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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미수집가 Sep 17. 2021

[제주도한달살기] 우당탕탕 제주도 애월25일차

습한 공기에 눌려 일어난 아침. 겨울바다의 거친 파도소리와 바람에 밤새 뒤척여 피곤한 아침이었다. 낮에 들었던 기분좋은 파도소리를 방 안에서 혼자 듣고있자니 소음을 넘어 무섭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바다를 보며 눈을 뜨고 감는 일은 낭만적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축축한 기분이다. 이불 밖을 나가기 싫어서 꼼지락 대다가 체크아웃 시간이 다 되어서야 어기적 어기적 일어나 짐을 싸서 나왔다. 차가운 바다바람에 뜨끈한 국물이 절로 생각난다. 1층 식당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려다가 근처 갈비탕 집에서 아침겸 점심을 뚝딱 해치웠다. 갈비탕이 잘어울리는 완연한 겨울이다. 


속을 든든하게 만들어줄 갈비탕 한그릇


숙소에 가방을 맡겨두고 어제 검색 했던 보도 10분거리의 카페에가서 시간을 보내다가, 속이 더부룩해져서 동네산책을 했다. 오늘은 어제와 반대방향의 길로 걸어보았다. 조금 걸으니 올레길 코스로 이어지는 안내소가 있길래 '올레길을 걸어볼까?' 라는 생각이 잠시 스쳐지나갔지만 바로 마음을 접었다. 춥고 흐린 날씨로 오랜시간 걸을 자신이 없어서 기웃거리다가 스탬프만 찍었다. 제주에 한달이나 있으면서 올레길 한번 걷지 않는 나를 보며 제주안에 온전히 스며들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의 계획에도 없지만.하하하하) 하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걷고싶지는 않았다. 또 기회가 있겠지, 산티아고의 순례길은 가보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이 26개의 올레길은 꼭 다 걸어보리라! 다짐했다. 올레길을 애써 외면하고 선택한 해안도로를 걷는데, 왜인지모를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길을 조금 더 걷다보니 알았다. '아!?, 이게... 길이 이렇게 연결이 되는구나?' 이곳은 윤희언니와 마지막날 저녁을 먹은 식당이 있는 곳 이었다. 고작 한번 가본 식당일 뿐인데, 길가다 친구를 마주친 듯한반가움이 느껴졌다. 차를 타고 지나가느라 보지 못했던 주변 풍경들을 익히고, 고내리가 한눈에 보이는 언덕에서 동네를 눈에 담았다. 역시 길은 직접 걸어야 보인다.




언덕을 내려와 다시 동네를 걸었다. 어제도 느꼈지만 이동네는 참 팔자 좋은 고양이들이 많다. 어느 가게를 가든 대부분 고양이 사료와 물그릇이 있고, 고양이들은 햇볕 가장자리에서 일광욕을한다. 돌담위, 길가, 지붕, 집안 마당, 심지어 바닷가의 바위 위에도 고양이가 있다. 바닷가 바위 위에 누워있는 미동없는 고양이를 보며 죽은건 아닌가, 걱정이 하고있을 찰나 기지개를 핀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일본에는 고양이 섬이 있다고 하는데, 한국에서의 고양이 섬은 이곳 제주, 애월의 고내리가 아닐까? 







마지막 숙소의 체크인 시간을 기다리며 고내리를 이리저리 떠돌다가 시간에 맞추어 도착한 마지막 숙소 앨리스의 그림호텔. 여성전용 게스트하우스로 특별한 점이 있다면 매일아침 건강한 조식과, 숙소에 머무는 동안 오일파스텔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재료를 대여해 주고, 마스코트인 고양이가 있다는것!(이 숙소를 선택한 이유 중 가장 큰 몫을 했다.)  숙소에 들어와 짐을 풀고나니, 기분이 이상했다. ' 제주살이가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이번 제주살이에 오면서 나는 뭔가 특별한 일이 생기거나, 두근거리는 일이 일어나거나, 무언가를 깨닫거나 하는 우연적이고 낭만적인 일들을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것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내가 얻은 것은 버리고 비우는 일 이었다. 하루동안 얼만큼 가고, 얼만큼 보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뭐라도 해야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자책을 내려놓고, 더이상 짐이 늘어나지 않도록 절제를 하고, 마음을 비우는 일.(하지만 잘 안됨) 버렸다가도 다시 주워오기 바빠서 결국 비우지도, 채우지도 못한것 같은 기분이지만. 이제 더이상 무언가를 바라기 보다 그냥 남은 일주일을 잘 흘러보냈으면 좋겠다.




오늘의 우당탕탕 제주도

솔트-> 갈비탕집 -> 애월 인디고인디드카페-> 고내리 산책 -> 무인카페 산책 -> 앨리스의 그림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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