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애상 "인사발령"

1월 정기인사발령을 기다리는 동안 찾아온
마흔 직장인의 슬프고, 아픈 마음



2017년 1월

매년 1월은 정기인사발령 결과가 나오는 월이다. 올해도 항상 그렇듯이 오후 5시가 지나서야 결과가 공지될 것이다. 정기인사발령 결과가 발표되는 시점엔 언제나 회사의 분위기는 숙연하다. 부서나, 개인들이나 모두가 말을 아끼기 때문이다.


직장인에게 있어 매년 이뤄지는 정기인사발령 결과는 정말 중요하다. 지난 1년의 성과와 노력에 대해 평가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에 대해 회사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척도이기 때문이다. 작년(2016년)에 모든 동료들이 고군분투한 결과 어려운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조금 성장했다.



2016년 한국 경제!

정말 위축되어 있었다. 정유라의 부정입학으로 시작된 사건은 한국 대기업의 부정청탁 사건으로 전개되었고, 대기업의 부정청탁 사건이 최순실의 국정 논란으로 이어지더니, 결국엔 대통령 탄핵을 위한 대국민 촛불시위로까지 이어졌다. 한마디로 교육문제가 경제적 문제로, 경제적 문제가 정치적 문제로, 다시 정치적 문제가 경제적 문제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회, 정치, 경제계 거목들이 국회로 불러 갔고, 신문과 언론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국회에서 다뤄진 청문회 내용과 각 언론사마다 조사한 자료들을 기반으로 뉴스를 쏟아 내었다. 진보와 보수가 대립하고, 세대와 세대가 대립하고, 지역과 지역이 대립하는 등 한국사회는 큰 혼란에 빠졌다. 경제는 사회, 정치의 혼란으로 불확실성이 커졌고, 불확실성은 경제를 더욱 위축시켰다. 시장의 불확실성으로 기업들의 투자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었다. 향후 한국 정치가 어떻게 될지, 그리고 그들의 수장들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무리하게 투자하는 어리석은 기업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회사는 성장을 했다. 물론 매년 초에 수립했던 목표에는 많이 부족하지만 말이다. 우리의 동료들이 기업과 기관들을 방문해 사업 니즈를 발굴해 냈고, 그 발굴한 사업 니즈에 맞춰 적극적인 제안과 설득으로 수주하였고, 수주한 사업들을 맡아 수행하는 조직에서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본인의 위치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결과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오후 3시쯤 내가 소속되어 있는 사업부서로 발걸음을 옮겼다. 팀장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회사의 휴게실에 마련되어 있는 테이블에 앉아 팀장님과 커피를 한잔 마셨다. 휴게실은 많은 동료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 휴게실 안 동료들의 표정이 극과 극이다. 오른쪽 테이블의 한 무리는 얼굴에 화색이 가득하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연신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반면, 우리 앞쪽 테이블의 한 무리는 얼굴에 초조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나누는 이야기가 들렸다. 이번에도 승진하지 못할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손으로 테이블에 놓인 커피 잔을 만지작거렸다. 맞은편에 앉은 팀장님도 커피 잔을 만지고 계셨다. 나는 커피 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커피 향이 먼저 코를 자극했다. 평상시 느끼던 그 기분 좋은 향이 아니었다. 한 모금 마셨다. 입안이 뜨거웠다. 평상시 마시는 양보다 많은 양의 커피를 입안에 넣어 버렸다. 급히 손을 입으로 가져가 막았다. 그리고 팀장님을 보았다. 팀장님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하다.


내가 속해 있는 본부의 사업팀도 1년 전에 비해 성장을 했다. 물론 목표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지만 말이다. 사회, 정치적 이유 때문에 잔뜩 얼어붙은 경제적 상황과 꺼져가는 꽃불처럼 사업 니즈가 축소되는 컨설팅 시장에서 정말 열과 성을 다해 발로 뛰고, 설득하고, 부탁해 가면서 이룬 성과였다. 지난 1년의 노력을 단순히 숫자로 평가받는다는 사실이 조금 안타깝기도 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사업부서의 팀장님과 팀원들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지 말이다. 그 노력들을 이 두 눈으로 직접 보았으니 말이다.
팀장님이 커피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한마디 하셨다.


“팀원들이 걱정이다. 다들 열심히 했는데.”


처음 꺼내신 말이 팀원들에 대한 걱정이었다. 본인보다는 팀원들을 먼저 생각하신 것이다. 팀장님이 말을 이었다.


“팀원들이 그동안 열심히 하고도, 다른 부서처럼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는데, 올해도 결과가 그렇게 좋지 못할 것 같다. 벌써 몇 년째인지 모르겠다.”


