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칠흑 같은 밤을 끌어안고 방 안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컹컹 개 짖는 소리가 시골 고향집의 밤을 소환했다. 골목대장이나 될 법한 개인지 목청이 제법 귀에서 도사렸다. 인도에 온 이후로 낯선 방 안에서 홀로 지새는 밤이 그리 편안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밤새 뒤척인 탓에 아침이면 뒤늦은 잠이 몰려왔다.
이른 아침 루프탑에 올라와 햇볕 잘 드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아침의 찬 기운 위로 태양이 떠올랐다. 도시가 조금씩 누런 빛으로 변하고 기온이 급격히 올라갔다. 자이살메르를 ‘골드 시티’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막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침이면 서늘한 한기로 몸이 으슬으슬했으나 한낮이 되면 햇살이 불같이 따가웠다. 난 모자를 눌러쓰고 비스듬히 누워 누런 빛의 햇살과 서늘한 바람에 몸을 맡겼다. 기분 좋은 나른함이 몰려왔다. 사막을 가로질러 불어오는 바람은 뽀송뽀송 잘 마른 이불처럼 부드러웠다.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사막 사파리를 위해 오후 1시 30분 지프차를 타고 쿠리 사막으로 향했다. 지프차 운전사가 좁은 도로를 마치 곡예하듯이 1시간을 질주했다. 운전이 거의 오프로드 자동차 선수 수준이었다. 그럼 함에도 인도의 운전기사의 보수는 형편없다. 장하준의 저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라는 책에 인도의 운전기사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개인의 뛰어난 능력보다 사회경제시스템이 생산성에 더욱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운전기사는 승객을 정확한 시간에 안전하고 편안하게 목적지에 모시는 것으로 생산성을 평가한다. 그렇다면 인도의 운전기사가 스웨덴의 운전기사보다 운전능력이 뛰어나도 보수가 적은 이유가 납득이 되었다. 이 운전기사의 현란한 운전 솜씨에 간이 오싹한 순간 뜬금없이 장하준의 말이 생각났다.
사막 사파리에 참여한 사파리 투어 팀이 도착한 곳에 오늘 우리가 타고 갈 낙타들과 낙타 몰이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낙타 몰이꾼 대부분은 아이들이었고 모두가 가족처럼 보였다. 낙타를 타고 쿠리 사막으로 나아갔다. 사막의 모래에 비친 그림자를 보니 ‘아라비아 로렌스’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영화 속의 사막 저편에서 낙타를 타고 나타나는 ‘오마샤리프’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어릴 적 ‘아라비아 로렌스’를 KBS 명화극장에서 보고 ‘데이비드 린’ 같은 영화감독이 되는 상상을 했었다. 잠시 추억을 떠올렸는데 어느새 낙타는 나를 쿠리 사막 한가운데로 실어 나르고 있었다.
낙타를 타고 가면서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속의 낙타 이야기가 생각났다. 등에 짐을 지우면 지우는 대로 수용하고 따르는 낙타 같은 인생을 거부하고 이곳까지 와 있었다. 그런 인생은 거부했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게 나를 호락호락 풀어주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도 다행이다. 지금은 누군가의 짐을 지지 않고 이렇게 낙타가 나를 태우고 가고 있으니 말이다.
하룻밤을 보낼 야영지에 도착했다. 해는 사막 건너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밀려 저편에서 홀로 물들고 있었다.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곳에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이 순간만큼은 붉게 물들어 저물어가는 석양이 넋을 잃게 아름다웠다. 그리운 것들이 저편에서 서서히 저물고 있었다. 투어에 참가한 친구들이 사진 속에 이 아름다움을 담았다. 훗날 정작 사진에 담긴 것은 그리움이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낙타 몰이꾼 아이들이 모닥불을 피웠다. 모닥불이 어둠을 두어 발걸음 뒤로 밀어내고 길게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아이들이 저녁식사로 카레밥을 우리에게 가져왔다. 어린 나이에도 가족을 도와 음식을 나르고 식사하는 동안 북을 치고 노래를 부르며 작은 공연도 했다. 서툴지만 당당해 보이고 착하고 예뻤다. 중학교에 이제 입학하는 아들과 아버지가 이번 사파리를 같이 했다. 아버지의 다정함에 아들은 불평하면서도 받아들이는 모습이 정겨워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20대 친구들과 조촐한 술자리가 벌어졌다. 핸드폰으로 각자 듣고 싶은 음악을 돌아가며 같이 들었다. 핸드폰에 저장된 음악이 모닥불에서 노래가 나오는 듯 서늘한 사막의 밤공기를 데웠다. 사막의 냉랭한 밤공기가 머릿속을 파고들어도 제각각 탁월한 선곡들로 마음은 훈훈했다. 나는 김창기의 ‘원해’라는 곡을 선곡했다.
밤이 되니 사막은 몹시도 추웠다. 두터운 이불과 침낭에도 불고하고 예리하게 찌르는 듯한 한기가 등에서 올라왔다. 사막의 밤을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했다. 시간이 지나고 해가 저편에서 이 한기를 몰아가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새벽 3시 이 적막함과 고요함을 방해하는 건 낙타꾼의 해소 가득한 기침소리와 낙타의 코 고는 소리뿐이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일어나 사막의 별들을 찾았다. 별은 밝은 달빛에 가려 있었다. 보름의 달빛이 사그라들고 별들이 제 빛을 찾기를 기다리며 이 한기 가득한 밤을 보내고 있었다. 무엇이 나를 이곳으로 오게 했는지 생각을 더듬거렸다. 다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린 동굴로 들어온 것 같았다.
사막에 해가 비치니 간 밤에 어디론가 가버린 낙타들이 다시 돌아와 있었다. 오리털 파카에 침낭까지 둘러쓰고도 추워서 바들거렸는데 추운 몸을 웅크리고 있는 아이를 보고 가슴이 아팠다. 인도의 라자스탄을 여행하면서 사막 사파리를 건너뛸 수 없다. 사막에서의 하룻밤이 빼놓을 수 없는 여행상품이 되었다. 그런데, 일이 많아지니 이곳에 있는 아이들은 학교에 갈 시간 없이 부모를 도와 일을 하고 있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놀러 왔다가 조금 착잡한 마음으로 고생한 아이 어깨 한번 토닥거리고 부모 몰래 용돈을 쥐어 주었다. 두 번 다시는 사막에서 자지 않으리라는 마음을 다지고 어젯밤 잠투정한 일이 있었는지 모르게 다시 돌아온 가지네 호텔에 간사한 마음을 드러냈다. 하마터면, 집에 오니 좋다고 말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