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한달살기] 우당탕탕제주도 서귀포 1일 차

아무리 무계획이라도 알고 있어야 하는 것

by 취미수집가

혼자 여행을 떠나본 적도 없고, 장기간 가족을 떠나 본 적도 없던 내가! 혼자 제주도라니! 그것도 한 달 동안!

늘 꿈꾸던 일이었지만, 막상 움직여야 하는 날이 되니, 불안과 걱정의 마음이 설레는 마음을 앞질러 머릿속이 복잡해 졌다. 사실 이 불안함의 원인이 무엇인지 또렷하게 알고 있었다. 숙.소.


지도 어플 하나면 길 잃지 않고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오만함에 출발 하루 전날에서야 숙소가 있는 서귀포까지 가는 길에 대해 찾아보았다. 승용차로 1시간, 버스로 1시간 반, 튼튼한 두 다리로는 10시간...... (네......?)

제주도를 제대로 체감하지 못해 간과해버린 오류였다. 제주도는 엄. 청. 나. 게. 넓은 섬이었던 것이다. 제주공항에서 다른 동네로 이동하는 것은,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동하는 것만큼이나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이었다. 렌터카를 이용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나의 선택지는 2가지뿐이었다.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거나. 하지만 버스는 환승을 해야 하고, 택시는 너무 비쌌다. 게다가 나에게는 20kg의 짐이 있었다. 짐 딜리버리 서비스를 이용하고 버스를 탈까 싶었지만, 공항에서 서귀포까지는 5시 이후면 운행하지 않기 때문에, 짐을 운반하는 책임은 오롯이 나에게 있었다. (한마디로 망. 했. 다.)


무계획이 계획이라지만, 적어도 숙소 가는 길은 알고 있어야지. 너무 생각이 없었던 것 아니냐! 머리를 뜯으며 스스로를 나무랐다. 완벽한 무계획은 출발 전부터 말썽이다. 참담한 마음이 기분까지 다스릴 찰나, 다른 선택지가 주어졌다. 공항 리무진버스. 이 버스로 말할 것 같으면, 제주시의 제주공항에서 서귀포종점까지 환승하지 않고 직행이면서(제주도는 놀랍게도 행정구역이 제주시와 서귀포시 2가지의 시로 나뉘어져있다.) 고속버스처럼 버스 하단에 짐칸이 따로 내장되어 있는 버스이다. 한마디로, 짐때문에 눈치 보지 않고, 장시간 버스로 이동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5,000원 이라는 합리적인 비용과 시간으로 숙소에 갈 수 있다. 이러한 대안의 등장에 곤두서 있던 신경이 안도감으로 바뀌면서, 칼로리를 다 태워버린 듯 기운이 빠져버렸고, 좀 더 침착하게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기내 안에서는 창 밖을 볼 여유도 생겼다. 오랜만에 보는 맑은 하늘 위로 카펫처럼 깔린 구름들을 보며 제주에 간다는 사실을 실감...... 하려던 중! 이륙 준비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한 시간 만에 도착이라니, 정말 세상 살기 좋아졌다. 하하하


여유로움도 잠시, 나는 20분 뒤에 도착하는 버스를 타기위해 또 달려야했다. 하지만 늘 그렇지 않은가? 내 뜻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것을, 열심히 뛰어 왔지만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였다. 수화물 운반이 지연되어 수화물 게이트가 옮겨졌고, 옮겨진 게이트에서 나의 캐리어는 벨트위에 나타날 기미가 없었다. 엄청 바쁜 사람인냥 사람들을 제치고 도착 한 것인데, 기내에서 천천히 나온 사람들을 하나둘 마주할 때 마다 머쓱하고 민망했다. 심지어 나보다 더 빨리 짐을 찾아가는 여유로움이란! (나 왜 뛴거야......?) 결국 3분 차이로 버스를 놓쳐버렸다. 허탈한 마음을 뒤로하고 1시간 뒤에 있을 버스를 기다리며 저녁을 먹기로 했다. 한국인의 힘은 밥심이 아닌가! 숙소로 가기위한 여정에 힘을 주기위해 밥다운 밥을 먹고 싶어 선택한 메뉴는 흑돼지 김치찌개. 제주 흑돼지의 맛 보다는 조미료와 달고 짠 인공적인 맛 이었다. 아는 사람 없는 낯선 공간에서 혼자 먹는 밥이 맛이 있었을리 만무했지만, 뱃속에 뭐라도 들어가면 조급한 마음이 가라 앉았기 때문에 내가 먹은 것은 단순히 밥 한끼만은 아니었다.


걱정과는 다르게 이후의 일들은 꽤 순조로웠다. 버스도 잘 탔고, 지도가 알려주는 대로 숙소도 잘 찾아갔다. 늦은 저녁이라 숙소가는길이 조금 무서웠고, 20kg의 짐덩어리들을 운반하는일 쉽진 않았지만, 멀리 보이는 숙소 간판에 마음이 놓였다. 혼자 해 보는 체크인도 잘 했다. 숙소측의 실수로 예약한 룸보다 다운그레이드를 해줘서 기분이 안좋아 질 수도 있었지만, 괜찮았다. 짐을 풀기 전 이였고, 지금 당장 눕고 싶은 마음에 모든 것에 관대했기 때문이다. 다시 안내 받은 방에 들어와 짐도 풀지 않은 채 침대위로 털썩 쓰러졌다. 긴장이 풀리니 실소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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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진짜 왔네, 제주도."


숙소까지 오며 있었던 일들이, 일기를 쓰는 이 순간에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이렇게 잘 올 거면서!(?) 뭘 그렇게까지 겁을 냈을까. 막상 해보면 별 것 아닌 일 이였는데, 오늘 있었던 모든 일들이 혼자 처음 해 보는 것들 이라 두배로 힘들어 서러웠던것 같다. 한편으로는 대견했고, 별 탈없이 잘 도착한 것에 감사했다.


온기 없는 차가운 침대 시트, 어색한 공기, 창문 너머의 낯선 풍경들과 어두운 밤에도 또렷이 보이는 한라산.

비행기 안에서 누리지 못했던 제주도의 실감을, 그리고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에 도착한 것을 온몸으로 체감한다. 내일은 슬렁슬렁 바다를 보러 가야겠다.





오늘의 우당탕탕 제주도

제주공항 -> 서귀포 숙소(호텔케니서귀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