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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비관우자앙비 Sep 21. 2017

내 인생 이야기#5

초보와 초보가 만난 어설픈 공생 이야기의 시작

첫 번째 글에서 산타가 없다고 확신하게 된 것이 처음으로 집이 아닌 곳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냈을 때라고 썼다. 1996년 12월, 혹시나 살게 될지도 모를 산동성 제남시에 처음 방문했다. 당시의 중국은 외국인 주거 가능 지역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었고, 당시 연구생(대학원생을 뜻함)이던 아버지는 산동대학교 내부에 위치한 유학생 숙소에 살고 계셨다. 그때가 딱 크리스마스였다. 내가 아는 산타는 한국 지역을 커버할 텐데, 내가 중국에 와 있으니 올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은 어마어마한 고민이었다. 물론, 중 1 때까지 산타를 믿었다는 이야기는 이제는 자랑스럽게 할 수 있다. 살면서 얼마나 그렇게 순진하게 살아 보았는가 당신은.


산타는 안 왔다. 그리고 그때 처음 가본 중국은 회색이었다. 하늘도 회색이었고, 사람들도 회색 옷을 입고 다녔다. 처음 만난 해외라는 존재는 두려움 그 자체였고, 이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중국에 대한 편견에서도 기인했을 것이다. 1996년의 중국은 한국인 중학생에게는 큰 환경의 변화였다. 오죽했으면 당시 친척들은 왜 한국에서 잘 지내고 있는 아이를 그 험한 곳으로 데려가려고 하냐며, 본인들이 맡아 주겠다는 말씀도 하셨다. 그만큼 중국이란 사회는 우리에게 그 정도의 존재감과 가치를 주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떠나고 싶었다. 몇 번의 기회가 있었으나, 도리도리를 일관했다. 왠지 중국에 가고 싶었다. 가고 싶다는 근저에는 사실 어렸을 때 읽었던 호돌이의 세계 여행이 크게 작용했다. 죽의 장막이라는 말이 왠지 섹시해 보였다. 1997년 3월, 떠나는 날이 결정되었다. 아버지는 중국어 한 마디 못하는 우리가 걱정되셨는지 한국에 거주하던 한족 선생님을 섭외하여 중국어 과외를 받게 해주셨다. 하지만, 단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니하오 한 마디 정도 배우고 중국에 도착하게 되었다.

호돌이의 세계 여행 중국편 <죽의 장막을 헤치고>


사실 부모님이 다 계신데, 중학교 2학년 짜리가 무엇을 하겠는가,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단,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큰 장애물이었다. 맨 처음 입학한 곳은 산동성 제남시에 위치한 산동대학교 부속중학교였다. 첫 전학 날이 기억이 아주 또렷이 난다. 사실 이미 전학은 초등학교 때 두 번 해 보았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으나, 그 거대한 풍경에 자신감은 산산조각이 난다.


당시 그 중학교는 운동장이 바닥이 무려 빨간색 벽돌로 깔아져 있었다. 당연히 운동장은 흙바닥 이여야 하지 않느냐는 내 의식에 큰 충격을 줬다. 그리고 학교는 ㄴ자로 이뤄져 있었으며, 벽도는 오픈식 벽도였다. 운동장에서 보면 모든 학급이 보이는 구조였으며, 운동장의 한 끝에 화장실 건물이 따로 있었다. 교사용 화장실도 따로 없었고, 그냥 화장실 건물이 전부였다. 화장실 건물 옆으로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탁구대가 20여 대가 놓여 있었다. 네트는 운동장 바닥과 같은 재질의 빨간 벽돌. 그 옆에는 체육 기자재를 놓는 창고가 있었다. 


百度로 검색해본 모교. 바닥은 시멘트로 바뀐 것 같은데, 기본 구조는 그대로다. 겨울에 진짜 어마어마하게 춥다.


교무실에서 아버지와 선생님 간의 알 수 없는 대화가 오갔다. 무언가 나를 잘 부탁한다는 내용이었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800만 인구이던 제남시에서 난 역사상 첫 번째 외국인 중학생이었다고 한다. 나도 중국이 처음이었지만, 그 들 역시 내가 처음이었던 것. 초짜와 초짜가 만나면, what? 어설픈 공생의 시작이었다.


우리나라와 중국은 1992년에 공식으로 국교를 수립했다. 원래는 대만이랑 국교가 수립되어 있다가, 단교해서 당시 대만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많이 싫어했다. 92년도 이후에 한인 유학생들이 북경과 상해로 많이 진출했고, 상권이 형성되어 가던 그 시점, 나는 제남시라는 약간 떨어진 곳에서 인생 첫 해외 생활을 시작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외국인은 약자다. 하긴, 외국인이 약자가 아닌 곳이 어디 있겠냐만은 나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어마어마했다. 학교에서는 나와 함께 등하교를 할 3인의 동학(同学, 같은 반 친구)을 배정해줬다. 남자 2명에, 여자 1명이었다. 한 명은 듬직했고, 한 명은 까불까불 했고, 한 명은 예뻤다 ㅋㅋ (그 여자아이 이름만 생각나는 것을 보면 예뻤던 것이 확실하다)


제남(지난)시는 여기에 있다. 밑에 있는 타이안이라는 도시는 그 유명한 태산이 있는 곳이고, 타이안이라는 도시 밑에는 공자의 묘가 있는 곡부라는 도시가 있다. 구글맵 캡쳐


그 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통학을 시작했다. 참고로 그 여자아이의 이름은 짱멍(张梦)이었다. 처음 발음을 듣고 뿜을 뻔했는데, 중국어를 알고 나니 와 참 예쁜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꿈이라는 이름을 갖은 여자 아이. 왠지 포카혼타스에 나오는 인디언 이름 같았다. 다행히 모두 공부를 잘해서 기본적인 영어 회화가 되는 아이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고마운 아이들이었는데, 그때는 왜 그리 귀찮았는지 모르겠다. 숨어있다가 따돌리고 다니기도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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