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중국어와 싸우는 이야기. 301구 칭찬해
중국은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나라다. 지금도 그러니, 97년에는 오죽했을까. 중국어를 배울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전 시에서 유일한 외국인 중학생인 나였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도 중국어는 필요했다. 당시 거주지는 산동대학교 유학생 숙소. 타오팡(套房)이라 불리는 방 두개를 뚫어 놓은 정도에 아버지, 어머니, 동생까지 네 명이 살고 있었다. 좁긴 했지만, 치안도 좋았고, 무엇보다 과외선생님 구하기가 정말 좋았던 환경이었다.
푸다오(辅导)는 한국 사람이 중국에 가서 가장 먼저 알게되는 단어 중 하나이다. 한국에 비해 저렴한 인건비, 그리고 언어는 1:1 교습이 그나마 효과가 좋기 때문에 과외를 뜻하는 푸다오는 필수불가결이다. 당시 시간당 10위안 정도의 가격에 산동대학교 재학생과 과외를 할 수 있었고, 당시 환율은 1대 100 정도였으니, 시단간 천원에 과외가 가능했던 것.
아버지께서 구해주신 푸다오 선생님은 조선족이었다. ‘이호’라는 이름을 갖은 눈매가 무서운 선생님이었다. 이 선생님과 당시 북경어언학원(北京语言学院, 지금은 북경어언문화대학 北京语言文化大学)에서 출판된 “301구(汉语会话301句)”라는 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수학의 정석 만큼 두꺼운 책이었는데, 하루에 세시간 씩 과외를 하며 책을 하나하나 외워가기 시작했다.
你们别客气,像在家一样。이게 301구 중 한 200대 중반 이었던 것 같은데, 아직도 기억이 난다. 집에 있는 것처럼 편하게 하라는 뜻이다. 4개월이 지나고 301구를 전부 독파하게 되었다. 엄한 과외 선생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무렵 나는 중국어의 천재가 되어가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가지고 있는 유일한 능력이 응용력 이었는데, 가지고 있는 지식을 집대성 해서 나만의 방식으로 언어를 재구성하는 것에 재미를 붙여가고 있었다.
어느 날 팅부동 이라는 문구를 배웠다. 听不懂이라고, “저는 알아 들을 수가 없어요” 정도로 이해하면 되는데, 나는 이게 I cannot understand라고 마음 속으로 규정했다. 실은 听은 들을 청(聽)의 간체자로 듣는 것에만 국한되는 표현인데, 알아보지 못한다를 我看听不懂이라고 말하고 다니기도 했다. 당시의 나에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ㅋㅋ 그러다 보니 한자를 배워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한자는 정말 그림처럼 그리면서 공부했다. 중국에서는 간체자라는 것을 쓰는데, 이게 획은 훨씬 간단한데, 원래 우리가 알던 번체자와는 매우 다르다. 번체자는 총 4만자로 구성되어 있다.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중국 간체자는 2,300자 정도 된다. 1960년대에 중국은 문자개혁이라는 것을 하는데 4만자에 달하던 번체자를 2,238자의 간체자로 통합하는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만약 그것이 없었다면 4만자를 다 외웠어야 했는데, 외국인 입장에서는 엄청 다행인 이야기다. 하지만 새로운 개념이 지속적으로 생성되고 있는 요새엔 새로운 한자도 등장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세대에 맞는 문체가 계속 등장하듯, 예를 들면 요새 10대들이 쓴다는 급식체, 오오지는 각, ㅇㅈ? ㅇㅇㅇ ㅇㅈ? 아, 지리구요. 뭐 이런거.
중국어가 머리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귀가 먼저 트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아이들이 나에게 하는 소리가 하나 둘 씩 들리기 시작했다. 정말 신기했다. 언어를 학문으로 배우지 아니하고, 생존을 위해서 배웠기 때문일까. 신생아가 말을 깨우치는 것 처럼 귀가 트이자 중국어 습득의 속도는 기하 급수 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