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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철 Nov 23. 2021

되돌아봄에 대하여

 

되돌아봄에 대하여....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다 지난 일이에요.’ 지난 일을 곱씹는다고 바뀔 것은 없다며 남 일에 대해서는 속 편하게 내뱉는 말이다. 그러나, 정작 나에게는 잘 통하지 않는다. 지난 일을 곱씹고 되돌아보면 내 속은 쓰리고 아리다. 어제 일은 이미 지났고 미래는 어느 누구도 모르니 오로지 지금 이 순간을 살자는 말은 실제로 명약처럼 느껴진다. 격려나 위로의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세상의 모든 일은 다 지난 일이라는 말은 말하며 듣는 나도 위로가 된다. 

‘그래 다 지난 일이야~’ 

이불을 끌어당겨 머리까지 덮고 이 말을 반복하며 잠이 들었다. 늘 그렇듯이 눈을 뜨고 맞이하는 현실은 어제의 바람과는 다르다. 어제와는 다른 하루를 바라는 희망과 그럴 리가 없을 것이라는 절망 사이의 어디쯤에서 하루는 시작한다.      


  지난 목요일 대학 수학능력 평가가 치러졌다. 아들도 올해 수능시험을 치르러 긴장한 얼굴로 고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저녁 올해 수능은 역대급 ‘불수능’이라는 자막이 텔레비전 하단을 움직이며 지났다. 불수능이라는 자막 글씨가 오른쪽에서 나타나 반절쯤 지날 때야 비로소 단어의 뜻이 이해되었고 왼쪽으로 거의 사라질 즈음 조금의 미련을 남겨두고 받아들일 준비를 떠올렸다. 그날 밤 몹시 긴장하고 실망한 아들을 만났다. 아들에게 위로랍시고 다 지난 일이고 인생은 결과보다 결과를 대하는 태도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겨우 나와서 식탁에 앉은 아들은 방안으로 다시 들어가 버렸다. ‘다 지난 일’이라는 말조차 무용한 순간에 ‘태도’라는 말로 비수를 꽂았으니 방안의 동굴에서 홀로 상처를 치유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되돌아보니 ‘다 지난 일이야’라는 말은 정작 내가 나 자신에게 했어야 할 말이다. 

         

  어머니는 지난 일을 들추어 이야기하기를 하루에도 수없이 반복하신다. 그러한 어머니를 위로하다가 ‘엄마 다 지난 일이잖아~ 이제 그만하세요’라고 말하면 내가 얼마나 했다고 말문을 막느냐고 서운함 반 역정 반이시다. 어머니가 치매약을 드신다는 사실만으로는 어머니의 치매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머니의 치매를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어머니의 수없이 반복되는 넋두리는 지나온 삶에서 되돌아볼 틈 없이 묻어 둔 상처를 씻는 의식이다. 한을 풀기 위한 한바탕의 살풀이다. 그런데 정작 그 살풀이 마당에서 관객으로 앉아 있는 아들은 괴롭다. 그럴 때마다 아들인 나는 하루를 채 넘기지 못하고 ‘이제 그만하세요, 다 지난 일이에요.’라고 말해 버린다. 누군가는 손쉽게 떨쳐버리는 일이 어느 누군가는 목구멍에 달라붙어 아무리 침을 삼켜도 뚝 떨어져 삼켜지지 않는다. 어머니에게 인생을 되돌아보는 일이 힘겨워 보일 때 차라리 되돌아보지 못할 만큼 치매가 기억을 가져갔으면 했다. 지난 삶을 들추어내는 어머니는 한풀이를 하고 있으셨다. 어머니에게 하나하나 되짚고 되돌아보고 한없이 풀어놓고 가시라고 했어야 했다. 되돌아보니 어머니에게 그만 좀 하시라고 말 한 내 입이나 좀 닫고 있었어야 했다. 어머니를 되돌아보는 일은 언제나 후회스럽다.   

            

 어느새 나는 중년의 시간이 지나고 있다. 어느 날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난 지금이 가장 행복해~ 그 치열했던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라며 잔도 부딪히지 않고 혼자 술잔을 기울였다. 꽤나 심각하게 들었던지 친구가 많이 힘들었구나 하며 잔을 채워 주었다. 그런데 그 순간 정작 나는 지금의 내가 행복하다는데 방점을 두었다. 친구가 내 말을 받아 힘들었겠다고 던진 말이 잔잔히 파장을 일으켰다. 치열하게 살았던 지난날의 기억이 말풍선처럼 나타났다 사라졌다. 돌아가고 싶지도 되돌아보는 일도 원치 않는 마음의 뒷그늘에는 그 시절의 절망이 숨어있다. 그러하기에 상처들을 일부러 들춰내어 생채기를 낼 이유가 없다. 오늘 만나고 있는 친구와의 행복을 제대로 느끼며 사는 편이 훨씬 낫다. 


누가 그걸 모르겠는가? 머리로는 다 아는데 그게 잘 안된다. 오늘같이 가을비가 여름 장마처럼 내리는 날은 무언가 날 먼 옛날로 끌고 가는 것만 같다.      

비가 오면 아내와 결혼 초의 생활이 생각난다. 나의 일은 주로 길거리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일이었다. 아내는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금장사 우산장사하고 결혼한 거 같다고 했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걱정 더우면 더워서 걱정이었다. 끝도 없는 터널에 갇힌 세월이었다. 나도 어머니처럼 내 의식이 희미해질 때 비가 내리면 넋두리를 쏟아내지 않을까 걱정된다. 되돌아보는 일은 웃음 짓는 일보다 가슴 저린 일이 더 많다. 

그렇다고 하염없이 지난 세월의 강만 쳐다보며 살아서는 안된다. 그 강물 너무 오래 쳐다보면 망부석처럼 돌이 된다. 그만 강물 들여다보고 갈 길 가야 한다. 오늘을 살면서 어제의 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되돌아볼 일은 어찌 되었건 되돌아보고 오늘은 갈 길을 가야 한다. 

     

되돌아보는 일에 대해 다시금 돌이켜 보며 통감하는 마음은 감사함이다. 되돌아보는 쓰디쓴 맛이 없다면 감사하는 마음이 있을까 싶다. 그 쓴맛을 중화시키는 단맛이 감사함이다. 되돌아보고 후회와 아쉬움만 가득한 한숨이 나오다가 그래도 감사한 일과 사람이 떠오르면 일순간 세상은 환한 불을 켜고 미소가 번진다. 그러면 되돌아보는 마음에 단비가 내린다. 

다 지난 일이라고 잊고 살자는 말은 허언이다. 잊히지 않도록 어디엔가 적어놓고 살면 오히려 마음 편하다. 가끔 꺼내어 지금이 아니라 과거에 있었던 일임을 깨닫기만 해도 다행이고 감사해진다. 꼭 말로 해야 아느냐고 하겠지만 말로 곱씹어 보지 않으면 감사한 마음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하루에 한 번은 물을 퍼 올리듯 옛일을 두레박질해서 감사한 마음을 퍼 올려야겠다. 감사함의 샘물이 마르지 않도록 되돌아보고 또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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