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인도 - 자이살메르 #1

자이살메르로 간다 (2017년 2월 6일)

by 정원철

#1 자이살메르로 간다 (2017년 2월 6일)

조드푸르에서 자이살메르로 가는 길은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첫날 만난 친군이와 하연이가 나와 같은 날 자이살메르로 출발했기에 동행하기로 했다. 자이살메르로 가는 길에 동행이 생겨서 마음이 놓였다. 선샤인 게스트하우스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하기 위해 배낭을 메고 골목길을 걸었다.


조드푸르의 골목길의 낮잠 자는 개에게도 작별인사를 했다. 개들과 친하게 지낼 마음도 없는 오만한 외지인에게 골목길을 지나다니도록 관심 갖지 않아 준 것에 감사했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기 전에 사다르 바자르 북문에 들렸다. 우리 동행친구들이 오믈렛을 한 번 더 먹겠다는 의욕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이 동행은 전적으로 내가 그들의 안내로 가는 꼴이니 그들이 갑이었다. 그냥 그들 가는 길에 자리 하나 얻어 가는 격이었다. 그런데 그게 이상하게도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보호받는 것처럼 마음이 편안하고 기쁨이 있었다.


오믈렛 가게는 아직 오픈 전이었다. 프라이팬을 달굴 가스불도 그날따라 말썽이었다. 시간이 점점 지체되니 이러다 버스 놓치는 거 아니냐고 소심하게 한마디 했다. 그러나 동행친구들의 처분에 대항할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 아무 문제없이 버스에 타게 해 주겠다는 친군이의 일언에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오믈렛이 나오고 릭샤를 타고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릭샤가 잠시 정체로 멈추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추려한 젊은 여자가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손을 내밀며 내 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친군이와 하연이는 도와주면 안 된다고 했다. 그녀의 애달픈 눈을 외면하지 못해 100루피를 주었다. 친군이는 이런 식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극단적으로 아이들을 불구로 만드는 일도 있다고 했다. 적선보다는 구호단체에 기부하거나 봉사활동에 참여해야 한다고 똑 부러지게 말했다. 친군이는 인도에 봉사활동을 다닌 경험이 있어서 인도에 관한 한 나의 선생님이었다.


친군이의 말에 나도 모르게 나의 에고가 입에서 튀어나왔다. “물이 말라서 죽어가는 물고기에게 한 바가지의 물이 급하지 서해의 장강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내 적선이 오늘 그녀에게 절실한 도움인지 누가 알겠느냐고 그만 말대꾸를 해버렸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자세를 바꾸어 나의 생각은 그럴 수도 있다는 점을 부연 설명하며 말을 흐렸다. 한 발 더 나아가 다음에 또 구걸하는 사람이 있으면 다시는 적선하지 않겠다고 갑님의 의견에 대한 존중을 표시했다. ‘세상 사는데 이리 쉽게 살았으면 여기까지 올 일도 없었을 텐데......’ 뒤늦은 깨우침이었다.


자이살메르로 가는 버스는 인디아 타임을 어기고 제시간에 출발했다. 이제 조드푸르를 떠나 자이살메르로 간다. 메헤랑가르의 웅장함, 사다르 바자르의 혼돈, 오물과 개로 끔찍했던 골목길, 허름한 숙소에서의 안식 등 인도에서의 첫 만남은 극과 극을 오고 갔다.

버스표는 전 날 선샤인 게스트하우스에서 예약을 했었다. 머리 바로 위에는 '슬리핑 부스'가 있고 통로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좌석에 앉으니 미리 예약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도시를 벗어나니 단조로운 풍경이 이어졌다. 이 척박한 단조로움 속에 이글거리는 것은 열정 가득한 사람들의 생명력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잡목 더미의 사막지대를 세 시간째 지나고 있었다. 생각조차 푸석푸석 메말라 흙먼지로 날아가 버렸다. 더 이상 무언가를 떠올릴 수 조차 없이 생각은 남은 것이 없었다. 무념무상의 상태에 빠져들었다.


#2 가지네 호텔 루프탑 (2017년 2월 6일)

버스가 자이살메르에 도착하니 가지네 호텔의 주인인 가지 씨가 버스 창문을 향해 “어서 오세요”하고 유창한 한국말로 반겼다. 우리 동행친구들이 가지네 호텔에 미리 예약해 가지 씨가 마중을 나온 것이다. 가지 씨의 친절함이 비즈니스라 하더라도 그의 친근한 미소는 낯선 외지인을 무장해제시키고도 남았다. 가지 씨가 준비한 릭샤를 타고 숙소 앞에서 내렸다. 가지네 호텔은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다. 조드푸르의 선샤인 게스트하우스가 인도에서의 숙박에 대한 기대치를 너무 낮추었기 때문이었다.

짐을 대충 정리하고 밥을 먹으러 가지네 호텔 루프탑으로 올라갔다. 인도에서의 생활영역 중 루프탑이 8할 이상을 차지하는 것 같았다. 루프탑은 레스토랑이고 휴식처이며 사교의 장이었다. 그래서 루프탑의 근사한 야경을 가진 호텔을 선호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밤늦게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가지 씨가 주의를 주었다. 특히, 개들은 밤에 야생성을 드러내 가지 씨도 밤에는 잘 돌아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밤에는 꼼짝없이 호텔에 갇혀 지내는 꼴이었다. 그래서, 루프탑은 밤의 답답한 속박을 풀어주는 유일한 탈출구이고 안식처였다.

해질 무렵 가지네 루프탑에서 본 자이살메르는 상상 속의 사막도시 그대로였다. 어쩌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근사했다. 멀리 자이살메르 요새가 아름다운 일몰로 붉게 물들어 갔다. 루프탑의 레스토랑에서 짜이를 주문했다. 짜이의 홍차 맛이 유난히 진했다. 이렇게 멋진 일몰이 점점 빛을 잃어 가는 것이 아쉬웠다. 어둠 속으로 자이살메르 성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도 한참을 바라보며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둠 속으로 생각도 사라졌다. 아무런 생각 없이 시간이 흘렀다. 바람이 손끝에서 느껴졌다.

어두워지고 집집마다 불이 켜지고 옆집 마당에서는 결혼식이 열린 모양이었다. 결혼 피로연이 열리고 있었다. 어제의 결혼식과는 달리 크고 화려하고 성대했다. 악사와 무용수들의 음악과 춤사위가 어둠 속으로 사라진 사막도시를 다시 깨웠다. 루프탑에서 인도가 주는 신비함에 흠뻑 빠져 들었다.


keyword
이전 05화북인도 - 조드푸르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