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거리 찾아 나선 길에서 찾아온
마흔 직장인의 슬프고, 아픈 마음
화창한 5월의 셋째 주 아침 9시!
4월까지만 해도 미세먼지와 황사로 뿌연 나날들이 계속되더니 5월부터는 청명하고, 쾌적한 날씨를 되찾았다. 하늘은 높고, 햇살은 따스하고, 공원의 나무들과 잔디밭에선 생명의 기운들이 꿈틀대며 기지개를 켜는 하루다.
그동안 참 시끄러운 서울이었다. 박 대통령 탄핵 촛불에서부터 5월 9일 19대 대통령 선거까지 진보와 보수의 충돌. 오랜 시간 동안 여론의 첫 뉴스는 언제나 최순실, 박근혜, 문고리 3인방, 블랙리스트, 세월호, 정유라, 삼성 이재용 부회장 등등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참으로 부끄럽고, 얼굴을 들 수 없는 뉴스들의 연속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서울에서 이뤄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그동안 하늘도 부끄러웠나 보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미세먼지, 황사가 거의 매일 서울 하늘을 가득 메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스크를 썼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 사람들은 무표정으로 유명한데, 마스크까지 쓰고 있는 모습을 보니 무섭기까지 했었다.
5월 19대 대통령 선거 이후 거짓말 같이 그렇게 극성을 부리던 황사와 미세먼지가 사라졌다. 5월 청명한 하늘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상쾌한 기분을 느끼게 했고, 햇살은 아낌없이 서울 전역에 따스함을 선물하고 있었다. 신문에서도 이젠 희망의 뉴스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박 대통령, 최순실, 정유라, 문고리 3인방, 이재용 부회장, 세월호 7시간, 적폐 청산이라는 무서운 타이틀을 단 뉴스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희망을 품은 기사, 밝은 미래를 열기 위한 과거의 어둡고, 지저분한 일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하는 긍정적인 내용의 기사들이었다. 사람들의 얼굴에서도 마스크가 사라졌다. 주고받는 말에서 어제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는 내용들이었으며, 사람들의 표정은 지난 2~3년의 어두웠던 모습에서 희망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들의 발걸음도 어제보다 훨씬 활기차게 느껴졌다.
이렇게 느끼는 건 단지 내 기분 때문일까?
2016년 12월 9일부터 시작된 대통령 탄핵 첫 촛불시위부터 어둡고, 길었던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갈등의 터널에서 2017년 5월 9일 19대 대통령 선거를 기점으로 나왔다. 거시적인 정치 변화를 이뤄낸 것이다. 그러나 정치의 혼란으로 잔뜩 긴장하고, 위축되었던 경제에서는 아직도 훈풍이 불지 않고 있다. 한국경제의 큰 축을 담당했던 삼성과 현대, 롯데, SK그룹과 금융권, 공공기관들이 지난 4분기 이후 활발한 경제활동들을 하지 않고서 돌아가는 정치 상황을 여전히 조망하고 있었고, 심지어는 그 정치적 분란에 관여되지 않기 위해 잔뜩 움츠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내가 일하고 있는 컨설팅 시장도 잔뜩 움츠려 있었다. 시장에 나온 프로젝트는 작년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고, 기존에 논의해 왔었던, 그리고 추진하기로 했었던 프로젝트는 취소되거나, 추진 시점이 무기한 연기되었다. 이 여파는 나와 같이 정기적으로 월급을 받지 않고 프로젝트에 투입된 일수(日數, man-day)에 맞춰 성과급을 수령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큰 타격을 입혔다. 나는 한동안 일을 하지 못하고, 쉬고 있었다. 쉬고 있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수입이 전혀 없었음을 의미한다.
사무실 한편에 마련된 전문가 (월급이 아닌 투입된 일수(man-day)에 따라 성과급을 받는 사람) 존(Zone)에는 넘쳐나는 사람들로 자리를 잡기기 힘들어졌다. 경기가 정상적인 때는 오전 10시가 넘어서 출근해도 자리를 잡는 것이 어렵지 않았었는데, 이젠 9시에 출근해도 빈자리를 찾는 동료들이 한두 사람이 아니다. 동료들이 내가 앉은자리를 지나치면서 모두들 한 마디씩 던진다.
