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쌀이 영웅이 되는 것을 기다리는 노동자들의 인생, 그의 2014년.
* 재작년에 샤오미 관련해서 모 매체에 기고될 뻔 했던 글 공유합니다. 작성시점이 2014년 초가을이었으니, 지금과는 많이 다른 상황이기도 하네요=) 개인적으로 팬인 장예모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인생’과 ‘영웅’을 키워드로 잡아봤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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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쌀이 영웅이 되는 신화. 그것을 중국인들은 꿈꾼다. 장예모의 '인생'에서 자본가를 처단하고 노동자가 꿈꾸는 세상이 오기를 기다리는 그 곳. 그 곳에 샤오미가 있다. 올해 2분기부터 중국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샤오미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샤오미는 중국에서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지만, 사실 생각보다 삼성에 치명적 타를 입히지는 못했다. 필자가 속한 몇 중국 커뮤니티에서 샤오미 핸드폰을 쓰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아이폰6를 쓰는 것이 트렌드가 되기도 했으나, Mi4를 쓰는 것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오히려 갤럭시 노트4를 갖고 있으면 더 관심을 보였달까.
저가 우선 전략으로 인해 ‘보급형’ 핸드폰이란 이미지가 강하고, 부자라는 인증을 받기 좋아하는 중국 중상류층에게 샤오미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매력이 없다. 하지만 대륙은 샤오미라는 새로운 영웅에 열광한다. 스마트폰 제조업체로서의 샤오미는 젊음과 도전을 상징하며, 시진핑 주석의 캐치프라이즈인 ‘차이나드림(中国梦)’에 딱 들어 맞는다. 이는 일종의 대리만족이자, 알리바바를 필두로 시작된 IT 세계 정복에 대한 기대감이다. 샤오미 구매자들은 중국인으로서의 긍지, 중화사상의 재림, 다이나믹함이라는 이미지 구매한다. 이는 중국인들의 인증 심리에서 기인한다.
우리나라에는 모 대기업 총수만 타고 다닌다는 전기차 테슬라. 지금 베이징의 거리에는 테슬라가 많이 돌아다닌다. 심지어 어떤 렌트카 업체에서는 테슬라에 테이핑을 해서 홍보용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테슬라는 중국에서 부자의 상징이다. 그것도 쿨하고 트렌드에 밝은 ‘요즘 부자’에 대한 인증이다. 테슬라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목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기도 한다. 현재 테슬라 충전소는 베이징에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하지만, 충전소가 아예 없는 2선 도시의 부자들도 본인 차고의 람보르기니 옆에 테슬라를 세워 놓아야 “요즘 부자” 축에 낄 수 있다.
많은 외국 문헌들은 중국인들의 특성을 “집체주의(Collectivisim)”이라 표현한다. 소속 집단의 분위기에 크게 좌우되며, 그 트렌드를 추종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또 하나의 부자의 인증의 예로 성룡이 광고했던 삼성 애니콜의 일명 “토호(土豪)폰”이 있다. 폴더폰의 형태로 스마트폰에 물리키보드가 달리고 금박의 외관을 지닌 이 핸드폰은 사실 그렇게 쾌적한 사용 환경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가격이 한화 150만원을 상회했던 초고급 핸드폰이었다. 이에 복건성 등 2선 지역의 부자들은 이 핸드폰을 들고 다녀야 또 부자란 인정을 받았다. 비지니스 미팅을 하거나 식사자리에서 자리에 앉기 전 핸드폰 3개를 살포시 겹쳐 놓는 것이 그 인증의 방식이었는데, 맨 하단엔 최신 갤럭시노트 시리즈, 그 위엔 최신 아이폰, 그리고 꼭대기에 위치하는 것이 이 토호폰이었다. 그들은 왜 세계 일류 기업인 삼성이 이런 불편한 폰을 출시하였는지에 대해 불평하면서도 다른 부자가 사니, 본인도 사지 않을 수 없는듯 이 폰의 소유를 과시했다.
인증은 부자 인증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현지에서 샤오미는 젊음과 쿨함을 상징한다. 그래서 20대 초반, 저학력 층에 꾸준히 호소하고 있는 것이 샤오미폰이며, 딱 그 정도의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샤오미를 사용하면 그 연령 집단에서 젊음과 쿨함에 대한 인증을 받을 수 있다. 단, 부자라는 것에 대한 인증은 포기해야 한다. 샤오미의 팬들을 미펀(米粉)이라 한다. 우리나라 말로는 쌀가루, 쌀국수 정도의 개념인데, 이 미펀들이 1년에 한 번씩 모여, 미펀지에(米粉节)라는 행사를 개최한다. 가히 록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이 행사에서 미펀들은 CEO 레이쥔에 환호하며, 광란의 밤을 보낸다. 도전하고 있는 새로운 영웅이라는 점에서 중국인의 대중 심리가 샤오미에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의 '영웅'이란, 매우 큰 심리적 작용을 이끌어 낸다. 필자는 어렸을 때 중학교를 중국에서 다녔는데, 학교 단체로 한 영화관에가서 한 공산당 영웅의 이야기에 대한 영화를 보며 좌우앞뒤로 눈물을 흘리던 친구들의 모습에 크게 놀랐던 기억이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설립 과정 자체가 이런저런 영웅들의 스토리로 교육되어 있기에, 그 영웅 스토리는 중국에 가장 통하는 감성 마케팅 중 하나이다.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는 중국인들이 아직도 국공합작의 영웅스토리를 다룬 드라마에도 열광하고, 올림픽 등 큰 스포츠 이벤트가 있을 때에는 스포츠 스타들이 영웅이 되어 각종 광고에 등장한다. 샤오미는 딱 그 영웅의 자리를 차지했다. 애타게 바라던 그 들의 새로운 ‘자본적’ 영웅.
세계 1위회사 애플을 위협하고, 2위 회사 삼성을 중국 내수 시장에서 물리쳤으니, 그 영웅의 가치는 더욱 칭송해야 마땅하겠다. 다만 삼성이 이번에 샤오미에 밀린 것은 물량이다. 샤오미폰이 1000위안~2000위안 정도의 수준이고, 삼성폰은 대개 5000위안 이상이므로 매출에서는 밀리지 않았다. 삼성은 여전히 중국1위이지만, 일단 밀렸기 때문에 삼성이 중국에서 패배할 확률은 매우 높아졌다. 중국의 신흥 '영웅'에게 말이다.
무협지의 일반 구성을 보면 주인공 '영웅'이 있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실력가들이 많다. 화웨이, ZTE, 레노보, 1+, 메이쥬, 쿨패드 등이 또 중원의 질서를 재편하기 위해 분주하고 있다. 2015년에 해당 회사들이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줄 지도 궁금하다. 결국 '인생'은 영웅을 바라보며 사는 좁쌀같은 사람들의 하루하루가 아닐까. 그것은 욕망도 욕심도 아닌 순수이다. 재밌게도, 장예모의 그 다음작이 ‘영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