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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원 Oct 28. 2021

가을 단풍

  깊어감에 대하여.....

깊어감에 대하여......

     

  ‘깊다’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겉에서 속까지의 거리가 멀다.’ ‘생각이 듬쑥하고 신중하다.’라고 풀어쓰고 있다.   

   

 10월 말의 나뭇잎은 붉고 노란색으로 물들어 지난 여름과 다르게 그윽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여름이 지났다. 짙은 녹음을 뒤덮은 매미 소리가 어느 날 뚝 끊겼고 밤바람이 어느새 식어 불었다. 몇 번의 여름을 보냈을까? 언제부터인지 여름의 시간은 좀 성긴 것 같다. 에어컨 아래에서 딱 한 달만 버티고 유리창 너머의 자외선을 딱 두 달만 피하고 보자는 식이니 기억에 남는 일이 별로 없다. 에어컨이라고 딱히 좋은 것만도 아니다. 하루 종일 에어컨 바람 탓에 몸은 몸살을 앓는다. ‘어서 가라 여름아~~’하고 진저리를 쳤다. 그런 여름이 소리도 없이 가버렸다.      

 여름의 긴 끝을 잡고 가을이 딸려왔다. 뜯어진 실밥 잡아당기니 보따리 터지듯 가을이 왔다. 도톰한 옷을 꺼내 입을 정도의 밤공기로 나뭇잎은 단풍색으로 물들다 속절없이 낙엽 지고 메마른 나뭇가지를 드러낸다. 메마르고 차가운 바람에 잎이 우수수 떨어져 날리면 가을의 절정은 끝이 난다. ‘가을이 깊어간다.’ 깊어간다는 말에는 시간의 흐름 이상의 무엇이 감돈다. 색은 진해지고 향기는 냄새에 가까워진다. 점점 멀어져 사라졌으나 절대로 잊혀지지 않을 언약이 느껴진다.

  ‘깊어간다’는 말에 잠시 머무른다. 계절이 바뀌어 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사람과의 인연이 어느 계절쯤에 머물러 있는지 되돌아본다. 매일 보아도 수년을 만나도 더 이상 깊어지지 않는 사람은 여전히 여름 속에 있다. 진저리 쳐지는 여름도 아닌 가을을 지나치고 겨울로 바로 간 사람도 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여름을 지냈다. 가을바람에 마른 지난 여름꽃처럼 시들어 버린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가을 속으로 같이 깊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가을로 같이 걸어간 사람들, 이들과 단풍으로 진하게 물들다 손잡고 낙엽으로 떨어지고 싶다.

‘깊어간다’는 말은 기꺼이 같이 죽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즐거운 한낮을 보내고 잘 가라고 손 흔드는 일이 아니라 너의 고통 속으로 기꺼이 들어가 단풍 되어 같이 떨어지는 아름다운 가을날의 낙하이다. 그래서 깊어지려면 같이 여름을 지내야 하고 여름 끝에 가을로 접어들 마음이 무르익어야 한다.      

  깊어지면 고요해진다. 깊어가는 사람들은 가을과 겨울 사이에 다른 계절을 심는다. 고요함을 세상에 남기고 시끄러운 사람들의 눈에서 사라진다. 사람이 외로운 이유는 깊어가는 사람들이 가을로 가는 동안 나 혼자 여름 속에 갇혔기 때문이다. 깊어진 사람은 흔적 없이 겨울이 아닌 다른 계절로 간다. 다시 꽃피는 봄을 기약하지 않는다. 봄은 여리고 여름은 치열하고 가을은 아팠다. 봄꽃의 화려함에 취해 가슴의 진물 나기를 반복하지 않는다. 깊어간다는 말은 반복되는 미숙함의 구심력을 깨고 성숙함으로 나아가는 힘이다.      

  깊어지고 있는가?라고 물어본다. 깊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요해지는 것만은 확연히 느끼겠다. 코로나로 사람들 간의 거리 두기 일상도 한몫했다. 고요의 착각은 아닐지 모르겠다. 고독의 시간은 깊어지는 길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다. 아마도 이제 깊어지려나 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외로움이 아닌 고요함으로 깊어가는 가을을 섬세하게 느낀다. 이제는 낙엽이 져도 가슴 아프지 않다. 감정이 메말라서가 아니라 낙엽 지는 일은 깊어지는 일임을 알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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