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임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이지만
불안과 행복의 사이의 줄타기
서귀포 관광극장을 가기 위해 다시 자구리공원을 거쳐 이중섭거리로 갔다. 서귀포 관광극장은 이중섭 생가 바로 위에 있는데, 거리의 분위기와 참 어울리지 않아 눈에 띈다. 밋밋하면서도 오래 되어 보이는 간판에서부터시간의 깊이가 느껴진다. 이 오래된 건물이 본연의 역할을 할 때의 분위기가 궁금했던 찰나, 토요일인 오늘 공연 소식이 있어서 시간에 맞춰 가는 중인 것이다.
서귀포 관광극장은 1963년에 개관한 서귀포 최초의 극장이다. 개관 이후 시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70년대에 누전사고로 인한 꽤 많은 사람들의 부상 발생 이후, 사용하지 않고 오랜 시간 방치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지붕이 바람에 날아가 천장까지도 뻥 뚫려버렸으니, 어쩌면 이중섭거리가 만들어질 때 새로생겨난 건물들과 함께 재건축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다. 하지만 서귀포시에서는 이 건물을 원형 그대로 문화 활성화 공간으로 활용하였고, 그 때문에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을 수 있던 것이다.
"(구) 서귀포 관광극장은 50년이 넘는 시공간을 넘어 지금도 서귀포 시민들의 문화예술을 담당하는 공간이 되고자 합니다."
문구를 읽고 50년의 시공간을 넘어 눈앞에 있는 이 건물에 괜스레 마음이 뭉클해졌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직 공연 준비가 한창인 로비는 부산스움으로 가득 찼다. 옹기종기 모여 식사를 하기도 하고, 환복을 하고 있는 공연자들과 스태프 사이를 지나 공연장 나무데크 가장 좋아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시멘트가 벗겨져나간 벽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 돌담, 그 벽 위로 가을의 색을 입어가는 담쟁이들(여름에는 녹색의 담쟁이가 벽 한 면을 가득 메운다.)과 바람구멍, 하늘을 지붕 삼은 공연장이 너무 멋있었다. 정말 제주스럽다. 이타미 준이 제주에 수풍석 박물관을 멋지게 만들어냈다면, 이곳은 추억과 시간이 빚어낸 수풍석의 공간 같다. 이중섭거리를 만든다며 이곳을 허물고 새로 짓지 않은 것이 신의 한수이다. 오늘의 공연은 '서귀포 민속보존 예술단'의 민속춤과 소리였다. 해녀옷을 입고 나온 공연자들의 춤과, 소리에 눈과 귀가 즐거웠다. 어릴 때는 이런 민속공연들을 지루하고 고리타분하다고 생각 했었는데 지금은 재미있게 볼 수있다. 나도 모르게 몰입이 되어 공연을 즐기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안다. 이분들 덕에 우리의 것을 잃지 않고 지켜나갈 수 있다는 것을. 어쩌면 이 공간, 서귀포관광극장과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는 계속 관심을 가지고, 가치를 나눌 때 오래 보존할 수 있다. 참 제주스러운 공간에 제주스러운 공연이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정방폭포에 가기 전에 시장에서 미리 예약해둔 치킨을 픽업했다. <마농치킨> 이라는 치킨인데(*마농은 제주도 방언으로 '마늘'이라는 뜻이다.), 수요미식회에 출연 후 높은 인기로 그냥 가서는 구매할 수가 없다. 몇 차례 시도했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로 웨이팅 시간이 길어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먹을 수가 없는 것. 그 치킨이 지금 내 손에 들려있다.(너무 신나!)
갓 튀긴 치킨과 마늘의 향이 애타게 만든다. 배고플 때 맡는 음식 냄새는 죽을 맛이다. 그 음식이 치킨이라면?
숙소로 돌아와 서둘러 맥주 한 캔을 까고 치킨을 입안으로 들이밀었다. 따끈따끈하게 잘 튀겨진 치킨의 속살이 입안 가득, 그 사이와 틈을 시원한 맥주가 감싼다. 맛있냐고요? 네. 정말.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또 생각나는 맛입니다. 아는 맛이 더 무서운 것이다.
처음 제주에 올 때에는, 이번 여행을 통해 뭔가 얻어갈 것이라는 희망과 무언가 찾을 것이라는 조금의 기대도 함께 가지고 왔다. 창작욕구가 마구 떠오를 때 작업할 노트북도 가져왔는데, 마음먹은 것은 다 어디로 가고 놀고, 쉬고, 먹기에만 바쁘다. 하고 싶은걸 마음껏 해서 행복하다가, 행복이 연소해버리고 남은 자리는 또 불안하다. 그럴 필요 없다는 것을 아는데 왜 마음은 편하지 못하는 것인지. 오늘도 눈앞의 선명한 행복과 알 수 없는 불안함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걷는다.
오늘의 우당탕탕 제주도
매일올레시장-> 한중식당-> 자구리공원-> 소남머리-> 정방폭포-> 서귀포관광극장-> 마농치킨 (매일올레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