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自我)의 애상 "먹고 싶은 것이 없는 사람?"

8월 가족 외식에서 찾아온
마흔 자아(自我)의 슬프고, 아픈 마음



한 달이라는 노력의 결과가 들어오는 날(월급날)엔 늘 외식을 했었던 것처럼 이번 달에도 가족과 외식하기로 했다. 매월 5일엔 성과급(월급)이 들어는 날이다. 그런데 이번 달은 5일이 토요일 이어서 4일에 들어왔다. 통장에 들어왔다 모두 사라져 갈 돈이었지만, 그래도 지난 한 달간의 나의 노고에 대해 스스로를 보상하고, 그 기간 동안 희생해 준 아내, 아빠와 놀 시간을 빼앗겨 버린 아들에게 고마움을 전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이자, 시간이었다.


‘우리 가족 공식적으로 외식하는 날!’



지난 7월은 정말 힘든 나날들이었다. 육체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으로 아주 많이 힘든 시간이었다. 그 원인은 진행했던 브랜드 컨설팅 때문이었다.


5월 마지막 주에 시작했던 브랜드 컨설팅 프로젝트는 6월까지 계획했던 프레임웍(Framework)대로 너무나 원활하게 잘 진행되었었다.


‘브랜드 환경 및 현황 분석’

‘Fact-based 진단’


고객사의 프로젝트 담당자와는 거의 하루에 한통 이상 전화를 주고, 받았다.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공유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고객사로 찾아가 일주일 동안 수행한 결과와 앞으로 진행할 내용, 수행 활동에 대해 보고하고, 의견을 취합하는 등 커뮤니케이션도 너무나 잘 이뤄졌었다. 지난 5월과 6월 약 6주간은 디지털 영역에서의 국내 및 해외 브랜드 트렌드와 네이밍 체계에 대한 사례들을 수집하고, 분석하고, 정리하는데 업무 시간의 대부분을 투입했다. 그 결과 4가지 관점의 자료들이 정리되었었다.


첫 번째 자료. 국내/외 주요 기업들의 브랜드 운영 전략

두 번째 자료. 고객사의 브랜드 네이밍 체계 현황

세 번째 자료. 고객사의 브랜드 운영 전략의 문제점

마지막 네 번째 자료. 고객사의 브랜드 네이밍 체계의 문제점


위의 정리된 4가지 자료를 바탕으로 고객사의 현재 운영 중인 브랜드 전략과, 네이밍 체계를 국/내외 사례와 비교하여 장/단점을 도출했고, 우리가 추구하고, 지향해야 될 브랜드 운영전략, 네이밍 체계에 대해 고객사에게 설명하고, 고객사와 심층적으로 의견을 나누었다. 회의 때마다 관심을 가지고 가능한 한 참석해 주셨던 부서장님, 부부장,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꾸려진 TF 멤버, 이번 프로젝트에서 PM(Project Manager) 역할을 맡은 차장님까지 언제나처럼 매우 적극적이었다. 회의는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갔고, 건설적이었다.


‘일사천리, 순풍에 돛 단 듯이라는 표현을 이럴 때 쓰는 것이구나.’


그 의미를 직접 체감한 시간들이었다. 이렇게 일을 즐겁게 한 적도 얼마 없을 정도였다.

중간보고를 하루 앞두고서 부서장님을 대상으로 사전 브리핑을 직접 드렸다. 브리핑 자리에는 부서장님, 부부장님, 차장님, 그리고 대리님까지 총 5분이 참석했다. 40분간의 브리핑을 마치고서 부서장님께서는 중간보고 내용에 대해 그동안 충분히 논의를 것들이 잘 반영되어 있다고 칭찬해 주셨다. 다만 중간보고에 참석하시는 분들을 고려할 때 몇 가지 주의해야 할 사항과 강조해야 내용들에 잡아 주셨다.


