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하며 찾아온
마흔 자아(自我)의 슬프고, 아픈 마음
2014년 12월 31일 23시 30분!
집안이 조용했다. 어린 아들과 아내는 하얀 침대 위에서 자고 있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자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평화로워 보였다. 아들은 두 달 전 10월 15일에 태어났다. 오늘로 엄마의 배속에서 우리의 곁으로 온 지 71일이 되었다. 내 나이 39살에 맞이한 아이. 아들을 처음 가졌다는 소식을 아내에게 처음 들었을 때가 3월이었다. 아내가 아직 그것(여자들이 한 달에 한번 경험하는 생물학적인 특별한 그것)을 아직 안 하고 있다며, 걱정을 했었다. 평소에도 아내의 그날은 조금 불규칙한 편이었기에 나는 아내의 말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더 지났을 때, 아내가 의심스러웠는지 임신테스트기를 구매해 왔다. 아내가 구매한 테스트기를 나에게 보여주면서 이렇게 이야기했었다.
“오빠, 아무래도 확인 한번 해봐야 할 것 같아, 기분이 이상해”
아내의 말에 나는 “그래?”라고 짧게 말했다. 사실 나는 맘속으로 크게 기대했었다. 내 나이 39살, 아내의 나이 36살이었기에 이왕이면 빨리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기도 했다. ‘남자 아이든, 여자 아이든 상관없이 딱 하나만 낳아서 잘 키우자!’
나는 늘 그렇게 마음속으로 다짐해 왔었다. 아내가 임신테스트기를 들고 화장실에 들어 간지 10분이 지났다. 화장실에선 아직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순간 나는 조금 실망스러운 생각이 떠올랐었다.
‘아닌가?’
다시 5분의 시간이 흘렀다. 화장실 문이 열렸다. 아내의 손에 임신테스트기가 들려 있었고, 아내는 그 테스트기를 뚫어져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내의 손에 들린 임신 테스트기에 선명하게 두 줄이 그어져 있었다. 그 두 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내가 화장실에 있는 동안 핸드폰으로 검색해보았기에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나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밀려왔다. 나는 아내를 꼭 안았다. 그리고 나는 아내에게 이 말을 반복했었다.
“고마워, 사랑해”
임신 결과를 확인한 후 아내와 함께 산부인과를 찾았고, 의사로부터 임신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우리는 10월에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면서, 조심스럽게, 숭고하게, 그리고 경건하게 7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예정일은 10월 30일이었다. 10월 30일은 아내의 생일날이기도 했기에, 그 특별함은 더했다. 아내는 아이를 가진 이후에도 계속 일을 했다. 아내는 계속 일을 하고 싶어 했고, 그게 아이에게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10월 15일 출근했던 아내에게서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오빠, 하혈이 조금 있어”
아내의 말에 나는 크게 걱정했다. 아내의 회사에서 산부인과까지는 30km 정도 되는 먼 거리였기 때문이었다. 당황하는 아내를 조금이라도 안심시키기 위해 나는 숨 호흡을 가다듬고 말했다.
“택시를 타서 기사님께 말씀드려, 기사님께서 최대한 안전하고, 빠르게 데려다 줄 거야”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말하려고 노력했다. 아내가 산부인과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나는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해 통화를 했다. 병원에 도착한 것을 확인하고, 핸드폰을 끊었다.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다. 전화를 끊은 지 30분 정도 지났을 때쯤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내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오빠, 병원에서 오늘 출산하재”
나는 아내의 말에 바로 팀장님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팀장님께 상황을 말씀드리고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아내가 병원에 입원한 지 5시간쯤 지나서 아내와 나는 예정일보다 보름 빨리 아들과의 세상에서 가장 멋진 첫 만남을 가졌다.
지금 침대에는 그 두 사람이 자고 있었다. 30분쯤 두 사람을 흐뭇하게 보고 있을 때 시곗바늘이 자정을 가리켰다.
2015년 을미년!
새해를 맞이한 것이다. 새해를 평화롭게 자고 있는 아내와 아들을 보면서 말이다. 이렇게 새해를 맞이하는 기분이 정말 묘했다. 1975년에 태어나 2012년 4월까지 나는 아버지의 아들로 살아왔었다. 그리고 2012년 5월부터 아내의 남편으로 살았고, 2014년 10월에 나는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리고 아들의 아버지로서 첫 새해를 맞이한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내가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가 늘어난 것이었다. 책임감이 더 커져야 하고, 더 큰 마음가짐을 가지고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앞으로 어린 아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앞으로 어린 아들에게 무엇을 해줘야 하는가?’
‘앞으로 어린 아들에게 어떤 부모여야 하는가?’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태어난 지 오늘로 72일이 된 갓난 아들이 커가는 과정을 상상하며 행복한 미래를 설계하게 했다.
‘20살이 된 아들의 모습’
‘20살 아들과 나란히 앉아 술 한잔 나누는 모습’
불현듯 아들과 함께 술 한잔 나누는 내 모습에 놀랐다. 새하얀 머리카락, 주름으로 가득한 얼굴 바로 노인의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들이 20살이면, 나는 58살!’
오늘 내가 ‘마흔’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마흔!’
무언가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느낌의 단어였다. 지금까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무거움이었다. 나는 그동안 나를 이끌어 왔었고, 지탱해 왔던 인생 단어들을 나열해 봤다.
‘도전’, ‘열정’, ‘희망’, ‘꿈’, ‘미래’, ‘젊음’, ‘용기’
어느 것 하나와도 ‘마흔’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문득 내가 ‘중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년!’
‘마흔’=‘중년’
순간 평화롭게 자고 있는 아내와 어린 아들에게 눈길이 갔다.
조금 전까지 느껴졌던 ‘평온’, ‘행복’, ‘다짐’으로 얼굴에 가득했던 ‘미소’가 희미해져 가고, ‘근심’과 ‘걱정’이라는 감정이 조금씩 커져가고 있었다.
2015년 새해 내 나이 ‘마흔’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뿐이었는데...
마흔에 갓 아빠가 된 나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다.
마흔의 나는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삶의 철학과 튼실한 삶의 토대를 만들어 놓은 '불혹(不惑)'인가? 아니면 여전히 삶의 철학도 삶의 토대도 만들어 놓지 못한 '부록(附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