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自我)의 애상 "찢어진 구두, 구멍 난 양말!"

신고 있던 것들로부터 찾아온
마흔 자아(自我)의 슬프고, 아픈 마음




2017년 4월 10일!

서울의 하늘은 흐렸고, 비가 내렸다. 점심시간 우산을 들고, 밥을 먹으러 갔다. 비가 내리고 있어서인지 그동안 평년보다 높았던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졌다. 가벼운 조끼를 입지 않아서 그런지 싸늘하게 느껴졌다. 얼큰하고, 따뜻한 육개장이 생각났다. 회사에서 나와 파 육개장을 파는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회사에서 직선거리 100미터가 되지 않는 곳이지만, 건널목을 2개 건너야 한다. 첫 번째 건널목을 건넜다. 그리고 잠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발이 차갑게 느껴졌다. 발을 내려다봤다. 신고 있던 구두의 발등 부분이 터져 있었다. 부분적으로 신발의 실밥이 끊어져 있었다.


신고 있는 구두는 파주 S아울렛에서 5년 전에 샀다. 가격은 대략 7만원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5년을 나와 함께한 녀석이다. 거의 매일 하루에 10시간씩 나의 발을 보호해 준 참 고마운 녀석. 주말을 제외하곤 거의 매일 이 녀석을 신고 다녔다. 참 긴 시간을 이 녀석과 함께했다. 이 녀석을 구입해서 신고 다니기 전의 신발도 거의 8년 가까이 신었었다. 웃음이 나왔다. 나 같은 사람이 많으면 신발가게가 다 문을 닫고 말겠다고 생각하니 터져 나오는 웃음이었다.

5년간 나의 발을 보호해 준 이 녀석과의 만남은 아주 우연이었다.



5년 전!


나와 아내는 결혼을 며칠 앞두고, 봄옷을 보러 파주의 S아울렛에 오전 일찍 갔다. 지금의 아내는 화사한 원피스를 사고 싶어 했다. 1층에서 시작된 원피스 투어는 오후 2시까지 계속되었다. 원피스를 파는 매장이라는 매장은 다 들어가 본 것 같다. 모든 매장에서 원피스를 눈으로 보고, 입어보기도 했다. 마음에 드는 것은 가격이 너무 비싸 엄두가 나지 않았고, 싼 것은 아예 나의 마음에도 들지 않았다. 그러다 우리는 2가지 옷을 최종 후보로 결정했다. 하나는 비싸지만 마음에 드는 것, 다른 하나는 가격 대비 괜찮아 보이는 것이었다. 고민의 시간이 필요로 했다. 마침 배도 고팠다. 우리는 2시가 될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쇼핑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S아울렛에 위치한 3층 식당으로 올라갔다. 파스타를 주문하고 기다리면서 우린 어떤 것이 좋을지 의견을 주고받았다. 나는 조금 무리해서라도 아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것을 사주고 싶었다. 하지만 언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것으로 구입하자’


조금 부담스러운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주문한 파스타가 나오고, 그 파스타를 먹는 내내 고민했다. 마지막 한 올의 파스타 면을 먹으면서 아내의 눈을 바라봤었다. 아내의 눈을 보는 순간 내 마음도 결정했다.


나 “사자!”

지금의 아내 “뭘?”

나 “마음에 드는 걸로 사자!”

지금의 아내 “이쁘긴 하지만, 그 돈 주고 사기엔 좀”

나 “1년, 2년 입을 것도 아닌데, 이왕이면 좋은 것 사자!”


우리는 식당을 나와 마음에 드는 옷이 있는 매장으로 가서 구입했다. 3개월 할부, 아내의 손에 옷을 쥐어 주었다. 아내의 얼굴에 기쁨이 번지는 것 같았고, 나는 그 모습에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했었다. 기쁜 마음에 옷가게를 나와 커피 한잔 하러 가는 길에 신발가게가 보였다. 그 신발가게에는 아내가 들고 있는 원피스와 너무 잘 어울리는 구두가 놓여 있었다. 사실 그 구두는 아내의 원피스를 보면서 아내 몰래 봐 두었었던 구두였다. 아내의 손을 잡고, 신발가게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구두를 아내에게 사주었다.