중간보고 사전 브리핑 자리는 한마디로 대성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좋았다. 그런데 메인 경기라고 할 수 있는 중간보고 자리에서 큰 위기에 봉착하고 말았다. 보고하는 과정에서 사전에 부서장님께서 알려주신 당부와 주의 사항 중 몇 가지를 놓쳤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 놓친 몇 가지가 핵심적인 내용이었다는 것이 더 큰 타격을 주었다. 발표하는 내내 걱정되었다. 보고가 끝나고 최고 임원, 타 부서장님들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질문에 대한 답변이 명확하지 못했다. 나는 순간 중간보고 이후 부서장님께서 심각하게 이 문제를 제기를 하실 것 같다고 직감했다. 보고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고객사의 PM(Project Manager)이신 차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차장님께서 전화를 받았다.


“차장님, 죄송해요. 이번 보고에서 빙점을 찍기로 약속했던 몇 가지 내용이 발표 과정에서 빠져 버렸네요, 게다가 부서장님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설명을 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부서장님 화가 많이 나셨을 것 같은데”


말을 끝맺기도 전에 차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위원님도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저도 보고 때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중간보고 끝나고 부부장, 저 모두 부서장님께 불러갔었어요”


차장님은 부서장님께서 왜 화나셨는지, 얼마나 화나셨는지 자세히 상황과 내용을 알려 주셨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1. 자료에 들어간 내용을 왜 빼먹고 보고 했는가?

2. 부서장들이 할 만한 질문에 대해 우리(프로젝트 담당) 부서의 입장을 사전에 알려 줬는데 왜 명확하게
전달하지 않았는가?

3. 중간보고로 부서장의 입장이 더욱 난처해졌다.


다음날 나는 사업부서 팀장님께 찾아가 중간보고 중 발생한 일에 대해 말씀을 드렸다. 사업부서 팀장님도 고객사로부터 어제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고객사의 강한 컴플레인(complain)이 접수되었다고 하셨다. 오후에 고객사의 PM인 차장님이 나와 둘이서 문제를 해결하자고 하시면서 회사로 찾아왔다. 지금까지 내용들을 일목요연하게 다시 정리하자고 했다. 회사까지 와서 함께 정리하자고 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고객사의 부서장님께서 본인이 직접 윗분들에게 보고 하신다고 10장 이내로 정리해서 가져오라고 하셨기 때문이었다.


우리(나와 고객사 PM인 차장님)는 회사에서 3일에 걸쳐 자료를 다시 정리했다. 그리고 그 자료를 들고 부서장님을 찾아뵈었다. 부서장님은 글씨체, 보고문서 형태, 보고서 구성이 회사 규정과 전혀 맞지 않다고 하시며 우리에게 이렇게 냉정하게 말씀하셨다.


‘이걸로 어떻게 보고할 수 있겠어?’


그동안 보아왔던 부서장님이 아니셨다. 차장님께서 회사 내부 규정에 맞게 다시 보고서를 직접 수정하셨다. 나의 역할은 지원 역할로 바뀌었다. 프로젝트를 주도해야 할 상황에서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참함을 느끼게 했다. 내가 잘못했던 것이라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찾아온 비참한 감정이었다. 나는 사업부서 팀장님과 함께 부서장님을 찾아가 사죄하고, 설명하고, 설득해서 겨우 프로젝트를 다시 정상궤도로 올렸다. 그런데 그 기간이 무려 한 달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고객사 PM이신 차장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 기간을 훨씬 더 길었을 것이며, 최악의 경우 프로젝트가 취소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내겐 부끄러운 한 달이었다.



힘들게 지난 한 달의 시간은 나를 정신적으로 아주 힘들게 만들었다. 다시는 돌아가기 싫은 시간이었다. 심리적으로 너무 큰 고난의 시간이었기에 지금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올 지경이다.


‘고난의 시간을 보낸 나!’

‘내가 고난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해준 가족!’


공식적으로 보상하는 외식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나는 특별한 하루를 만들고 싶었다. 아내에게 말했다.


“오늘 뭐 먹을까?”


아버님(장인어른), 어머님(장모님)이 생각나 아내에게 다시 의견을 물었다.


나 “아버님 하고 어머님도 모시고 같이 먹는 것은 어때?”

아내 “오빠가, 전화 한번 드려봐”


나는 전화기를 들었다.


나 “아버님, 오늘 저녁 같이 드시죠!”

