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라디오를 듣다 찾아온
마흔 직장인의 슬프고, 아픈 마음
아침 8시 10분.
어린 아들의 기분 좋은 인사를 뒤로 하고,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왔다. 차가 주차되어 있는 지하주차장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내려가는 버턴을 눌렀다. 12층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움직였다. 11층, 10층에서 잠시 섰다.
‘사람들이 타 나 보다’
9층에서 또 멈춘다. 8층 드디어 도착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생각한 대로 이웃들이 타고 있었다. 30대 남자, 50대 남자와 여자 모두 3명의 이웃이었다. 평소에 얼굴을 본 것은 아니지만 이웃이 주는 친근한 느낌에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안녕하세요.”
엘리베이터는 이후 1층까지 멈추지 않고 내려갔다. 30대 남자 1명이 내린다. 내가 먼저 인사말을 기분 좋게 건넸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다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지하주차장으로 곧장 내려갔다. 50대 남자와 여자는 부부 사이였다. 내리면서 인사를 기분 좋게 건넸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네, 좋은 하루 보내세요”
1층에서 내린 이웃에게는 인사말이 돌아오지 않았었지만, 함께 내리는 두 분에게서 기분 좋은 인사말이 돌아왔다. 나는 이웃들의 반가운 인사에 기분이 좋아졌다. 자동차 열쇠의 열림 버턴을 눌렀다. 오래된 하얀색 NF 소나타가 위치를 자신의 위치를 알려준다. 소나타에 올라 시동을 켰다. 엔진 소리도 유난히 힘이 넘치는 것 같았다. 지하라 맞춰 놓은 라디오에서 ‘찌~이’ 잡음이 들렸다. 솔 톤으로 기분 좋은 하루를 들어주는 황 족장(황정민 아나운서)이 진행하는 FM 대행진이 한 참 진행 중이었다. ‘찌~이’라는 잡음에 평소 같으면 짜증이 나서, 라디오를 꺼버렸을 텐데 오늘은 그 잡음 소리마저도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운전석 시트 끝까지 엉덩이를 붙이고, 안전벨트 매고서 출발했다. 아파트를 나갈 때 오늘도 변함없이 경비아저씨가 거수경례를 하신다. 나도 운전대를 잡았지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평소보다 더 공손하게.
출근시간엔 언제나처럼 공항대로를 이용한다. 올림픽 대로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는 교통 체증 때문이다. 언제 한번 올림픽 대로로 출근했다가 낭패를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출근 시간만 더 걸린 것이 아니라, 중요한 고객사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약속시간을 지킨다는 것은 신뢰 형성에 아주 기본적인 것이다. 그 이후 두 번 다시는 출근길로 올림픽 대로를 선택하지 않는다.
집에서 회사(여의도 공원로)까지 거리는 25km 남짓이다. 신호등은 집을 나와 강서구청 사거리 진입을 위해 한 번, 사거리를 벗어나면 디지털 대학교 앞에서 한 번, 등촌역까지 가는 길에 두 번, 등촌역에서 염창역까지 가는 길에 세 번, 대략 염창역까지 총 일곱 번의 신호등을 경험하게 된다. 오늘은 유난히 공항대로에 차가 많았다. 게다가 나는 그 모든 신호등에 다 걸렸다. 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어린 아들의 배웅인사, 이웃들과 주고받았던 반가운 인사, 그리고 상쾌하게 한주를 시작해 보자는 나의 다짐에 평소에는 불쾌하게 여겨졌을 라디오 잡음, 교통정체, 신호대기까지 나를 관대하게 만들었다. 오늘 9시에 사업부서 팀장과 프로젝트 매니저, 프로젝트를 수행할 구성원 간 회의가 잡혀 있었다. 회의에 늦을 것 같았지만 조급하지 않았다. 왠지 약속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은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나도 약속시간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에서 시간을 지킨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예의이며,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에티켓이라고 생각해 왔고, 사람을 기다리게 하지 않겠다는 것을 삶의 철칙으로 삼아 왔다. 17년 직장생활 동안 약속시간을 어긴 것이래야 고작 서너 번에 불과할 정도이다. 그 서너 번 중 한 번이 올해 올림픽 대로를 이용하면서 어긴 것이니 내가 얼마나 약속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랬던 내가 오늘 교통체증과 모든 신호대기에도 불구하고, 약속한 미팅 시간이 다가오도 조급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매우 놀라웠다.
게다가 옆 차선의 차가 무리하게 깜빡이도 켜지 않고, 내 차 앞으로 급하게 끼어들었지만 나는 그것도 괜찮았다. 염창역까지 오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미팅 시간이 20분 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다시 염창역의 건널목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어 나는 멈춰 서야 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 발생하는데도 나는 기분이 좋았다.
나는 로이 킴의 “봄봄봄”을 12월 한 겨울에 흥얼거리고 있었다.
“다시 봄 봄 봄 봄이 왔네요
그대 없었던 내 가슴 시렸던 겨울을 지나
또 벚꽃 잎이 피어나듯이
다시 이 벤치에 앉아 추억을 그려 보네요
사랑하다 보면 무뎌질 때도 있지만
그 시간마저 사랑이란 걸 이제 알았소”
푸른 하늘, 따스한 햇살, 여의도 벚꽃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좋은 기분에 찬물을 끼 얻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모든 직장인에게 충격적인 뉴스였다. 라디오 뉴스의 내용을 대략 요약하자면 이랬다.
‘D사’ 3,000명을 대상으로 명예퇴직을 신청받고 있다, 명예퇴직 신청 대상에 신입직원들도 포함되어 있다. 임원도 현 수준에서 30%까지 감축한다는 것이었다.
'떠날 사람?, 남을 사람?, 이런 경제상황에서?'
뉴스에 기분 좋게 시작했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뉴스의 여파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누군가의 아빠, 엄마’
‘누군가의 남편, 아내’
‘누군가의 아들, 딸’
‘그 가족들은 어떻게 되는 것이지?’
나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계속 물고 이어졌다. 그리고 남의 집 이야기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정년퇴임은 몇 살이지?’
‘60세 더 되나?’
‘우리 회사에서 50대 전문가 분들은 몇 분이나 계시지?’
‘다섯 아니 여섯?’
‘그분들 프로젝트 투입은 잘 되시고 계시던가?’
‘내 나이 41살!’
‘내가 50세까지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때 아들 나이는 몇 살이지?’
순간 조금 전 배웅인사를 해 주던 어린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이제 겨우 제대로 걷기 시작한 26개월째 들어선 어린 아들.
이 어린 아들이 성년이 되는 그 날까지 ‘해주고 싶은 것들’, ‘같이 하고 싶은 것들’, ‘같이 가고 싶은 곳들’이 너무 많고, 어린 아들이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한 가정의 가장(家長)으로써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나의 생각들은 걱정으로 이어졌다.
‘50대에 지금 이 일을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하지?’
‘더 일찍 의도치 않게 이 일을 하지 못하게 되거나, 일을 하지 못할 상황에 놓이면 되면 어떡하지?’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미래의 불확실성들이라는 바퀴, 이제 겨우 26개월째 접어든 어린 아들이라는 바퀴, 내 나이 41살이라는 바퀴가 맞물러 걱정은 두려움이 되었다.
‘아버지로서 역할을 해주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순간 운전대를 잡고 있던 나의 두 손이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오늘의 자리를 걱정해야 하는 나이!
내일의 자리를 걱정해야 하는 나이!
모레의 자리를 걱정해야 하는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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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자신의 자리를 걱정해야 하는 나이!
지리 보전이 “꿈”이 되는 나이 마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