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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철 Oct 15. 2021

그리움에 대하여

‘그리워하다’를 국어사전에서는 ‘보고 싶거나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라고 풀어쓰고 있다.   


  그리워할 대상조차 없이 먼 산 바라보는 일보다 비 오는 처마 밑에서 청승맞게 빗소리를 들을지라도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푸석푸석하지 않고 촉촉해서 좋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에 서정주 시인의 마음처럼 그리운 사람을 더욱 마음껏 그리워하고 싶다. 내 마음에 그리운 대상이 넘쳐나는 일은 더운 여름 가슴에 맑고 시원한 물이 차오르는 일이다, 지하도 콘크리트 벽 좁은 틈에서 숨 막힐 듯 토하며 울어대는 귀뚜라미처럼 나 여기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그런데 요즈음 정작 그리워할 대상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낡은 흑백사진처럼 흐릿해져 간다. 기억 속에 사진처럼 남아 있을 줄 알았던 그 시절의 얼굴과 사건들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는데 필요한 시간은 점점 길어져 간다. 불투명유리 너머에 있는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문을 열어보려 안간힘을 주지만 그 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우리는 그리워서 아픈 게 아니라 그리워할 대상이 점점 사라져서 슬프다.    


    그리움의 대상에는 언제나 사건이 존재한다. 누군가를 기억에 남을 만큼 그리워하게 된 사건은 중학교 2학년 때 일어났다. 사춘기 소년의 마음은 얇은 한지 같아서 쉽게 물들고 스며든다. 그날은 밤사이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순백의 이불을 뒤덮고 있었고 도로 위로 내달린 자동차 몇 대의 흔적만 있을 뿐이었다. 눈이 부시게 하얀 세상이 결국 진창으로 변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나는 이른 아침 눈이 펑펑 쏟아지는 길을 모자 달린 파카를 입고 발자국을 도장처럼 남기며 걷고 있었다. 그날 눈 오는 길 위에서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한 여학생을 보았다. 서울에서 이사 온 그 여학생은 하얀색 파카 안에 뽀얀 하얀 얼굴을 가리고 흰 눈을 맞으며 서 있었다. 그때 버스정류장을 주위로 온 세상이 하얀빛으로 뒤덮였다. 흰색도 선홍빛만큼 강렬하게 마음을 물들일 수 있었다. 그날 이후로 일 년 동안 그 여학생을 마주할 때는 맑은 하늘에서 흰 눈이 내렸고 버스 정류장에서 그녀를 만나지 못하는 날은 어디선가 뿌연 먼지가 도로 위를 쓸고 지났다. 사춘기 소년의 첫사랑은 순백이었다. 어느 가을날 나는 용기를 내어 그 여학생에게 수줍게 말을 걸었고 그 가을날 갈대밭이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둘이 앉았다. 결말은 늘 그렇듯 내 마음속의 소녀와 실제로 만난 순백의 소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흰 눈 내리는 날 흰색 파카를 입은 서울 소녀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지만 그 시절 내 마음은 나이를 먹지 않고 여전하다.          


  어느 날 뜬금없이 그냥 안부가 궁금하고 지난 일들이 떠오르며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대부분은 그러고 다시 사그라든다. 만나지도 연락할 길도 없기에 길게 생각해 보아야 헛일임을 몸이 먼저 알고 있는 듯하다. 때로는 평소에 그리워하던 대상을 실제로 만난다. 그런데 실제로 만나고 보면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만남을 후회한다. 헤어져 있으면 그리운데 정작 만나고 보면 실망하고 헤어진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나면 또 그 사람을 그리워한다. 내 마음에 허상을 만들고 이미지를 덧씌우고 그리워하는 사람이다. 사춘기 소년이나 할 법한 일을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하면 인생이 고달프다.  그러고 보니 그리움에도 결이 다른 구석이 있다. 내 마음에 허상을 심고 욕망하는 그리움이 있는가 하면 지난 세월 속에 지문처럼 남아 잊히지 않는 사람이 있다. 진정으로 다시 한번 만나고 싶은 사람을 떠올리면 ‘잘살고 있나?’ 마음속으로 물으며 차 한 잔을 마신다. ‘잘살고 있겠지’ 하며 그러길 바라는 마음 위에 찻잔을 내려놓는다. 

언제가 안치환의 콘서트에 간 적이 있는데 안치환의 멤버가 소식이 갑자기 끊겼다고 했다. 안치환은 그 친구의 안부가 너무도 걱정되고 궁금했었는데 그 후 그 멤버의 소식을 듣고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살아있으면 됐지’하고 그 멤버에게 연락하지 않았다고 했다. 연락이 끊긴 친구가 떠오르면 ‘어디선가 살아만 있으면 됐지’ 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그리움은 기억에 스위치를 켜는 일처럼 느껴진다. 어디선가 노래가 흘러나오면 전구에 불이 들어오듯 내 마음에 영사기가 돌아가는 순간이 있다. 연말모임에 어린 시절 친구를 만나러 나가는 일도 추억의 난로에 불을 켜기 위함이다. 그리운 것들을 그리운 대로 마음껏 그리워하는 마음을 어디에서도 혼자 즐기는 사람이 더욱 행복해 보인다. 그런데, 사람과 헤어지는 일이 힘들어서 애당초 만남도 건성인 사람들이 있다. ‘오월 꽃잎 날리듯 그렇게 헤어지기로 해’하며 돌아서서 뒤돌아보지 않고 갈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딱히 연인이 아니더라도 사람들과 깊게 정이 들면 헤어지는 일도 쉽지 않다. 그래서 처음부터 마음의 벽을 쌓고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안정감이 생긴다. 나도 그런 사람이 아닌가 싶다. 그야말로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그는 사람이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주저 없이 사랑하고 가슴 아파하고 싶다. 그리운 사람들로 가득 채우고 싶다.     


 사건과 경험이 존재의 차원이라면 그리움은 생각의 차원이다. 그리움에 이어서 오는 감정은 복잡하다. 사람의 언어로는 그 마음을 풀어놓기에 너무도 빈약하다. 누군가는 그리움이 병이 되기도 하고 입가의 미소가 나오기도 하고 슬프지만 마음 한구석에 기쁨이 있기도 하다. 그리움이 가져오는 갖가지 감정들로 삶은 살아있음을 느낀다. 오늘처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것들을 그리워해야 한다. 한 낮 햇살이 몸에 양분을 만들 듯 하루 한 번은 그리움으로 감정을 부추기며 지내야 한다. 어느 순간 그리운 것들이 다 사라지기 전에 지난 앨범을 간혹 들춰야 한다. 여행을 다녀온 후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데 사진이라도 찍어야 그리울 때 꺼내 볼 수가 있다. 그리움은 지나온 일들에 나만의 의미를 담고 엿처럼 굳어버린 감정을 살살 녹여낸다. 오늘은 입가에 미소 번지는 일들을 그리워한다. 그때의 그 사람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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