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학개론
부부 사이가 좋은 것을 두고 '부부금슬이 좋다'라고 한다. 금슬은 한자로 琴瑟이라 쓴다. '거문고 금', '큰 거문고 슬'인데 거문고와 비파를 말한다. 부부금슬이 좋다는 말은 거문고와 비파의 조화로운 소리처럼 부부 사이의 다정하고 화목함을 말한다. 불행히도 거문고와 비파의 조화로운 소리를 들어보지 못해 금슬이라는 단어가 탄생할 만한 체험은 해 보질 못했다.
부부금슬이 너무 좋은 부부가 있었다. 그런데 남자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장례를 치르던 날, 부인은 무덤을 쓰다듬으며 매일 와서 당신을 보겠노라고 울부짖었는데, 3년이 지난 어느 날 개가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재산도 꽤 있고 나이도 있는데 왜 개가를? 정말 믿기 힘든 소식이었다. 1년 전 외아들 장가보내고 혼자 지내더니 많이 외로웠는지 남자를 만나 일이 진전된 모양이다. 장례식 때 모습을 보면 남편만 오매불망 그리며 평생을 살 줄 알았는데, 아니 먼저 간 남편만 그리워하다 병 날까 염려스러웠는데 생각과는 전혀 달리 그동안 남자를 사귀었고 개가의 상황까지 온 것이다. 개가를 하면, 세상 떠난 남편은 그의 기억에서 멀어질게 뻔하다. 이런 경우가 많이 있단다. 부부금슬이 좋으면 좋을수록 혼자된 이는 이성을 빨리 찾는다고 한다.
부부금슬이 좋았는데 다른 이성을 빨리 찾는다? 왜 그럴까. 내 남편이 내 스타일인 '바로 그!'라는 특정 인물이었기에 금슬이 좋았던 것이 아니었다. 누가 그의 배우자가 되든 간에 그 부부 사이는 좋을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정에 약하고, 정을 그리워하고, 이성과 살갑게 교류하길 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외로움을 달래고 행복과 안정감을 갖는 애정을 갈구하는, 외부와 교류를 해야만 하는, 다른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홀로서기에 부족한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다. 남편이 무뚝뚝하며 까탈스럽고 때로는 화를 내어도 아내는 애정우선주의자가 되어 뭐든지 고분고분 순종형으로 '애인 같은 아내'로 정겹게 대하니 부부싸움이 일어날 상황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자연히 부부금슬이 좋을 수밖에 없다. 싸움이란 항상 양쪽이 힘의 균형을 이룰 때 일어나는 것이다.
위의 경우가 그랬다. 애정 갈구형 아내가,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처음에는 그동안의 정으로 먼저 간 남편의 무덤을 매일 찾아 애정을 쏟았지만 상호 교류 없이 일방적으로 주는 것뿐일 뿐 자신의 허전함을 달래줄 수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정이 그리워 이성과의 교류를 끊임없이 갈망하게 되고 어쩌다 알게 된 이성과의 만남을 통해 그동안의 빈 공간이 채워짐에 큰 만족을 얻게 되는 것이다. 물론 애정 갈구형이니 계속해서 교류를 원하게 되고. 홀로 된 남자가 살갑고 다정하게 대하는 이런 여자를 마다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게다가 재산까지 있으니.
이런 것을 보면 부부금슬이 좋다고 해서 배우자가 마냥 기뻐해야 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이 세상에 없다면 '또 다른 나'를 만나기를 갈구할 것이고, 그래서 만난 '또 다른 나'와 부부의 연을 맺는다면 그 금슬 역시 나와 같이 좋을 수밖에 없다. 부부금슬이 좋다고 하는 부부는 양쪽 혹은 남녀 어느 한쪽이 이성과 교류하며 만족을 얻는 애정 갈구형 성격인 탓이기 때문이다. 역으로 얘기하면 부부금슬이 좋다고 입에 오르내리지 않을수록, 그다지 이성으로부터의 애정을 갈구하는 성격이 아니므로 한쪽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해도 재혼 없이 혼자 살아갈 확률이 높다는 말이 된다. 이런 것을 보면 그냥 평범하게 다툴 땐 다투고, 좋을 땐 좋고, 나이에 맞게 무덤덤할 땐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지 않나 싶다.
부부금슬이 좋다는 것은, 서로 원하는 상대를 만서 거문고와 비파의 조화로운 소리처럼 조화를 이룬 것이 아니라 한쪽의 '사랑밖엔 난 몰라'의 애정 갈구형 성격으로 인해 누가 그의 배우자가 되던 좋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 된다. 그 아니면 못 살 줄 알았는데, 신은 우리의 마음속에 또 다른 사랑이 들어갈 주머니를 만들어 두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