나는 아내를 만나지 전엔 이렇게 큰 것들을 사 본적이 거의 없었다. 특히, 나를 위한 물품은 아예 없었다. 지금의 아내가 그때 나를 보고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 이왕 사는 것 좋은 것들로 아내를 사주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괜찮다’고 했었다. 쇼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길에 S아웃에서 이벤트로 열고 있는 할인 매장이 보였다. 매장의 한 구석에 놓여 있는 남자 구두가 나의 시선을 끌었다. 나는 순간 내 구두를 내려다봤었다. 밑창이 거의 다 닳아있었고, 뒤꿈치 쪽은 헐어 있었다. 새 구두가 내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나 데려가서 좀 폼 나게 살아봐’


그렇게 속삭이는 이 녀석을 외면할 수 없었다. 나는 녀석을 6만 5천원에 첫 인연을 맺었고, 그 인연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식당에서 파 육개장을 시켜 먹는데, 발이 촉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양말이 비에 젖었나?’


파 육개장을 입에 한가득 넣고서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 발을 내려다봤다. 발등 부분이 젖어 있었다. 구두의 실밥이 터져있던 부분과 양말이 젖은 부분이 정확하게 일치했다.


‘들어가서 말리면 되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파 육개장을 먹었다. 먹는 내내 조금 5년을 동고동락한 신발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사무실로 돌아와 젖은 양말을 말리기 위해 신발을 벗었다. 밥 먹으러 겨우 400미터 정도를 갔다 왔을 뿐인데, 흠뻑 젖어 있었다. 실밥이 터진 왼쪽 구두를 들어 올려 상태를 봤다. 손가락 한마디 정도 실밥이 터져 있었고, 터진 그 부분을 기점으로 신발 가죽 주변이 물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다른 곳도 터져 있지는 않을까?’

낡은 구두, 찢어진 구두


나는 구두를 앞, 뒤, 좌, 우로 돌려 자세히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구두 상태가 엉망이었다. 구두 밑창은 닳아서 민무늬가 되어 있었고, 뒤꿈치 부위는 정말 많이 헐어 있었다. 반대쪽 구두(오른쪽)도 들어 올려 보았다. 실밥이 터진 곳은 없었으나, 상태는 왼쪽 신발과 다를 바 없었다. 오십보백보였다. 지금 신고 있는 이 녀석도 5년 전 떠나보내야 했던 8년의 정을 가진 녀석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신발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사이 구두를 벗어던졌던 왼발의 뒷부분이 조금 시원하게 느껴졌다. 양발에 양발을 신고 있었는데 오직 왼쪽 뒤꿈치 부분만이 시원했다. 의자에 앉은 상태로 허리를 오른쪽으로 돌려 왼발의 뒤꿈치가 보이도록 들어 올렸다. 그리고 왼발 뒤꿈치를 바라보았다. 동전만 한 크기의 구멍이 양말에 나 있었다.


‘뭐야? 양말도 구멍이 난 거야?’


찢어진 구두에, 동전 크기 만하게 구멍 난 양말을 나는 신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니, 나 자신이 참으로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신고 있는 양말은 또 언제 샀는지 생각해 봤다. 기억에 없다. 결혼 전부터 신고 다녔던 양말이었으니 못되어도 7년은 넘은 것 같았다. 집에 있는 양말들을 떠올려봤다. 서랍에 모셔두고 있는 양말들 하나같이 결혼 이후에 산 녀석들이 아니었다.


‘신발이 찢어진 줄도 모르고’

‘양말에 구멍이 난 줄도 모르면서’


나는 나 자신에게 너무나 무관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무관심에 나는 슬프고, 아팠다.



자신에 대한 무관심. 글 청명(Jin Hyeon 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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