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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태화 Jul 09. 2021

익숙된다는 것

사랑학개론

  플레이보이의 특징은 상대를 자주 바꾼다는 것이다. 플레이보이라 해서 비단 남자만 일컫는 말은 아니다. 남자던 여자던 상대를 자주 바꾸는 스타일이 있다. 상대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스타일의 사람을 시쳇말로 '쓰레기과'라고 하고, '매우 엄청난'이란 접두사를 붙여 '개 쓰레기과'라고 한다.


  왜 상대를 자주 바꿀까. 아마도 새로운 것을 접할 때의 오감에 중독된 것은 아닐까 싶다. 이성을 접하면 설렘과 떨림과 짜릿함과 기대와 신비함, 그런 것들이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데, 소위 플레이보이는 일반인들에 비해 그 매력이 너무 깊고 예민하게 느껴기에 그 맛을 지속적으로 맛보기 위해, 이성에 대해 항상 새로운 느낌을 받기 위해 마치 마약중독자처럼 상대를 자주 바꾸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될 때의 쾌락을 즐기기 위해서 말이다.


  감정이란 그렇다. 처음 만날 때의 그 짜릿함을 백일 때도, 1년이 지난 때도 한결같이 같을 수는 없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신혼 때의 기분과 1년 뒤의 기분과 10년 뒤의 기분이 같을 수는 없다. 우연히 그 가게에서 먹어 본 음식이 너무 맛있기에  다음에 그곳에서 꼭 같은 음식을 먹었을 때, 그 맛은 어떨까. 맛있다고는 느끼지만 뇌 속에 기억된 처음 그 맛이 나올까. 두 번째이니 그렇다고 치자. 세 번째, 네 번째에도 처음 먹었을 때의 그 맛이 나올까. 아닐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익숙된다는 것'이다. 


  처음이나 나중이나 그 가게의 그 음식 맛은 변하지 않았다. 단지 그 음식에 내가 익숙되었을 뿐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주방장이 바뀌었다고. 맛이 예전 같지 않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왜 처음과 같은 설렘과 떨림과 짜릿함이 없냐고. 너무나 당연한 것을 두고 계속 처음의 것만 생각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왜 처음처럼 행동하지 않냐고. 영아 때는 영아에 맞게, 유아 때는 유아에 맞게, 청년이 되면 청년에 맞는 옷과 음식을 먹는 것이 당연하다. 사랑하는 사이도 마찬가지다. 항상 처음과 같을 수는 없다. 행동이건 마음이건.


  처음에는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으로 다른 일도 않고 그냥 멍 때리고 있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일을 하면서 상대와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 맞다. 설렘과 떨림과 짜릿함이 다른 모양으로 은은하게 자신의 삶 속에 녹아 있는 것일 뿐. 그 다른 모양은 사랑이 아니라서 싫고, 항상 처음처럼 설렘과 떨림과 짜릿함을 맛봐야 한다면, 그래야 된다면 그가 바로 플레이보이다.


  사랑은 상대가 자신의 삶 속에 은은하게 녹아 있을 때, 그때가 진짜 사랑이다. 설렘과 떨림이 없다고 사랑이 사라진 게 아니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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