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즈음 사려니숲길에서 노르딕워킹 체험을 할 수있다는 광고를 보고 홀린듯 프로그램을 신청을 했었는데, 오늘이 바로 그 체험 날이다. 사려니숲길을 간다는 사실과 오랜만에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무언가를 한다는 사실이 아침부터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출발지인 캠프는 숙소에서 버스로 1시간 30분 거리인 제주도의 동쪽끝 성산에 위치해 있다. 같은 서귀포시에서도 1시간 30분이라니... 새삼 넓은 제주도 크기에 또 놀란다. 일찍 가서 아침 겸 점심을 먹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서둘러 채비를 하였다. 201번 버스를 타고 82개의 정류장을 지나 성산까지 가는 동안 동네마다의 분위기가 바뀌는 것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위미의 동백나무 꽃, 세화의 귤나무 농장들, 표선부터 신산의 해변까지 눈뜨기 어려울 정도로 눈부셨던 윤슬들, 그리고 성산에 다 왔음을 알려주는 성산일출봉까지. 이런 풍경이라면 1시간 30분 버스여행도 꽤 즐겁지 않은가?
캠프에 처음 도착해서 한 일은 단연 식당 찾기. 캠프 안에는 여러 식당이 있었는데, 그중에 유일하게 문이 열린 곳은 대만, 홍콩식 음식을 파는 중식집이었다. 딴딴맨이라는 국물이 있는 면요리를 주문했는데, 진한 육수의 맛과 시큼하고 매콤한 맛이 어우러지는 것이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다. 적응하기 어려운 특유의 향신료에 밥까지 말아먹고(기승전밥), 시간이 남아 바로 앞 카페에서 커피까지 마시는 여유를 부리다가 출발 시간에 맞춰 대기 라운지로 슬슬 걸어갔다. 팀원들과 가벼운 눈인사와 노르딕워킹의 간단한 설명을 듣고 다 같이 사려니숲길로 이동을 했다.
사려니숲길은 일제감정기에 만들어진 인공숲 이라고한다. 삼나무를 빽빽하게 심어 서로 뒤엉키는 모습을 보고싶었다나? 하지만 삼나무들은 서로 닿는 것을 싫어해서 가지가 뒤엉키지 않고 서로를 피해 가며 자라 서로 닿는 안쪽 가지들은 짧고, 바깥쪽 가지들은 긴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일제감정기때 만들어진 숲길이 관광으로 크게 한몫하고 있다니 어쩐지 아이러니하다. 성산에서 40분가량을 이동해야 해서 차 안에서 심심하지 않게 사려니숲길에 대한 이야기와 자기소개를 했다. 각자의 여행의 이유와 목적을 조심스레 꺼내 들려주었는데, 정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많고 다양했다. 워킹홀리데이를 갔다가 제주에 와서 눌러앉게 되었다는 캠프 PD님, 재대 후 복학하기 전 여행 온 대학생, PD님처럼 워킹홀리데이를 갔다가 코로나 때문에 귀국한 직장인, 제주를 함께 여행하는 사이좋은 모녀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문득. 지금 내가 보내고 있는 시간은 아무에게나 오지 않으며, 언제나 누릴 수 있는 시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든 것이 처음인 이곳에서는 외로움도, 새로운 만남도, 이 시간이 아니면 겪지 못할 소중한 경험이라는 감상에 젖어 코끝이 간질거렸다. 참 귀한 시간이다.
숲길 입구에 도착해서 노르딕워킹 스틱을 잡는 방법과 걷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주신 뒤 함께 출발했다. 노르딕워킹은 스틱인 '폴'을 이용한 걷기 운동인데, 허리와 가슴이 펴져 바른 자세로 걷게 되어 자세교정에 좋고, 그냥 걸을 때 보다 칼로리를 2배 더 소모하게 되어 다이어트에도 좋다고 한다. 실제로 사용해보니 처음 폴을 잡을 때에는 낯설었지만, 걷다 보니 금방 적응하기가 쉽고 그냥 걸을 때 보다 가볍고 편한 것이 신기했다.
숲길에 들어서니 점점 날씨가 좋아졌다. 마스크 때문에 숲길의 냄새를 만끽하기 어려운 것이 너무도 아쉬웠지만, 그래도 좋았다. 눈을 감고 걸을 수 있도록 진행되는 시간도 있었는데, 이 시간이 정말 특별했다. 시각을 제외하고 나니 다른 감각들이 극대화되어 숲길에 더 깊이. 푹. 빠져 걸을 수 있었다. 화산송이 위를 걷는 잘그락잘그락 소리,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가지가 서로 부딪혀 나는 타닥타닥 소리, 까마귀 우는소리(제주에는 까마귀가 정말 많다.) 감은 눈 위로 일렁이는 햇빛과 그림자까지,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는 것은 더 많았다. 그 사실이 내면에 무언가 가득 차는 기분을 들게 만들었다. 중간지점 까지만 걷고 되돌아오는 길에서는 해가 지는 노을빛이 숲을 가득 메웠다. 이제껏 제주에서 본 풍경 중 가장 따뜻한 색이었다.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 순간을 찍기 위해 다들 약속이라도 한듯 카메라를 들었고, PD님은 인생 사진을 남겨주시겠다며 한 명씩 돌아가며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부끄러워하며 포즈를 잡는 팀원들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어쩌면 이 순간이 더 즐겁게 느껴진 것은 혼자가 아닌 이 시간을 함께 기억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캠프로 돌아가는 차 안은 다들 피곤했는지 말수가 적어지다가 적막이 흘렀고 나도 어느새 잠들었다. 눈을 뜨니 캠프에 도착 해 있었다. 저녁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중, 프로그램 메이트였던 지수에게 함께 저녁 먹기를 제안했는데 흔쾌히 좋다고 해주었다. (그녀는 엄청난 기럭지의 소유자였는데, 그녀가 골반위치까지 늘린 폴은 나의 명치까지 왔다. 그리고 웃을때 미소가 참 예뻤다.) 제주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식사 메이트가 생긴 것이 감격스러웠다. 식사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녀도 혼자 제주에 와서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한 것이 오늘이 처음이라고 했다. 외로움에 공감하며 말문이 트여서 서로에 대해 질문을 하고, 어떤 여행을 했는지 얘기하면서 오고 가는 대화들과, 떡볶이와 우유 튀김을 먹으면서 맛있다며 호들갑을 떨 수 있는 것이 너무너무너무 즐거웠다.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몸과 정신이 건강하다고 할까요? 좋은 에너지를 많이 얻는 것 같아요. "
그녀가 했던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좋은 에너지를 많이 얻는다.
오늘 밤은 잠이 잘 올 것 같다.
오늘의 우당탕탕 제주도
플레이스캠프제주/샤오츠/카페도렐-> 사려니숲길-> 플레이스캠프제주/폼포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