팀장님의 말에 나는 침묵했다.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한 잔의 커피를 비우는 데 꽤 긴 시간이 흘렸다. 그리고 팀장님과 나는 조용히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나는 사실 팀장님께 궁금한 것이 있어서 커피 한잔하자고 했었다. 작년에 승진대상자에서 누락되었기 때문에 올해에는 승진하게 될 것 같은지 물어보고 싶었다. 물론 최종 결정은 사장님이 하시는 것이지만, 분위기라도 파악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 다니는 이 회사에 2006년 9월에 들어왔다. 올해로 꼭 만 10년이 되는 해이다. 33살의 나이에서 43살이 된 시간이니 참으로 길고 긴 시간이었다. 10년 동안 다른 동료들처럼 나도 열심히 일했다. 누구보다 먼저 회사에 출근해서 하루를 준비했고, 누구보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고, 누구보다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었다. 그러다 보니 퇴근 시간도, 주말에 나와 일하는 시간들도 참으로 많았다. 우리의 일은 생각을 얼마나 많이 하고, 얼마나 깊이 있게 하고, 얼마나 충분히 고민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물이 만들어진다. 그렇기에 생각의 시간을 얼마나 투자했는지가 중요하다. 나는 그 생각의 시간을 남들보다 훨씬 많이 해왔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렇다고 절대적인 업무량이 적었던 것도 아니었다. 10년의 기록들이 회사 전산 상에 기록되어 있다. 나는 얼마 전에 10년의 기록을 살펴보았다. 내가 수주하고, 진행한 프로젝트 수가 생각보다 많았다. 나는 지난 몇 년간 나보다 늦게 들어온 동료가 팀장이 되는 것을 봐야 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능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능력’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을 직장인들은 ‘정치’라고 말한다. 난 참으로 그 ‘정치’가 부족한 사람이었고, 그것을 아주 경시했던 사람이었다. 오직 나의 관심은 열정을 다해 좋은 품질의‘보고서’에 있었다. 그 과정에서 동료들과 충돌도 많이 했다. 심지어는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윗사람과의 충돌도 불사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작년 승진 누락과 함께 자발적으로 사업 부서를 나온 것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는‘정치’에 거부감이 매우 심했고, 혐오해 왔었다. ‘능력’으로 고객사로부터 그리고 회사로부터 인정받고 싶었다. 오늘 커피를 한잔 나눈 팀장님은 내가 사업부서에서 전문가 그룹으로 전향하는데 용기를 주셨고, 지금의 이 길을 열어 준 분이셨다. 그리고 지난 1년 6개월 동안 이 곳에서 자리를 잡는데 많은 지원과 도움을 아끼지 않으셨던 분이다.


나는 ‘능력’으로 인정받겠다고 전향해 나왔기에 맡은 프로젝트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수행했다.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나의 전문성에 대해 걱정했던 사업부서의 우려를 지워갔다. 그렇게 맡은 일들을 잘 마무리 지으면서 사업부서로부터 신뢰를 쌓아 갔다. 정말 나를 기쁘게 한 것은 나와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고객사들로부터 들은 감사의 말들이었다.


‘고맙다’

‘감사하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희망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시간이 흐르면 그 시간에 맞춰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에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그렇지 못할 경우 찾아오는 것은 바로 자괴감과 상실감이다. 자괴감과 상실감은 자존감에 상처를 입힌다. 특히, 입사 동료와의 거리가 멀어지거나, 아랫사람을 윗사람으로 모셔야 할 때 찾아오는 자괴감과 상실감은 생각보다 크다. 그리고 그로 인한 자존감의 상처는 잘 치유되지 않는다.


작년 꼭 이맘때, 인사발령이 있었다.
나보다 경력도, 입사도 늦은 사업부서의 동료는 승진을 했었다. 나보다 경력도, 입사도 늦은 동료가 팀장이라는 보직을 받았다. 나의 이름은 언제나처럼 그곳에 없었다. 경력도, 입사도 늦은 동료가 팀장이 되는 모습을 세 번이나 봤음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나도 참 대단하다. 아무튼 그때마다 내게 보냈던 후배들의 눈빛, 동료들의 위로는 오히려 나를 더 슬프게 하고, 아프게 했다. 하지만 정작 나를 더 슬프게 하고, 아프게 했던 것은 나를 믿고, 삶의 길을 같이 걷는 아내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다.



‘삶에 대한 나의 태도’
‘삶을 살아가는 나의 방식’


나는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내는 내게 힘을 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찾아온 슬픔과 아픔을 견딜 수 있었다.

꼭 1년이 지난 2017년 오늘!

인사발령 내용이 오후 5시에 공고된다.


‘올해도 상실감과 자괴감이 나를 누르지나 않을지’

‘자존감에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은 아닐지’

‘올해도 아내의 기대를 저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지’


그 결과를 기다리는 내 심장이 쿵쾅, 쿵쾅 요동친다.



승진이란 계단같은 것.PNG 승진이란 계단 같은 것! 글. 청명(Jin Hyeon 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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