아버님 “그래”


아버님도 좋다고 하셨다. 아내와 나는 외식 준비를 했다. 아내는 아들의 물을 데웠고, 밖에서 먹을 때 쓸 아들의 식기를 준비했다. 나는 아들의 옷을 준비해 갈아입히고, 손수건, 물티슈, 여분의 속옷, 기저귀를 가방에 챙겨 넣었다. 아내가 옷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서야 외식 준비가 끝났다. 우리는 차에 올랐다. 아버님과 어머님이 계시는 일산으로 출발했다. 운전하는 동안 아들이 엄마에게 노래를 들려 달라고 졸랐다.


아들 “엄마, 음악”

아내 “뭐 들려줄까?”

아들 “엄마, 디즈니 노래”


아내는 아들의 요청에 유튜브 애플리케이션을 클릭해서 디즈니를 검색해서 틀었다.


겨울왕국의 ‘Let's it go’

인어공주의 ‘Part of your world’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의 ‘Heigh ho’


차 안은 어린 아들이 좋아하는 노래들로 가득 찼다. 음악을 감상하며 나는 아내에게 다시 말했다.


나 “뭐 먹을까?”
아내 “오빤, 먹고 싶은 거 없어?”

나 “먹고 싶은 거?... 없어”

아내 “오빤, 어떻게 먹고 싶은 게 없어? 그럼 우리 고기 먹을까? 돼지갈비가 먹고 싶은데”


사실 나는 따뜻한 국물이 있는 찌개나 탕이 먹고 싶었다. 그런데 아내의 제안이 나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음식이었기에, 나는 아들에게 뭐 먹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나 “아들, 뭐 먹고 싶어?”

아들 “돈가스”

나 “그럼 돈가스 먹을까? 우리?”


이왕이면 아들이 먹고 싶은 것을 사주고 싶었다. 나에 말에 아내가 한마디 던졌다.


아내“돈가스는 집에서 먹는데 뭐, 고기 먹자, 돼지갈비!”


메뉴를 정하는 사이 일산에 도착했고,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차에 오르셨다.

아버님 “뭐 먹을 거야?”
아내 “돼지갈비”


그렇게 메뉴가 확정되어 버렸다.

아버님 “그럼, 저기로 가자”


내게 아버님은 목적지를 가르쳐 주셨다. 차로 5분도 안 되는 곳에 고깃집이 위치해 있었다. 그것은 가끔 함께 가던 곳이었다. 자리를 찾아 앉았다. 종업원에게 아내가 주문했다.


“돼지갈비 4인분 먼저 주세요.”


반찬거리가 나오고, 돼지갈비가 나왔다. 두 덩이의 고기를 들어 불판에 올렸다. 3분 정도 있다가 고기를 뒤집었다. 다시 3분 정도가 지나서 왼손에는 집게를 들고, 오른손에 가위를 들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아들의 고기는 다시 들어 올려 1/3의 크기로 잘게 잘랐다. 아들의 고기는 잘 익혀야 한다. 잘 익힌 고기를 한 줌, 두 줌 들어서 아들의 접시에 올려주는 사이 불판의 고기들은 한 점, 두 점 사라졌고, 다신 두 덩이의 고기를 들어 불판에 올렸다. 아내가 한 줌의 쌈을 싸서 나에게 건넸다. 입안에 쌈과 고기가 가득했다. 왼손과 오른손은 계속 일하면서 고기를 뒤집고, 자르기를 반복했다. 외식은 즐거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해물탕 간판을 보았다. 순간 일산으로 오는 외식 하러 오는 길에 아내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다.


아내 “오빤, 먹고 싶은 거 없어?”

나 “먹고, 싶은 거?, 없어”
아내 “오빤, 어떻게 먹고 싶은 게 없어?"


나도 좋아하는 게 있다. 먹고 싶은 게 있다. 그러나 아내가 좋은 것을 먼저 생각하고, 아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을 먼저 생각하다 보니, 나는 먹고 싶은 게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마흔의 아버지도 먹고 싶은 게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을 위해 포기하죠.

마흔의 직장인도 목소리를 내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목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마흔의 아버지도, 직장인도 하고 싶은 것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니 어느 사이 ‘나’라는 사람이 희미해져 갑니다. 마치 원래 그랬던 사람인 것처럼.


배려의 부작용? 글 청명(Jin Hyeon 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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