“사람들이 엄청 많네요.”
“자리가 없네요.”
“언제 오셨어요? 몇 시쯤 와야 자리를 잡을 수 있죠?”
“요즘 사이트에서 일 안 하나 봐요.”
우리 회사의 전문가 분들이 일하는 패턴을 나눠보면 2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다. 현장에 가서 일하는 ‘프로젝트 중심으로 일하시는 분’과, ‘강의와 코칭을 중심으로 일하시는 분’들이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의 비중이 그동안 6:4 정도 되었기에 전문가 존(Zone)의 자리는 항상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사무실에 들어와도 마음에 드는 곳은 아니었지만 자리를 잡고 앉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 그랬던 이곳이 어느 사이 아침 일찍부터 자리를 잡기 위해 경쟁하는 학교 도서관이나, 지역 구립 도서관을 방불케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출근을 서두르게 하거나, 아예 출근을 포기하게 하고 있다. 평소 상대적으로 일찍 출근했던 나도 자리를 잡는데 애를 먹고 있었다. 그것도 지난 3주 전부터. 나는 생각해 보았다.
‘내가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기간이 얼마나 되었지?’
‘가장 최근에 일을 했던 것이 언제였지?’
지난번 프로젝트를 3월 말에 최종 산출물을 보내고, 4월 첫 주에 최종 보고 브리핑을 했으니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지 어느 사이 한 달이 넘었다. 일을 하지 못하는 날이 하루하루 늘어난다는 것은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수입이 없는 하루하루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걱정이 밀려왔다. 매월 고정적으로 나가는 금액만 하더라도 적은 금액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과금’, ‘관리비’, ‘카드대금’, ‘보험료’, ‘대출금’, ‘아들 교육비’, ‘생활비’, 등등
다행인 것은 전문가 그룹으로 나올 때 선배들이 어느 정도 여유를 항상 둬야 한다는 조언으로 일정 금액을 통장에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일을 하지 못한 날이 늘어나 고정 지출을 감당해내지 못할 정도가 되어 버렸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나의 발걸음이 건너편의 사업부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사업부서는 새로운 고객사를 발굴하거나, 기존 고객사 관리를 하면서 사업을 발굴하고, 수주(受注)하는 역할을 하는 부서다. 한마디로 말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우리 전문가들에게 있어 절대적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현재 컨설팅 시장의 분위기를 가장 잘 알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그들을 찾아가 대략 언제쯤 일을 다시 할 수 있을지, 어떤 일을 하게 될지, 그리고 앞으로 있을 일을 위해 내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알아보기 위해 찾아간 것이다. 사업 부서를 이틀에 한번 꼴로 가 보고 있다. 오늘로 벌써 15번째쯤 가고 있는 것이다. 손에는 노란 커피믹스 2개를 들고, 친한 사업부서의 팀장과 본부장을 찾았다. 그리고 나는 지난번과 다름없는 인사말을 건넸다.
“커피 한잔 할까요?”
사업부서 직장동료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와 함께 휴게실로 향한다. 가는 길에 지난번처럼 넌지시 조심스럽게 한마디 건넸다.
“위원님(회사에서 부르는 공식적인 호칭), 아직도 논의되는 것도 없나요?”
사업부서 직장동료가 못 들었는지 대답이 없었다. 다시 한번 말을 건넸다.
“위원님, 일거리 없나요?”
사업부서의 동료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걱정이에요. 위원님”
그 말을 의미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동료에게 한마디 건넸다.
나 “왜요?”
동료 “지난달도 그렇지만, 이번 달에도 수주가 거의 없을 것 같아요”
동료의 말에 나는 이번 달 생활이 걱정되었다. 하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동료가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짓고, 사업부서 직장동료의 어깨를 두드리며 한마디 건넸다. 그리고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잘 될 거예요, 하하하”
나는 오늘도 수입이 없다. 그리고 내일도 없고,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수입이 없다. 언제쯤 다시 나의 통장에 돈이 들어오게 될까?, 수입을 기약할 수 없는 지금의 나의 현실, 그리고 내가 챙겨야 하는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아들이 눈에 밟힌다.
‘일을 해야 하는데, 일거리 어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