앉아 맷돌에 녹두를 갈고 있었다. 인도는 딱히 관광을 위해 돌아다닐 일이 없었다. 그냥 그들의 생활 속에 젖어 사는 게 여행의 일상이었다. 어딘가에 가기 위해 시간에 쫓길 일이 없고 맛 집이라는 말이 없으니 무얼 먹을지 고민도 없었다. 그냥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느낌이었다. 걷는 발걸음 뒤로 어느새 그림자가 사라지도록 성 안을 돌아다녔다.

해 질 무렵 자이살메르 요새는 일몰에 노랗게 물들어 갔다. 이곳을 ‘황금의 요새’라고 부른 연유를 실감했다. 이 요새에는 해질 무렵 자이살메르를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가르자이살 호텔’의 루프탑이었다. 이 루프탑에 오르니 자이살메르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같이 간 동행들과 사막도시의 아름다움에 취해 긴 쇼파 같은 의자에 앉아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불쑥 변덕스러운 마음이 느껴졌다. 인도에 온 이후 자그만 고통과 사소한 기쁨으로 하루가 오고 갔다. 인도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인간의 졸렬함을 어찌 알 수 있었을까 싶었다. 의자에 거만한 포즈를 잡고 그 옛날 이곳의 무역을 주름잡던 낙타 거상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렸다. 겨우 8,000원짜리 옷을 입고 8,000억 원을 가진 행세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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