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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철 Oct 28. 2021

깊어감에 대하여

  

깊어감에 대하여......


  ‘깊다’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겉에서 속까지의 거리가 멀다.’ ‘생각이 듬쑥하고 신중하다.’라고 풀어쓰고 있다.        


 여름은 질기고 거칠었다.  이번 주만 지나면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올 것이라는 거짓 기상뉴스는 더위가 물러가기를 바라는 기원제가 되었다. 기상뉴스가 거짓이고 진실이고 상관없이 이 더위만 물러간다면 모든 것이 용서되었다. 이렇게 지독하고 질긴 여름은 처음 겪었다. 그토록 질기던 여름은 기후절망이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멈추었다.


살면서 몇 번의 여름을 보냈을까?  언제부터인지 계절의 한 마디가 사라진 듯하다. 여름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져 간다. 에어컨 아래에서 딱 한 달만 버티고 유리창 너머의 자외선을 딱 두 달만 피하고 보자는 식이니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 별로 없다. 

여름의 맑고 뜨거운 하늘 아래에서 검게 그을린 피부가 얇게 벗겨지도록 놀던 시절이 있었다. 하루종일 물놀이로 곤한 눈에 잠이 가득 들어와도 너무도 달았던 수박을 포기하지 않고 베어 물었다. 여름은 재미있는 놀이로 가득했고 달궈진 한낮의 대기를 뚫고 사람들은 생동했다. 그토록 열기와 생기가 뒤섞인 생명의 역동이 사라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여름 한낮 도시의 거리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여름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걱정스러운 눈길로 창밖을 내다보며 종일 켜놓은 에어컨 바람 탓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어서 가라 여름아~~’하고 진저리를 쳤다.


 어느 날 짙은 녹음을 뒤덮은 매미 소리가 뚝 끊겼고 밤바람이 식어 불었다. 여름이 소리도 없이 가버렸다. 그리고, 여름의 긴 끝을 잡고 가을이 딸려왔다.

뜯어진 실밥 잡아당기니 보따리 터지듯 가을이 왔다. 도톰한 옷을 꺼내 입을 정도의 밤공기가 갑자기 들이닥쳤다. 나뭇잎은 단풍색으로 물들고 여름 색과는 달리 세상은 그윽함에 빠진다. 지난여름 포악한 햇살도 다 견뎌내었던 나뭇잎들이 한바탕 불어닥친 새벽 찬바람에 속절없이 스러져 간다. 메마르고 차가운 바람에 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날리면 가을은 절정으로 간다. 그 왕성했던 생기가 허망하게 사라지고 앙상한 살점을 드러낸다. 얇고 메마른 나뭇가지에 마른 잎이 몇 점 악착같이 붙어있다.


‘가을이 깊어간다.’ 깊어간다는 말에는 단순히 시간이 흘러간다는 의미 이상의 무엇이 담겨있다. 세월만 간다고 깊어지지는 않을 거 같다. 헐벗은 나무 두 그루가 마주 서 있다. 잎과 꽃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사라졌으나 이 혹독함을 서로 견디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제 몸에 색을 채우리라는 입을 꾹 다문 앙칼짐이 느껴진다. 바람에 마지막 낙엽이 떨어지는 순간 가을은 깊어간다.


  ‘깊어간다’는 말에 잠시 머무른다. 계절이 바뀌어 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사람과의 인연이 어느 계절쯤에 머물러 있는지 되돌아본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과 여름을 지냈다. 치열했던 삶 속에서 만나고 부대낀 사람들이다. 서로에게 열렬하나 어느 순간도 서로의 진실에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은 여전히 여름 속에 갇혀있다. 매일 보고 수년을 만나도 더 이 상 깊어지지 않는 사람은 진저리 쳐지는 여름도 아닌 가을을 지나치고 겨울로 바로 간 사람이다. 가을바람에 마른 지난여름꽃처럼 시들어 버린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지난 봄꽃의 순결함을 그리워하며 끙끙거리며 겨울을 견디는 사람도 있다. 이 모든 사람 중 여름을 보내고 가을로 같이 걸어가는 사람들은 서로 깊어간다. 이들과 손잡고 단풍으로 진하게 물들다 낙엽으로 떨어지고 싶다.


‘깊어간다’는 말은 네가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기꺼이 같이 있겠다는 말이다. 즐거운 한낮을 보내고 잘 가라고 손 흔드는 일이 아니라 너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이 밤을 네 곁에서 같이 지새우겠다는 마음이다. 깊어가는 길은 오직 하나이다. 너와 나는 여름을 같이 보내야 한다. 여름 끝에 가을로 접어들 마음이 무르익어야 한다. 무르익어야 비로소 깊어감을 안다.      


사람 만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도 몇 개의 모임에 참석한다. 이 모든 모임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묻지도 않고 그냥 나가서 앉아 있을 때가 있다. 그들은 술을 마시며 오랜만에 만난 기쁨을 즐긴다. 나도 못 마시는 술을 마시며 취기가 오르면 그들과 정말 익어가는 착각에 빠진다. 우리는 헤어지고 다시 만날 때까지 서로의 건강과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혀 해가 되지 않는 모임 그러나 나에게 행복이 되는지 의심스러운 모임이다. 해만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람의 말에 쉽게 공감이 가지 않는다. 어느 때는 배드민턴 클럽에 나가 운동하는 게 차라리 좋다. 술 마시지 않고 이야기도 하지 않고 셔틀콕만 주고받는 순간이 더욱 행복하다. 모임에 나가거나그동안 깊어져 있다고 착각한 사람과 만나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술이 있는 저녁에만 서로 익어가는 사람들 속을 떠나기로 했다. 이런 나를 두고 세상에서 재미있는 일 한 가지를 모르고 산다고 한다. 사람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기보다 지난여름을 같이 보낸 사람과 깊어지고 싶다.


  깊어지면 고요해진다. 깊어가는 사람들은 가을과 겨울 사이에 다른 계절을 심는다. 고요함을 세상에 남기고 시끄러운 사람들의 눈에서 사라진다. 사람이 외로운 이유는 깊어가는 사람들이 가을로 가는 동안 나 혼자 여름 속에 갇혔기 때문이다. 깊어진 사람은 흔적 없이 겨울이 아닌 다른 계절로 간다. 깊어진 사람은 다시 꽃피는 봄을 기약하지 않는다. 봄은 여리고 여름은 치열하고 가을은 아팠다. 봄꽃의 화려함에 취해 가슴의 진물 나기를 반복하지 않는다. 깊어간다는 말은 반복되는 미숙함의 구심력을 깨고 성숙함으로 나아가는 힘이다.


  이 가을에 나는 깊어지고 있는가? 고요의 착각에 빠진 건 아닌가 싶다. 깊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요해지는 것만은 확연히 느낄 수 있다. 고독의 시간은 깊어지는 길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고요하다. 아마도 이제 깊어지려나 보다. 깊어가는 가을을 섬세하게 느낄 수 있다. 낙엽이 져도 아무렇지도 않다. 감정이 메말라서가 아니라 낙엽 지는 일은 깊어지는 일임을 알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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