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과 친구하기
잠을 통 못 잤다. 금방 익숙해 질 줄 알았는데, 낯선 곳에서 혼자 잠드는 것은 좀처럼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그 이유가 꽤나 우스꽝스럽다. 숙소에 불이날지도 모른다거나, 누군가 침입할지도 모른다거나, 눈을 떴는데 누군가와 눈이 마주친다거나 하는 불안감 때문이다. 안다. 정말 어이 없는 망상인 것을. 하지만 '낯선곳'에 '혼자' 라는 것은 자꾸 그런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밤새 이런 상상으로 이루지 못한 잠을 채우다가 느즈막히 배고픔에 몸을 일으켰다.(늦잠을 잤다는 얘기를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썼다.) 늘 이런식이다. 날씨가 밖으로 나가야 겠다는 생각을 들게했다면, 배고픔은 나의 두 다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나가자, 배고프다.
숙소 바로 옆 2분거리에 있는 올레시장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서 자구리공원 피크닉을 하려다가, 시장의 음식냄새를 맡으니 간단한 요기로 해결될 배고픔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이동하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이번엔 보말성게미역국이다.(매번 이렇게 한국인 스러운 메뉴라니) 바다에서 나는 고둥인 보말은 비린맛이 없어 시원하고 깔끔한 것이 입맛에 딱 맞았다. 혼자 반찬까지 리필하여 야무지게 밥을 먹는 나의 모습이 뭔가 애잔하면서도 웃겼다. 이걸 이렇게 열심히 먹을 일인가. 밥을 다 먹고 나오는데 흑돼지 고로케와 눈이 마주쳤다. 기름에 바로 튀겨낸 고로케는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겉바속촉의 대명사 아닌가! 이것은 포장이 것이 아닌, 그자리에서 먹어야 한다. 진실의 미간을 지푸리며 앉은자리에서 하나를 다 해치우니 행복하다. (이런 단순한 사람... )
직선으로 뚫려 있는 시장의 길을 따라 횡단보도를 건너니 이중섭거리와 이어졌다. 이중섭의 생가와 함께 그의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 산책했던 산책로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거리 같았다. 화가의 이름을 딴 거리답게 제주의 특색을 담은 예술품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줄지어 있어있다. 네 가족이 함께살았다는 1.4평짜리 방 한칸에서 가난과 외로움을 확인하고나니 문득 그가 궁금해져서 미술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여러 작품들 속 눈길을 끌었던 것은 그가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였다. 편지한장을 가득채운 아내에대한 사랑이야기, 일본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얼굴을 맞대며(포즈를 그림으로 그려줬다.) 찍은사진을 보내달라거나, 아이들이 나를 잊지는 않았는지 확인해달라는 이야기를 편지 한장에 몇번이고 신신당부 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면서 씁쓸하고 고달팠다. 헤어져 서로를 그리워 했던 시간들이 온몸으로 읽혀져 눈물이 났다. 영영 못볼것 같은 기분이 현실이 된 기분을 나는 끝내 모르고싶다.
그의 긴긴 외로움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나는 지금 이곳에서 홀로 너무 외로웠다. 가게 직원 말고 이곳에서 말한 사람이라곤 단 한사람도 없었다. 맛있는 것을 먹어도, 좋은곳에 있어도 신나지가 않았다. 고작 4일만에 이렇게 외로울 줄이야... 무려 제주도에 왔는데! 사람 많고 시끄러운 곳을 싫어하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사람이 그리워 외롭다는 말을 하다니. 내가 아니라 다른사람 같은, 혼란스럽고 낯선 기분이다.
우울한 기분을 환기시키기 위해 바다를 찾았다. 이중섭이 산책한길을 따라 도로를 쭉 내려가니, 숨통이 트일것 같은 바다가 나온다. 지난번에 왔던 그 빨간색 옷 입은 아저씨가 누워있던 곳을 차지했다. 신발과 양말을 벗어 맨발인 채로 돌 위에 앉았다. 살갖에 느껴지는 바닷 바람에 기분이 좋다. 11월임에도 따뜻한 햇살, 탁 트인 바다, 파도의ASMR, 시원한 바람에 외로움도, 괴로움도 다 위로받는 기분이 들어 기분이 좀 나아졌다. 이중섭이 왜 서귀포에 살았는지, 그가 어떻게 외로움을 견뎠는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가방에서 챙겨온 책을 꺼내 읽다가 지금의 내 마음을 선명하게 해준 글을 발견해서 눈으로 읽다가, 소리내서 읽다가, 낭독해서 영상에 담았다. 또다시 외로움이 밀려올 때 듣고 싶어서. 이 외로움도 언젠간 익숙해져 낡아질 것이다. 해가 지고있어서 슬슬 움직였다. 숙소로 가기 전에 각종 대회에서 상을 휩쓴 바리스타가 운영한다는 유명한 카페에가서 커피 한잔을 하고, 외로움과 친해져 볼 겸 시장에 들러 딱새우와 광어를 일인분 씩 포장했다. 물론 한라산도 함께 곁들일 것이다.
그래, 이게 제주도 맛 아니겠어?
어색한 것과 친해지기에는 술 만한게 없지. 우리 좀 친해져보자.
오늘의 우당탕탕 제주도
서귀포 올레시장 -> 이중섭거리 -> 이중섭생가와 미술관 -> 자구리공원 -> 유동커피-> 서귀포 올레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