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임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이지만
쓸데없이 낭만적인 버릇이 하나 생겼다. 하루의 첫 시작을매일 아침 숙소 창문으로 보이는 한라산으로 오늘의 날씨를 체크하는 것이다. 한라산이 백록담 머리까지 보이면 맑음, 머리가 보이지 않으면 구름 많음, 보이지 않으면 흐림. 오늘도 맑음이다. 어쩐지, 이번 주는 날씨운이 좋은 것 같다.
분명 어제 소중한 시간을 아끼자고 어쩌고저쩌고 했던 것 같은데... 오늘 제주에 오고 나서 최고로 늦잠을 잤다. 원래 아침 일찍 올레길을 가려고 했는데, 어제 무리를 한 것인지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한참을 꾸물거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침대에서 하루를 보낼 수는 없기에, 지난번 왈종미술관 앞의 정방폭포와 서귀포관광극장에서 공연을 한다기에 가보기로 했다.
시장에서 떡볶이를 먹으려 했지만, 목에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아 청국장집을 갔다.(제주도까지 와서 청국장이라니...) 된장의 쿰쿰한 맛보다 구수하면서 얼큰했던 청국장은 사장님의 추천대로 콩나물과 무채까지 비벼 한 그릇을 다 비워냈다. 집밥을 먹는 것 같아서, 배도 부르지만 마음도 가득 찬 기분이다. 식당 문을 나서 낯익은 시장과 동네의 길을 걸었다. 발이 저절로 움직인다. 좀 익숙해졌다고 지도 없이 길을 찾아가는 내가, 마치 동네 주민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낯선 곳에 적응해가는 나의 모습이 신기하다. 이번 한주 동안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흥청망청 살았던 것 같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와 '에라 모르겠다'의 무한 굴레 속에 오늘도 현실에서 도망 나와 흥청망청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좋은 날씨 탓에 가까운 거리를 두고 빙 돌아 자구리 공원과 소남머리를 거쳐 정방폭포까지 걸어갔다. 입구에서 파는 한라봉 주스 하나를 손에 들고, 바위를 짚으며 도착한 폭포는 장관이었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이곳을 온 적이 있다고 하는데, 정말 놀랍게도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수학여행 때의 기억이라곤 미로 속에 갇혀 헤매는 동안 나와 친구를 두고 떠난 버스에 대한 기억뿐..(다른 반 차를 타고 목적지에서 합류했다.)
이 폭포가 특별한 이유는, 절벽에서 힘차게 떨어지는 물줄기는 한라산에서 시작되어 바다로 가는, 동양에서는 유일한 해안 폭포이기 때문이다. '동양 유일'이라는 수식어는 이 장관을 더 경외감 있고 특별하게 여기게 만들어준다. 폭포를 구경하는 것은 즐거웠다. 아니, 사람 구경이 재미있었다. 연인, 친구, 가족단위로 삼삼오오 폭포 아래 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바위 위에 중심을 잡기 위해 허우적대는 사람들, 그 사람을 바라보는 웃음 가득한 표정, 꺄르륵 웃음소리, 행복한 에너지가 가득해서 혼자임에도 외롭지 않았다. 용기를 내서 앞에 있는 모녀에게 사진을 찍어줄 수 있는지를 물어봤다. (세상에! 내가 이런 부탁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니!) 서로 사이좋게 사진을 찍어주고,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향하는 바다를 보며 가져온 카세트테이프를 들었다.
Don’t stop me, this is the moment Keep me young and free.
음악을 들으면서 바다에서 물멍하는 일은 자유롭고 행복한 기분을 들게 한다. 제주에서 보내는 시간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가만히 앉아 파도가 밀려오고 부서지는 장면을 목격하고 듣는다. 선명했던 시야가 안경에 서린 김처럼 뿌옇게 되면 생각이 멈추고 몽롱해진다. 시끄럽고 복잡했던 생각과 마음들이 가라앉는다. 고요함이 찾아온다. 무거운 것이 가라앉아 고요함의 시간들이 지나면, 맑고 가벼운 것들이 떠오른다. 편안함, 안정, 개운함 같은 것들 말이다. 그렇게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면 마음도, 정신도 맑고 가볍다. 그리고 행복하다. 가성비 최고의 힐링이다.
단점은, 시간이 너무 빠르게 간다는 것. 시계를 보니 벌써 2시간이 지났다.
이제 다시 다음목적지를 향해 움직여보자.
오늘의 우당탕탕 제주도
매일올레시장-> 한중식당-> 자구리공원-> 소남머리-> 정방폭포-> 서귀포관광극장-> 마농치킨(매일올레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