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잔고 확인하다 찾아온
마흔 직장인의 슬프고, 아픈 마음
4월 5일 17시 정각!
네이버 검색창에 주거래 은행을 입력했다. 그리고 네이버 검색창에 나타난 주거래 은행의 URL을 클릭해서 은행 사이트에 들어갔다. 공인인증서가 들어있는 USB를 준비하고, 왼쪽 상단에 위치한 ‘로그인’ 버턴을 눌렀다. 그러면 로그인 방법을 선택하는 창이 뜬다. ‘공인인증 로그인’을 할 것인지, 아니면 ‘아이디 로그인’을 선택할 것인지, 언제나처럼 나는 ‘공인인증 로그인’ 방법을 선택해서 들어간다. 40대 인터넷에 아주 익숙한 나이지만, 나는 전자거래에 대한 거부감이 아주 큰 편이었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한 송금 등의 금융거래를 다른 사람들에 비해 아주 늦게 시작한 편이다. 7년 전까지 그러니까 2010년 전까지 50만 원을 넘어가는 금액을 송금해야 할 때면 항상 은행 창구를 찾아갔다. 그랬던 나도 어느 사이 인터넷을 통한 금융거래에 많이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해킹에 대한 불안은 여전해서 은행 사이트에 로그인을 해야 하거나, 송금 등의 금융거래를 해야 할 때면 개인적으로 조금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공인인증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모바일 뱅크?’
모 은행의 브랜드 네이밍 체계 개선 컨설팅을 할 때 애플리케이션을 핸드폰에 깔았으니까 이제 겨우 6개월 정도 되었다. 그것도 은행들의 온라인 애플리케이션 및 금융상품들의 종류와 네이밍을 파악하기 위해 깔았던 것이지 금융거래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바로 이런 사람이다.
‘돈(Money)에 있어서는 팔로워(Follower)이자, 아주 보수적인 성향의 사람’
‘공인인증 로그인’을 선택하면 팝업창이 뜬다. 노트북에 이동식 저장매체를 연결해서 공인인증서 비밀 번호를 입력한 후 ‘ENTER Key'를 누르면 내 금융정보 화면으로 이동한다.
지난 한 달간 정말 열심히 일했다. 한 달 30일을 기준으로 주말에 작업 한 날을 포함해 일한 날을 계산해 보니 총 26일을 일했다. 그것도 오전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12시간을 사무실에서 거의 매일 일했다. 회사에서 일한 시간만 따지면 산술적으로 312시간이나 된다. 2017년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2/4분기 기준 평균 근로 일수가 20.6일이고, 월평균 근로 시간이 173.3시간이라고 하니, 나는 평균보다 5.4일, 시간으로는 138.7시간을 더 일한 것이다. 이것도 사무실에서 일한 시간만 가지고 계산한 것이니 실제로는 그 차이가 훨씬 더 크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경영컨설팅이다. 이 일의 특성상 눈을 뜨고 있는 시간 동안에는 프로젝트에 대해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가설을 세우고, 가설을 검증하고, 문제를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단순한 문제 해결이 아니라, 고객사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문제 해결 말이다. 그렇다 보니 때로는 하루 24시간이 모자를 정도이다. 특히 사업기간이 짧은 경우에는 더더욱 시간이 부족하다. 1분, 1초를 아껴야 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샤워를 할 때도, 화장실에서 일을 볼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일에 대한 생각으로 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고 항상 월평균 26일 이상을 일하고, 월평균 312시간 이상 일하는 것은 아니다. 여유가 있을 때는 정말 여유가 많다. 그때는 시간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어쨌든 평균보다는 훨씬 더 일을 많이 하는 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말이다.
지난달엔 잠깐의 여유도 없었다.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한 달이었다. 가족과 제대로 된 주말 한번 보내지 못했고, 도란도란 식탁에 앉아서 식사 한번 하지 못했다.
“아빠! 언제 나랑 놀 거야?”
아들의 요청도 들어주지 못했다.
아들 “아빠, 내일은 일찍 와?”
나 “내일은 일찍 갈게!”
아들과의 약속도 지키지 못하면서 보낸 한 달이었다.
주거래 은행의 인터넷 화면은 개인 금융 화면으로 전환되어 있었다. 나의 금융 화면 맨 첫 화면의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은행 순자산 –1xx,xxx,xxx원”
그렇다 나의 순자산은 마이너스다.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고, 삶을 꾸려가야 하는 대부분의 대한민국 가정들처럼 나도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아들의 따스한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아파트를 구매하면서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았다. 그로 인해 나의 순자산은 플러스에서 마이너스로 바뀌었고, 내 삶은 은행에 꼬박꼬박 이자와 원금을 갚아야 하는 채무자의 삶이 되어 버렸다.
마우스를 움직여 화면 아래로 내려가 보았다. 자유입출금 통장의 잔고를 보았다. 어깨에 힘이 빠진다. 눈의 초점이 흐려진다. 머릿속이 멍해진다. 순간 생각했다.
‘안 들어왔나?’
다시 조회 버턴을 누르고, 최근 일주일 거래 내역을 선택해 입금 여부를 확인해 보았다. 한 달의 보상이 입출금 내역에서 가장 위에 위치해 있었다. 입금된 것이다. 지난 한 달의 보상이 입금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아래로 쭉 이어지는 지출 내역들.
‘카드사 2곳’, ‘통신사’, ‘보험사(자동차 포함) 4곳’, ‘전기’, ‘지역난방’, ‘관리비’, ‘유치원’, ‘학습지’, 기타 등등 그리고 마지막으로‘주거래 은행’
힘들었던 지난 한 달간의 나의 노고에 대한 보상이 들어오자마자 통장은 풍비박산이 나 버린 것이다.
‘가족과 함께 할 시간까지도 투자했던 26일 312시간!’
‘나는!, 누구를 위해 일을 했던 것인가?’
‘나는!, 앞으로도 얼마나 더, 무엇을 더 포기하면서까지 일해야지만 그 누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거의 20년 동안 누구보다도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일을 해왔다. 부모님께 조그마한 의존도 하지 않았다. 아니할 수가 없었다. 부모님은 나를 포함해 다섯 명의 자녀를 입히고, 먹이고, 교육시키는 것에도 힘겨워하신 시골 분이시기 때문이었다. 나는 먹고 싶은 것을 먹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으면서 열심히 살았다. 평일 저녁 가족과 온순 도순 식탁에 앉아서 식사하는 것도 포기하고, 주말에도 나와 열심히 살아온 숨가픈 20여 년의 세월이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의 순자산은 마이너스 1xx,xxx,xxx원.
‘나는 마이너스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